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엘리베이터가 국내 승강기 업계에선 압도적 대장주지만, 글로벌 시장과 초고속 엘리베이터 분야에서는 딱히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해 투자자들 사이에서 볼멘소리가 나온다. 그간 이 회사 주가에 영향을 미친 건 본업보다는 경영권 분쟁이나 남북 경협 테마와 같은 변수였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작년 말 발표한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공시에서 수익성 확보를 토대로 주주환원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투자자들이 우려하는 건 바로 이 지점이다. 해외 시장과 고수익 사업 개척이 지지부진한데 고배당 기조를 이어갈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저출생 우려로 부동산 시장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국내만 안주하다간 회사가 도태될 수 있다는 우려다.

현대엘리베이터 충주 본사 전경. / 현대엘리베이터

4일 한국거래소 기업공시정보시스템(KIND)에 따르면 코스피 상장사인 현대엘리베이터(현대엘리베이(017800))는 지난해 12월 12일 발표한 밸류업 계획 공시에서 “오는 2027년까지 자기자본이익률(ROE) 15%와 주주환원율 50%를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사업 수익성을 확보해 ROE를 개선하고, 주주환원 정책으로 주가수익비율(PER)을 높여 주가순자산비율(PBR)도 2배 끌어올린다는 구상이다.

현대엘리베이터는 밸류업 공시 전부터 대표적인 고배당주로 꼽혀왔다. 2023년 12월 임유철 H&Q코리아 대표를 신규 기타비상무이사로 선임하면서 배당 규모를 대폭 확대했기 때문이다. 작년 3월 현대엘리베이터는 주당 4000원, 총 1444억원의 배당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전년 대비 7배 이상 늘어난 규모였다. 1년 사이 시가배당률은 1.7%에서 8.8%로 높아졌고, 연결 순이익 대비 배당 성향 역시 25%에서 45%로 올라갔다.

밸류업 공시에서 현대엘리베이터는 사업 수익성 확보와 관련해 “주력 사업인 국내 승강기 분야에서 대당 마진을 높이고, 성장 중인 유지 관리 사업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했다. 국내 승강기 유지 관리 수요는 2023년 78만6000대에서 2027년 86만7000대로 늘어날 전망이다. 또 현대엘리베이터는 “한국 건설사의 해외 현장 물량을 지속해서 수주하고, 대형·고속 승강기 분야에서도 수익성 턴어라운드를 달성하겠다”고 했다.

국내 승강기 사업에 대해서는 별말이 나오지 않는다. 투자자들이 불안해하는 부분은 다른 한 축인 해외 사업이다. 현대엘리베이터는 2000년대 초반부터 수출 비중을 높이겠다는 포부를 계속 밝혔다. 그러나 2013년 15% 수준이던 전체 매출 대비 수출 비중은 현재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글로벌 승강기 업체인 오티스가 전체 매출의 약 80%를 해외 시장에서 얻고, 쉰들러와 티센크루프 등도 70% 이상을 해외에서 달성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해외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현지 법인 구축과 영업망 확대가 필수적이지만, 현대엘리베이터는 중국을 포함한 일부 국가에서만 제한적으로 현지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이 역시 오티스가 전 세계 200여개 국가에 진출했고, 쉰들러와 티센크루프가 각각 100여개국에서 사업을 전개하는 것과 비교된다. A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중앙엘리베이터를 인수해 한국 시장에 진출한 쉰들러나 LG산전의 엘리베이터 사업 부문을 사들여 국내 점유율을 올린 오티스처럼 인수합병(M&A) 전략을 추구할 수도 있는데, (현대엘리베이터는) 별 관심이 없는 듯하다”고 했다.

승강기 엑스포 현장을 방문한 관람객들이 현대엘리베이터의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체험하고 있다. / 뉴스1

수익성이 좋은 초고층 승강기 분야에서 이렇다 할 수주 이력이 없다는 점도 주가 상승에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분석이다. 일반 아파트에 들어가는 엘리베이터가 대당 4000만원 수준이라면, 초고층 빌딩에 쓰이는 초고속 엘리베이터는 대당 가격이 10억원을 웃도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엘리베이터는 국내에서 40% 이상의 높은 점유율을 보이고 있지만 대개 중저층 건물용 엘리베이터를 공급하면서 성장해 왔다.

글로벌 초고층 엘리베이터 시장은 오티스·티센크루프·미쓰비시 등 외국 기업이 장악하고 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해외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이들 업체에 밀린다. 과거 123층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승강기 수주 경쟁에서도 현대엘리베이터는 미쓰비시(31대 수주)와 오티스(30대 수주)에 밀렸다. 물론 저층부 200여대를 수주하며 내실을 챙기긴 했으나, 국내에서 초고층 승강기 설치 경험을 쌓을 기회를 따내진 못했다.

금융투자업계 전문가들은 현대엘리베이터가 밸류업 계획의 지속 가능한 이행을 위해서는 안정적인 국내 사업에만 안주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B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는 “건설경기 부진이 당분간 지속할 것으로 예상되는 환경에서 국내 엘리베이터 회사가 한 단계 도약하려면 인공지능(AI)·사물인터넷(IoT) 기반 초고층 건물용 스마트 엘리베이터를 개발하거나 물류센터·스마트팩토리 등 특수 건물용 고부가가치 엘리베이터 시장을 공략해야 한다”며 “탈중국 흐름 속에서 고성장이 기대되는 인도·베트남 등 신흥 시장 진출 전략도 필요하다”고 했다.

C 자산운용사 고위 관계자는 “현대엘리베이터는 글로벌 주요 업체 대비 낮은 영업이익률과 높은 ROE 변동성, 핵심 사업에 대한 중장기 전략 부재 등의 과제가 있다”며 “초고층 엘리베이터 수주와 해외 시장 진출이 필수적인 상황”이라고 했다. 또 다른 펀드매니저는 “해외 진출 등으로 기업가치를 키운다면 적대적 M&A에 노출될 가능성이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