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이 장기화되면서 일부 공장 라인이 ‘셧다운’되는 등 자동차 업계가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정부가 차량용 반도체 수급 대책에 열을 올리고 있다. 물량 확보를 위해 차량용 반도체 부품관련 신속통관을 지원하고, 단기간에 사업화가 가능한 품목부터 예산을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이같은 지원 방안에도 불구하고, 당장 자동차 회사들이 겪고 있는 반도체 수급난을 덜어낼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은 없는 상황이다. 전세계 차량용 반도체 생산량 중 국내 생산량이 차지하는 비중이 2%에 불과한 상황에서,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들과 경쟁을 뚫고 반도체 물량을 확보하는 것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차량용 반도체를 국내에서 생산하기 위한 설비 전환 또한 쉽지 않다는 문제도 있다. 이때문에 업계에서는 반도체 수급난이 연말까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정부,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 해결 위해 신속통관 등 지원나서
최근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은 완성차 업계가 코로나19에 따른 수요 예측에 실패하면서 일어났다. 주요 반도체 공장이 있는 미국 텍사스, 일본, 대만 등에 자연재해가 겹치면서 어려움이 심화됐다. 미국을 비롯해, 주요 자동차 제조업체를 갖고 있는 국가들은 정부가 앞 다퉈 차량용 반도체 생산에 투자를 아끼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우리 정부도 발 벗고 나섰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20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프랑수아 프로보 르노그룹 해외사업총괄 부회장과 비공개 면담을 통해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과 관련한 협조를 요청했다. 이는 앞서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5일 확대경제장관회의에서 차량용 반도체 수급 문제를 언급한 후 정부 차원의 대책을 세우기 위한 첫 행보였다.
아울러 산업부는 최근 '차량용 반도체 단기 수급 대응'을 발표하고 민·관 협력 채널을 활용한 주요 국가, 해외 반도체 기업, 협회 등과 긴밀히 협의를 진행 중이다. 우선 정부는 단기수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수의 반도체를 위탁생산하고 있는 대만을 포함한 주요국과 기업, 협회와 관련 협의를 추진하고 있다.
또 차량용 반도체 부품관련 신속통관을 지원하고 조달관련 출입국 기업인에 대한 자가격리면제를 실시했다. 또 단기간에 사업화가 가능한 차량용 반도체 품목 10여 개를 발굴해 400억 원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내년에는 공급망 자립화를 위한 예산을 대폭 증액하고, 내달 발표할 ‘K-반도체 벨트 전략’에도 차량용 반도체 수급 대책안을 담을 예정이다.
◇단기수급난 해결은 어려워…‘보릿고개’ 연말까지
하지만 이같은 정부의 대응에도 불구하고 단기 수급난을 해결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업계의 지적이다. 정부가 사업화를 지원하기로 한 품목에는 전력 반도체, 주행영상 기록장치용 반도체 등이 포함됐지만 수급 부족의 핵심 원인인 MCU(마이크로 컨트롤러 유닛)는 빠져 있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이 장기화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나온다.
현재 국내 차량용 반도체 시장은 98% 이상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 MCU 등 주요 품목의 국내 공급망은 존재하지 않는 상태다. 설비 전환도 쉽지 않은 상태다. MCU 중심의 차량용 반도체 산업은 시장 규모가 제한적이고 수익성이 낮아 ‘일시적인 수급 부족’를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반도체 업계가 신규투자나 생산설비 증설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또 국산화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안정성·신뢰성 검증기간이 오랜기간 필요해 완성차 업체에서 당장 공급망을 전환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국산화에 착수한 전력 반도체 등 부품 역시 실제 상용화까지는 2~3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자동차 부품의 특성상 혹한과 고열에도 정상적으로 작동해야 하고 15~20년간 문제가 없어야 하기 때문에 품질 테스트에만 1~2년이 넘게 소요될 전망이다. 당장의 위기를 해결하는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 셈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정부가 반도체 공급망에 대한 중장기적인 방법에 집중적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반도체 패권 전쟁 속에서 차량용 반도체가 전략 물자화되고 있는만큼 단기 수급난을 해결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성공적인 공급망 자립화 정책을 수립하는 것이라는 제언이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공학과 교수는 “차량용 반도체는 전략물자화 되고 있다. 이번과 같은 사태가 언제든 다시 반복될 수 있는 것이다. 가을까지 물량 확보가 어려운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정부가 투트랙으로 단기 수급 노력과 함께 공급망 내재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면서 “차량용 반도체 생산의 수익률이 떨어질 수 있으니 세제혜택 등으로 정부가 적극 지원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