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위험·중수익을 추구하는 연금 상품인 디딤펀드 판매 경쟁에서 삼성증권이 증권업계 연금 1위 사업자인 미래에셋증권을 압도적인 차이로 따돌렸다. 삼성증권이 자사 모바일 트레이딩 시스템(MTS)에 가장 먼저 적용한 디딤펀드 전용 화면이 효자 노릇을 했다. MTS에 단축 경로 반영 여부가 극단적인 점유율 차이로 이어질 만큼 아직은 디딤펀드가 자리를 잡지 못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삼성증권(016360)의 디딤펀드 판매 점유율은 86%로 집계됐다. 삼성증권 뒤를 미래에셋증권(4%)과 하나증권(3%), 신한투자증권(2%) 등이 따르고 있다. 1위 판매사와 2위 판매사의 점유율 격차가 21.5배에 달한다.
금융투자협회 주도로 작년 9월 출범한 디딤펀드는 주식 편입 비율을 50% 미만으로 제한하고 5% 안팎의 시장 중립적 성과를 추구하는 연금 상품이다. 은퇴 시점에 맞춰 포트폴리오를 조정해 주는 생애주기펀드(TDF)가 장악하다시피 한 국내 퇴직연금 시장에 보다 안정적인 성격의 ‘메기’ 상품을 공급한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금투협에 따르면 디딤펀드 출시 이후 올해 2월 중순까지 약 5개월 동안 1004억원이 유입됐다. 현재 판매사 점유율은 작년 말과 비슷한 것으로 전해진다. 펀드 판매의 9할가량을 삼성증권 홀로 책임지고 있다는 의미다. 업계에선 “사실상 삼성증권 혼자만 판매한 수준”이란 말이 나온다.
이런 흐름은 금융당국과 금투협은 물론 사업자들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다. 당초 금융당국·금투협은 디딤펀드 판매 역시 증권업계 연금 최강자인 미래에셋증권(006800)이 장악할 것으로 관측했다. 디딤펀드는 은행이 아닌 증권사를 통해서만 판매된다. 정부 관계자는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삼성증권 쏠림이 나타나) 놀랐다”고 했다.
금투협은 삼성증권의 MTS 화면 구성이 이변을 낳았다고 분석한다. 삼성증권 MTS인 ‘mPOP(엠팝)’에서 연금 카테고리에 들어가면 TDF와 디딤펀드가 별개로 구분돼 있다. 투자자는 이 단축 경로를 통해 디딤펀드 라인업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현재는 하나·신한·KB·NH·대신·우리 등 다른 판매사도 MTS에 디딤펀드 전용 단축 경로를 적용했는데, 가장 먼저 만든 삼성증권이 선점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는 셈이다. 미래에셋증권의 경우 TDF와 디딤펀드를 구분 없이 나열했다. 투자자가 디딤펀드만 추려내려면 검색어를 따로 입력해야 한다.
지난해 디딤펀드 출시를 준비하면서 금투협은 판매사들에 MTS 단축 경로 구축 협조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투협으로선 협회 요청에 가장 먼저 응해준 삼성증권이 구세주가 된 셈이다. 디딤펀드는 서유석 금투협회장의 역점 사업이다.
금융당국은 미래에셋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이 MTS 단축 경로 구축에 참여해야 디딤펀드 유입액이 급증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두 대형 증권사 정보기술(IT) 부문은 현재 대체거래소 대응에 주력하고 있다”며 “(디딤펀드 적용이) 당장 이뤄지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
삼성증권 쏠림 현상을 두고 업계에선 연금 상품 후발주자인 디딤펀드가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증거라는 분석도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MTS에 단축 경로를 먼저 만든 정도로 판매 점유율을 싹쓸이했다는 건, 그만큼 아직은 투자자들이 디딤펀드를 잘 모른다는 뜻으로도 읽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