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부동산 개발회사 헝다(恒大·에버그란데)는 지난 12일 또 한 번 채권 이자 지급을 미뤘다. 지난달 23일과 29일에 이어 3번째 이자 지급 유예다. 중국 2위의 민영 부동산 개발회사인 헝다의 채무불이행(디폴트)이 중국 경제와 세계 경제에 어떤 영향을 줄지 세계 투자자들의 눈과 귀가 중국을 향해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중국에는 헝다그룹만 채무불이행 위기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니다. CNN 등 외신에 따르면 중국 부동산 기업 모던랜드(Modern land China)는 오는 25일 만기가 오는 2억5000만달러(약 2970억원) 규모의 부채 상환 연기를 투자자들에게 요청했다. 이 회사는 베이징에 본사를 둔 곳으로 중국과 해외 50개 도시에서 200건 이상의 건설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모던랜드는 “유동성과 현금 흐름 관리를 개선하고 잠재적인 부도를 피하려고 내년 1월말까지 자금 상환 기일을 연기해줄 것을 바라고 있다”고 밝혔다. 또 판타지아 홀딩스(Fantasia Holdings Group)도 지난주 3억1500만달러(약 3780억원)의 부채를 상환하지 못했다. 선전(深圳)에 본사를 둔 아파트 건설회사다. 판타지오 홀딩스는 공시를 통해 “자금 상황과 그룹의 현금 흐름에 미치는 잠재적 영향을 평가하고 있다”고 했다.
이렇게 줄줄이 중국 부동산·건설회사들이 채무를 갚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서 최근 몇 년간 중국의 경제성장과 함께 급속도로 발전한 중국의 건설업과 부동산 시장이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은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중국 건설업과 부동산 시장은 은행 등에서 조달한 자금을 통해 빠른 성장을 이뤄왔지만 코로나 팬데믹의 확산과 경기 둔화 등으로 빌린 돈을 갚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빌린 돈의 규모도 막대하다. 중국의 부동산 부분 대출 규모는 전체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30%에 달하는 규모로 알려졌다.
중국 정부는 헝다 사태를 통제 가능하다고 언급하고 있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불러온 리먼 브라더스 파산처럼 세계 금융시장에 충격을 가져올 문제는 아니라는 얘기다. 하지만 세계 금융위기까지는 아니더라도 헝다 사태는 중국과 밀접하게 연관된 국내 경제와 아시아 증시에 부정적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 중국 부동산 시장이 위축되고 이에 따라 중국 경제성장이 둔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중국 부동산 시장은 빠르게 냉각되고 있다. 삼성증권에 따르면 지난 8월 중국의 주택거래면적은 전년 동기보다 17.6% 줄었다. 선전(深圳)시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0%가 급감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중국 부동산·건설업체 26개사(상장회사 기준) 중 22개사의 자산부채비율은 70%를 넘었다. 자산 중 부채(빚)가 차지하는 비중이 70% 이상이라는 의미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도 최근 중국 주요 부동산 개발업체 30곳 중 14곳이 중국 정부 가이드라인에 미달해 파산 위험이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작년 8월 중국 정부가 제시한 가이드라인은 ▲자산 대비 부채 비율 70% 미만 ▲시가총액 대비 부채 비율 100% 미만 ▲단기 차입금 대비 보유 현금은 1배 이상이다. 이 기준을 지키지 못한 기업에는 헝다를 비롯, 한때 중국 부동산업계 매출 1위였던 뤼디그룹, 중국 최대 부동산 관리서비스업체인 비구이위안이 포함됐다. 또 인천 영종도 복합 리조트인 미단시티 사업 주체인 알에프케이알(RFKR)의 모회사인 광저우 푸리 부동산도 파산위험이 있는 곳으로 분석됐다.
중국 부동산 개발업체들이 발행한 회사채때문에 글로벌 펀드들이 손실을 볼 가능성도 있다. HSBC, 블랙록 등이 운용하는 펀드가 헝다그룹 회사채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헝다 사태의 여파로 지난달 말 중국 등 아시아 기업들이 발행한 미 달러화 표시 채권 수익률이 급등(채권 가격 하락)하는 등 금융시장이 동요하기도 했다.
전종규 삼성증권 수석연구위원은 “헝다 리스크는 부동산 경기 침체와 연결될 경우, 부동산·건설업체의 연쇄 부도 위험과 경기의 경착륙이라는 두 가지 위험으로 전염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최설화 메리츠증권 연구원도 “일반적으로 9~10월은 중국 부동산시장의 소비 성수기이지만 올해는 상업은행의 모기지 대출 제한과 헝다 디폴트 우려 등으로 투자심리가 위축됐다”고 했다.
최 연구원에 따르면 9월 중 중국의 부동산 일평균 거래량은 지난 5년 평균보다 30% 감소했고 부동산 디벨로퍼(시행사)들의 토지매입면적도 2014년 이후의 최저치를 기록했다. 최 연구원은 “(이런 부동산 경기 침체는) 결국 향후 주택개발투자 수요 위축으로 연결되면서 경기에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라고 했다.
대출을 토대로 빠르게 성장해온 중국의 부동산 시장 침체가 국내 경기와 증시에 어떤 영향을 줄지 아직 가늠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중국 경제가 우리나라를 비롯해 아시아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하면 투자자들은 앞으로도 상당한 기간 중국 부동산 시장 동향에 관심을 가져야만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