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랭킹 89위 태국한테 질뻔한 한국농구. 그런데 마치 미국대표팀을 이긴 분위기였다.

안준호 감독이 지휘하는 남자농구대표팀은 20일(한국시간) 태국 방콕 니미부트르 스타디움에서 개최된 ‘FIBA 제다 아시아컵 2025 조별리그 A조 5차전’에서 홈팀 태국과 졸전 끝에 91-90으로 신승했다. 한국은 아시아컵 본선진출을 확정했다.

한국에 귀화선수 없다는 건 핑계일 뿐 

한국농구 역대최악의 졸전으로 불러도 할말 없는 경기였다. 한국은 1쿼터부터 24-23으로 근소하게 앞서며 불안하게 출발했다. 203cm의 독일-태국 혼혈선수 마틴 브루닉은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독일에서 출생한 그는 미국 워싱턴대학을 거쳐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뛰는 선수다.

브루닉이 골밑에서 공만 제대로 잡으면 2득점이었다. 이원석이 일대일에서 당하지 못했다. 브루닉은 이원석에게 인 유어 페이스 덩크슛까지 성공하면서 포효했다. 브루닉이 2쿼터에만 덩크슛 세 개 포함 13점을 몰아쳤다.

문제는 안준호 감독의 기민한 대응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브루닉이 아무리 잘해도 KBL에서 뛰는 외국선수보다는 수준이 낮다. 절대로 막을 수 없는 수준은 아니다. 골밑에 공을 투입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등 수비전술로 얼마든지 커버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은 이원석이 뚫렸을 때 도움수비 등 대책이 전무했다.

결국 하윤기가 나서면서 어느 정도 일대일로 브루닉을 제어하면서 주도권을 잡았다. 한국이 전반까지 55-43으로 리드했다. 한국은 전체 리바운드에서 43-46으로 뒤졌다.

귀화선수 모제스 모건이 가세한 태국의 전력은 몰라보게 좋아졌다. 그렇다고 한국선수들이 주눅들 정도는 아니었다. 라건아 은퇴 후 귀화선수 없다고 외부환경만 탓할 게 아니다. 한국은 충분히 달아날 수 있는 상황에서 안일한 턴오버가 많았다. 선수들이 태국을 얕잡아 보고 진지하게 임하지 않았는지 돌아봐야 한다.

농구변방 태국, 하지만 예전의 전력 아니었다 

FIBA랭킹 89위인 태국은 아시아에서도 18위의 농구변방이다. 과거에는 디비전B라 디비전A의 한국과 붙을 일이 아예 없었다. 하지만 최근 디비전A로 올라왔고 한국을 거의 잡을 뻔했다.

태국은 축구의 나라다. 방콕의 스포츠용품점에 가도 축구화와 러닝화는 많지만 농구화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2012년 출범한 프로농구리그 TBL(Thailand Basketball League)이 있지만 리그 수준이나 규모에서 KBL과는 비교하기 어렵다. 그만큼 태국은 축구에 진심인 나라다.

태국팬들도 농구로 한국을 잡을거라는 기대는 크지 않았다. 현지에서 한국선수를 응원하는 태국 여성팬들도 있었다. 하지만 막판 한국이 턴오버를 남발하는 사이에 태국이 대추격전을 펼치자 홈팬들이 열광했다. ‘우리도 한국을 잡을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줬다. 한국대표팀이 태국농구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한국선수들 안일한 경기태도, 스카우팅과 대처도 부실 

한국은 종료 6분 44초전까지 81-68로 앞서 승리를 낙관했다. 이때부터 한국의 안일한 태도로 턴오버가 쏟아졌다. 태국이 폭풍 3점슛을 터트리며 종료 3분 44초전 81-82로 역전에 성공했다.

마지막까지 한국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자유투 성공률이 41.7%에 그쳤다. 설상가상 91-90으로 쫓기는 종료 7초전 박지훈이 치명적 파울을 범했다. 상대가 작전시간도 없는 상황에서 팀파울인데 쓸데없는 파울을 했다.

태국이 자유투 2구를 다 넣으면 한국의 패배가 확정적인 상황. 기적적으로 퐁사콘 자임사와드가 던진 자유투 2구가 모두 실패했다. 이우석이 리바운드를 잡았지만 자유투 2구를 모두 놓쳤다. 한편의 코미디 영화 끝에 한국이 겨우 1점차로 이겼다.

가장 중요한 승부처에 국가대표에 처음 뽑힌 박지훈을 고집해 이런 상황을 만든 안준호 감독의 대응이 최악이었다. A매치가 처음인 박지훈은 경기내내 소극적이고 좋지 않았다. 안 감독이 대응할 시간은 충분히 있었다.

상대선수를 제대로 분석했는지도 의문이다. 태국의 나타칸 무앙분은 3점슛 8개 중 6개를 꽂으며 22점으로 맹활약했다. 이 선수는 신장이 183cm지만 태국 챔피언 4회를 차지한 하이테크에서 주전가드로 뛰는 선수다. 특히 전반부터 3점슛 감각이 대단히 좋았다. 결코 승부처에서 놔줘서는 안되는 선수였다.

무앙분은 4쿼터에만 3점슛 4개를 터트리며 태국의 맹추격을 이끌었다. 보통 3점슛 1-2개가 연속으로 들어가면 감독이 아무리 모르는 선수라도 경계를 한다. 하지만 안준호 감독은 아무런 대처가 없었다. 무앙분도 잡자마자 계속 3점슛을 쏠 정도로 절박했다. 결국 상대에 대한 부실한 스카우팅이 이 선수를 커리로 만들어줬다.

태국에게 승리 당하고(?) 웃다니…선수들 최소한의 자존심마저 없나? 

가장 실망스러운 태도는 경기 후였다. 일부 선수들이 승리에 취해 서로 웃으면서 만족하는 모습을 보였다. 자신보다 한 수 아래라고 생각한 상대에게 고전하면 분하고 자존심이 상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한국선수들은 마치 미국이나 독일을 잡은 것처럼 행동했다.

태극마크를 단 대표선수로서 최소한의 자존심은 어디로 갔나. 우리가 언제부터 태국을 이기고 기뻐하는 팀이었나. 적어도 아시아 정상에 섰던 과거 대표팀 선배들은 그러지 않았다.

보다못한 주장 이승현이 후배들에게 “진지해지자! 지금 이겼다고 웃을 때가 아니잖아?”라고 한마디했다. 적어도 이승현은 진지하게 아시아 정상을 노렸던 마지막 세대라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경기 후 안준호 감독은 “깊이 반성하고 보완하지 못한다면 국제대회에서 한국 남자농구가 경쟁력을 갖기 어려울 것이다. 오늘 경기의 부족함은 전적으로 감독인 내 책임이라고 생각하며 반성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하윤기는 “부족한 모습을 보여드려 너무 죄송한 마음이 크다. 다음 인도네시아전에서는 더 좋은 경기력을 보여드리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한국은 23일 인도네시아와 원정경기를 치른다. 한국은 지난해 고양에서 인도네시아를 맞아 고전 끝에 86-78로 이겼다. 결과를 떠나 한국선수들이 태국전과는 다른 진지한 태도로 임해주길 바란다. / jasonseo34@osen.co.kr

[OSEN=서정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