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억5000만원짜리 아파트를 7억원에 사게 하면서, 집값이 올랐으니 참으라고 하는 건가요? 팔아야 시세 차익이지, 살고 있는 집인데 대출 이자 ‘부담에 생계를 이어나가기도 힘들 지경입니다." (김동령 전국 LH 중소형10년공공임대아파트연합회 회장)
"처음 계약할 때부터 10년 뒤의 감정 평가로 분양가를 정하도록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습니다. 집값이 이렇게 급등한 것은 ‘예상 외’지만, 그렇다고 특혜를 줄 수도 없으니까요." (국토교통부 관계자)
10년 공공임대 아파트의 분양 전환가격을 두고 임차인들의 지속적인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09년부터 공급된 10년 공공임대는 무주택자가 저렴한 임대료로 10년 간 거주한 다음 분양 전환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임대주택의 성격을 갖고 있지만, 일반적인 분양 아파트와 마찬가지로 당첨 시 청약 통장이 소모되기 때문에 일종의 후분양 아파트라고 볼 수 있다.
26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10년 공공임대 임차인들은 "목돈 마련이 어려운 서민의 내 집 마련을 돕겠다는 취지의 제도인데, 정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당초 취지와 달리 과도하게 높은 분양가를 책정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논란이 된 것은 분양 전환가격의 산정 기준이다. 10년 공공임대 입주자 모집공고에 따르면, ‘분양하기로 결정한 날을 기준으로 2인의 감정평가업자가 평가한 당해 주택의 감정평가금액의 산술 평균금액으로 산정한다’고 규정돼있다. 당연히 분양하는 시점의 인근 시세에 기반한 감정평가액을 산정하게 되고, 여기서 분양가 논란이 나왔다. 최근 몇 년간 가파르게 오른 부동산 가격이 분양가에 고스란히 반영됐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경기 성남시 분당구 삼평동 ‘판교 봇들마을 3단지’ 전용 59㎡는 지난해 7억원 안팎에 분양 전환가가 매겨졌다.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공공분양 아파트 ‘판교 봇들마을 3단지’ 전용 59㎡의 분양가는 2억5000만원 정도였던 것과 비교하면 3배에 달하는 가격이다.
임차인들은 분양 전환가격이 너무 비싸다며 LH와 정부를 상대로 집단 항의에 나섰지만, 이를 바라보는 시민의 시선도 곱지만은 않다. 집값이 멈출 줄을 모르고 치솟는 바람에 분양가가 비싸졌다고 하더라도 ‘로또 분양’인 꼴이 됐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9일 판교 봇들마을 3단지 전용 59㎡는 13억3000만원에 거래됐다.
비슷한 시기에 분양전환된 다른 단지도 유사한 상황이다. LH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 자곡동 ‘LH강남아이파크’의 평균 감정금액은 각각 ▲전용 59㎡ 7억4535만원 ▲전용 74㎡ 8억5502만원 ▲전용 84㎡ 9억6061만원이었다. 이 아파트 전용 84㎡의 지난 3월 실거래가는 17억원에 달한다.
김동령 전국 LH 중소형10년공공임대아파트연합회 회장은 "그나마 이런 단지들은 ‘시세가 더 올랐다’고 위안하며 한 발 물러설 수 있지만, 문제는 앞으로 분양전환에 나서 감정평가가 진행될 단지들"이라고 말했다.
지난 2016년 입주해 최근 조기 분양전환을 진행하고 있는 충남 천안시 서북구 불당동 ‘LH천년나무7단지’는 임차인들 뿐만 아니라 시의회 의원들까지 분양가 심사에 반발하고 나섰다.
국토부 산하 감평사협회는 인근 LH 아파트 시세의 60~70%로 산출해 3.3㎡당 1280만원으로 분양가를 매겼다. 이는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되는 일반 아파트보다 비싼 가격이다. 천안시의회 의원들은 성명서를 내고 "책정가가 시세의 80% 달해 공공임대주택이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 의심치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10년 공공임대 주택은 감정가에 따라 분양전환 하도록 법령에 정해져 있어 현 시점에서 소급해 분양가를 깎아주거나 책정 방식을 바꿀 수는 없다"면서 "임차인이 원하면 분양전환을 거부할 수도 있기에 강제성이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10년 공공임대와 같은 방식의 분양전환형 임대주택은 애초부터 분란이 생길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고 지적한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수년 뒤 분양전환 시점에 가격이 오르던 하락하던 임차인과 사업자 어느 한 쪽은 불복할 수 밖에 없다"면서 "분양주택이면 처음부터 분양하고, 임대주택은 아예 임대만 하는 식으로 이 제도 자체를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같은 문제점을 인식하고 지난 2019년 이후 10년 공공임대 공급을 중단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폐기했다는 입장이다. 대신 임대 사업자가 공공지원을 받아 건설·매입한 주택을 10년간 저렴한 가격에 임대하되, 분양전환과 관련된 조항은 없는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을 도입해 공급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여권에서는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도 임차인에 우선 분양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을 분양전환할 경우 거주하고 있는 무주택 임차인에게 우선 분양하도록 하는 내용의 ‘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부동산업계 한 관계자는 "이렇게 될 경우 다시 분양가 논란이 생길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 사업을 하려는 민간 사업자를 찾기 어려워지는 문제가 생길 것"이라면서 "시장 논리를 거스르는 제도를 자꾸 만들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