금융당국이 공매도 규제를 어긴 글로벌 투자은행(IB) 13곳에 부과한 과징금 규모가 이들 IB가 챙긴 부당이득의 16배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간 투자자들 사이에선 글로벌 IB 불법 공매도에 대한 정부 제재가 약하다는 비판이 나왔는데, 정부가 높은 수위의 징계를 내렸다는 평가다.

뉴스1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증선위)는 12일 오후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제5차 정례회의를 열고 공매도 규제를 위반한 글로벌 IB 1개사에 7억6000만원의 과징금 부과 조치를 의결했다. 이로써 금융당국이 지난 1년 4개월 동안 글로벌 IB 13곳을 상대로 실시한 불법 공매도 제재는 모두 마무리됐다. 13개 IB에 부과된 과징금 총액은 836억5000만원이다.

앞서 금융감독원은 2023년 11월 국내 공매도 거래 상위 14개 글로벌 IB를 대상으로 규제 위반 여부 조사에 착수했다. 이들 14개사는 외국인 전체 공매도 거래량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금감원은 이 중 13개사가 무차입 공매도 등의 불법 행위를 일삼은 사실을 발견해 증선위로 넘겼다.

공매도는 보유하지 않은 주식을 파는 투자 기법이다. 주가 하락을 예상하고 주식을 빌려 매도한 뒤, 주가가 내려갔을 때 주식을 사서 갚는 차입 공매도는 합법이다. 그러나 반대 개념인 무차입 공매도(선매도 후대여)는 불법이다.

증선위는 2023년 12월 BNP파리바와 HSBC에 대한 265억원을 시작으로 과징금 부과 절차를 밟아왔다.

금융당국은 13개 글로벌 IB가 무차입 공매도 등의 불법 행위로 거둔 실제 이득을 51억원으로 파악했다. 부당이득과 비교하면 과징금(836억5000만원)은 16.4배 많은 셈이다. 일부 IB는 무차입 공매도로 오히려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수익 여부와 무관하게 위법을 저질렀다면 엄정하고 일관된 기준으로 심의했다”고 말했다.

조선 DB

과거 금융당국은 불법 공매도에 수천만원 수준의 과태료만 부과해 솜방망이 처벌이란 비판을 받았다. 우리 자본시장을 외국인 놀이터로 만든다는 지적이 들끓자 금융당국은 2021년 4월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해 공매도 규제 위반 제재를 과태료에서 과징금으로 강화했다. 증선위가 이번에 800억원 넘는 과징금 철퇴를 내릴 수 있었던 이유다. 작년 7월에는 옛 크레디트스위스 그룹 소속 2개 계열사(CSAG·CSSL)에 역대 최대 규모인 271억73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기도 했다.

증선위는 글로벌 IB 13곳의 공매도 규제 위반 주요 원인으로 독립거래단위 운영 미흡, 주식 차입계약 등에 대한 자의적 해석·적용 등을 꼽았다. 예컨대 주식의 차입 가능성만 확인된 상태에서 이를 매도 가능 잔고로 인식해 매도 주문을 제출(무차입 공매도)하고, 차입 계약은 매도 주문 제출 이후 결제에 필요한 수량만큼만 확정하는 식이었다. 일부 IB는 직원 실수로 잔고관리 시스템에 실제 차입 내용과 다른 수량·종목을 입력하기도 했다.

국내 자본시장에서 공매도는 이달 31일부터 전면 재개된다. 금융위는 “다수 글로벌 IB가 전산 시스템 구축 등 공매도 제도 개선에 참여했다”며 “공매도 거래에 대한 상시 감시를 통해 실효성 있는 무차입 공매도 방지가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금융위는 “공매도 규제 관련 불확실성이 해소된 만큼 우리 시장에 대한 외국인의 투자 접근성도 제고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