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공간에서 남녀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일부 유명인들이 사용한 신조어를 두고 ‘남성 혐오’ 단어 논쟁이 일어난 것에서 나아가, 의도적으로 혐오 표현을 사용해 특정 성별을 공격하는 움직임까지 생겨나 이를 방치할 경우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플라스틱 재활용에 대해 설명하는 환경운동연합 게시물. 이 단체는 재활용이 불가능한 재질을 가리켜 ‘나머지’란 의미의 ‘아더(Other)’란 단어를 사용했다.

환경운동연합은 18일 소셜미디어(SNS) 페이스북에 사과문을 올리며 "젠더 혐오와 갈등, 아동·청소년 혐오의 문제가 한국 사회의 심각한 모순임에도 불구하고 콘텐츠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이에 대해 충분히 숙고하지 못했다"라며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단체의 성인지·인권 감수성을 제고하겠다"고 했다.

논란은 환경운동연합이 플라스틱 재활용법을 안내하기 위해 올린 만화 게시물에서 시작됐다. 환경운동연합은 ‘복합재질 플라스틱’은 재활용이 불가능해 소각이나 매립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알리며 ‘나머지’란 뜻의 영어 표현 ‘아더(OTHER·만화에서는 아덜로 지칭)’를 사용했다.

해당 만화에서는 아더란 단어가 ‘아들’과 발음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남자아이 그림이 사용됐고, 한 여성은 "우리집 아덜은 쓰레기가 되느냐"는 아이의 질문에 "태생부터 그리 정해져있다"고 답한다. 이후 ‘남성 전체를 태생부터 쓰레기로 취급하는 것처럼 비춰진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신조어를 사용했다가 ‘남성 혐오’가 의심된다는 이유로 지적을 받은 사례는 이 뿐만이 아니다. 방송인 공서영은 지난 14일 자신의 SNS 계정에 한 아이스크림 브랜드 제품 사진과 함께 ‘힘죠’라는 단어를 사용했다가 남성 혐오 논란에 휩싸였다. 성소수자 리벤지 포르노에서 사용된 ‘힘죠’라는 단어가 일부 여성 커뮤니티에서 남성 혐오를 조장하기 위해 사용하는 단어라는 이유에서다.

유튜버 ‘고기남자’의 콘텐츠

남성들은 온라인상에서 쓰이는 ‘허버허버’, ‘오조오억개’ 등도 남성 혐오적 표현이라고 보고 있다. 허버허버와 오조오억개는 각각 음식을 허겁지겁 먹는 모습, ‘많다’를 강조하는 의미로 사용된다. 그러나 해당 표현들이 여초 커뮤니티에서 즐겨쓰는 말이란 주장이 제기되면서 남성 혐오 표현이라는 지적이 제기됐고, 이 표현을 사용한 유튜버 고기남자, 서울대공원, 방송인 하하 등이 사과를 했다.

반대로 ‘여성 혐오’ 단어를 사용하거나 페미니스트에 대한 노골적 반감을 드러내 비판을 받은 사례도 있다. 최근 서울의 한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생 모집 공고를 올리며 ‘페미니스트가 아니한 자’, ‘오또케오또케 하는 분, 지원하지 말라’라고 했다. ‘오또케오또케’는 여성이 급한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어떡해’만 반복해 외친다는 의미로 여성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사용된다. 해당 공고는 성차별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자 채용 사이트에서 삭제된 상태다.

단어 사용을 둘러싸고 촉발된 남녀 갈등은 여성 징병제 논의로까지 이어졌다.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여성도 징병대상에 포함시켜달라’는 내용의 청원 동참글이 확산되고 있다. 청원인은 "여자는 보호해야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나라를 지킬 수 있는 듬직한 전우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해당 청원은 여러 남초 커뮤니티에서 지지를 얻으면서 청원 시작 하루 만인 20일 오후 1시 기준 11만2000여명의 동의를 얻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여성도 징병대상에 포함해달라’는 내용의 게시글이 올라왔다.

일각에서는 인터넷 공간에서의 성별갈등이 지속될수록 애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고 사회적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해당 단어의 뜻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 많은 상황에서, 특정 성별 혐오와 관련 없이 일상적으로 사용되던 단어를 사용하는 것까지 문제 삼는 것은 지나치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오조오억이 왜 남혐(남성 혐오) 용어인거냐’, ‘오조오억은 남혐 사이트에서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유래가 남혐도 아니지 않느냐’ 등의 글들이 잇따르고 있다.

구독자 106만명을 보유한 유튜버 릴카는 6개월전 영상에 오조오억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비난의 대상이 됐다. 19일 릴카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 커뮤니티에 "6개월 전 게시한 영상으로 문제가 생겼고, 이로 인해 마음이 상한 분들이 많은 항의를 했다"며 "영상 하나하나에 더 신경쓰겠다"고 사과했다.

전문가들은 단어가 사용된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과거 문제가 없이 사용되던 말들이 현 시대의 기준에 맞춰 재평가 되기도 한다"면서도 "도박꾼들이 도박장의 의미로 사용하기도 하는 ‘하우스(House)’라는 단어가 일상에서 비난 받지 않듯 ‘남성 혐오’ 단어라고 일컬어지는 단어도 해당 단어가 사용된 상황과 맥락, 말하는 사람의 의도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