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후 12시 서울 지하철 5호선 여의도역 3번출구. 역 앞에 작은 흡연부스가 자리 잡고 있었지만, 십여명의 사람들이 부스 바깥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주변에는 담배연기가 자욱했고 지나가는 행인들은 연기를 피하려는듯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 곳을 지나가던 직장인 A씨는 "바깥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 사실상 실내 흡연부스가 무용지물처럼 보인다"며 "코로나 감염도 우려되고 담배 연기도 맡기 싫어 다른 길로 돌아갈 때가 많다"고 말했다.
이날 기준 여의도 증권가 일대의 흡연부스는 총 7곳. 흡연부스는 10명만 들어가도 북적일 만큼 비좁아 보였다. 흡연자 김모(40)씨는 "빌딩 숲 속 증권사가 즐비한 이곳 특성상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얼마나 많겠느냐"며 "고작 버스정류장만한 흡연부스 7곳으로 수많은 흡연자를 수용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다.
◇흡연부스 7곳 모두 개방형… "칸막이에 불과한데 무슨 소용" 불만
서울 영등포구는 지난해부터 여의도역 일대를 금연거리로 지정하고 흡연부스를 설치했다. 그러나 흡연자 수에 비해 흡연구역이 턱없이 부족한 데다가 인근에 대형 백화점까지 들어서면서 인근 아파트 주차장이 흡연구역으로 전락하는 등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해 영등포구는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간접흡연 피해방지 조례’에 따라 여의도역 일대와 국회의사당 앞 등을 금연거리로 정했다. 이에 따라 영등포구가 지정한 관내 금연구역은 총 1만3862개소에 달한다. 금연구역에서 흡연이 적발될 경우 과태료 10만원이 부과된다.
구는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을 막고 흡연부스 이용자간의 간접흡연을 막기 위해 자연 환기가 가능한 개방형 구조로 설치했지만, 이같은 구조의 흡연부스가 행인들이 많은 인도에 버젓이 설치돼있어 불만이 속출하고 있다.
여의도 직장인 A씨는 "길거리가 담배꽁초 하나 없이 깔끔해진 건 매우 만족스럽다"면서도 "대충 칸막이만 쳐졌을 뿐, 바로 옆에서 마스크를 벗고 담배 피우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흡연부스로서의 기능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정유진(28)씨도 "정류장 바로 옆에 흡연부스가 있다보니 연기가 자꾸 넘어와 흡연부스에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실제 정씨가 있던 ‘여의도 지하차도입구’ 버스 정류장과 불과 열 걸음도 안되는 거리에 개방형 흡연부스가 자리하고 있었다.
◇대형백화점 생겼는데 흡연실은 운영 중단… ‘너구리 굴’ 전락한 인근 아파트
여기다 지난 2월 증권가 건물과 아파트 단지 사이에 더현대서울 백화점이 들어서면서 흡연에 대한 불만은 인근 주민들에까지 번졌다. 증권가 빌딩과 아파트 단지가 한 데 모여 있어 직장인과 거주민이 섞여 사는 지역 특성상 이미 주민들은 담배 꽁초나 간접흡연 문제 등으로 몸살을 겪고 있었는데, 백화점 관계자들의 흡연 문제까지 더해진 것이다.
인근 아파트 관리사무소는 궁여지책으로 ‘외부인 출입을 금합니다’ ‘외부인 흡연 등으로 주민들이 힘들어하고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걸린 현수막을 아파트 입구에 내걸었다. 그러나 단지 내 벤치를 비롯해 상가 일대는 점심식사를 마치고 나온 직장인들이 점령한 모습이었다. 사원증을 목에 건 채 커피를 주문하며 자연스럽게 담배를 물어도 아무도 제지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아파트 상가에서 만난 백화점 근무자 B씨는 "당초 백화점 위층에 흡연실이 있었지만, 최근 코로나 확진자 증가로 폐쇄됐다"며 "점심시간 이후 커피 한 잔 하면서 아파트 상가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들어가는 직원이 많다"고 말했다.
◇금연구역은 늘어가는데… ‘흡연권’은 어디로
불편함을 호소하기는 흡연자들도 매한가지였다. 흡연부스 설치는 당초 흡연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함이었지만, 실제 수요보다 훨씬 적게 설치된 탓에 2m 거리두기 조치가 무색하게 가까이 붙어 선 채 담배를 피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인근 증권사에 근무 중이라는 김모(40)씨는 "금지구역은 늘었는데, 흡연구역은 너무 적다"며 "흡연을 하려면 마스크를 벗어야 하는데, 옆 사람과 부대껴가며 피울 수밖에 없는 공간만 겨우 주어지니 밀접 접촉에 의한 코로나 감염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실제 김씨 외에도 족히 15명은 되어보이는 직장인들이 이곳 부스에 빼곡히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수십명이 비좁은 곳에서 동시에 담배를 피우다보니 흡연부스 안쪽은 눈 앞이 뿌옇게 보일 정도로 연기가 가득했다.
흡연자들은 그럼에도 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말했다. 흡연 부스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직장인 강모씨는 "비흡연자들이 (흡연부스에 대해) ‘왜 저런 걸 만드느냐’ ‘냄새난다’고 하기 때문에 흡연권을 주장하기가 쉽지 않다"며 "사회 통념상 담배 피우는 것 자체가 마치 잘못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좁은 부스만으로도 만족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강씨는 "흡연 부스에서 수십명씩 마주하고 있으면 겁나는 것도 사실"이라고 답했다.
이같은 문제 제기에 영등포구는 흡연부스를 증설해가겠다는 입장이다. 영등포구 관계자는 "간접흡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금연구역을 먼저 지정했지만, 여의도 전반에 흡연부스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며 "올해 금융감독원 일대 등 인도가 넓은 세 곳을 더 지정해 흡연부스를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금지구역 흡연으로 인한 인근 아파트 주민들의 불만에 대해선 “백화점이 처음 오픈 했을 때 인파가 많이 몰려 주민 불만이 컸다”며 “현재는 구청 자체 인력을 투입해 백화점의 방역수칙 위반 단속을 실시하고 있어 주민 불만이 줄어드는 추세인 것으로 알고 있다.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관리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