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복지기금으로 옵티머스 펀드에 투자했던 한국농어촌공사, 한국마사회, 한국전력공사가 금융감독원의 금융분쟁조정위원회 나흘 전에 발표된 대법원 판례 덕분에 의도치 않은 행운을 얻었다.

당초 금감원과 NH투자증권은 한국농어촌공사, 한국마사회, 한국전력공사를 전문 투자자로 분류했다. 하지만 분조위가 열리기 나흘 전에 공공기관 사내복지기금을 일반 투자자로 해석하는 판례가 나오면서 이들 세 기관은 일반 투자자로 신분이 바뀌었다.

일반 투자자는 전문 투자자보다 손실을 보전받기 쉽다. 금감원 분조위는 NH투자증권에 금융 지식이 없는 일반 투자자에게 투자 원금 전액을 반환하라고 권고했다. 반면 전문 투자자는 어느정도는 투자에 대한 책임이 있었다고 판단해 법정소송이 필요하다고 봤다.

옵티머스자산운용.

7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한국농어촌공사, 한국마사회, 한국전력공사 등 공공기관 세 곳은 옵티머스 펀드 분쟁조정안에서 일반 투자자로 분류됐다. 자본시장법상 일반 투자자는 전문 투자자만큼의 책임 능력이 부족해서 투자자 보호를 받는 집단을 의미한다.

전날 금감원 분조위는 NH투자증권에게 일반 투자자에 한해서 ‘착오에 의한 계약취소(착오취소)’를 적용하라고 권고했다. 착오취소가 적용되면 NH투자증권은 투자자에게 원금을 모두 반환해야 한다.

다만 금감원은 전문 투자자에 대해서는 법정 소송으로 시시비비를 가려보라고 권고했다. 금융 전문성을 갖춘 전문 투자자가 공공기관 확정매출채권의 실재 여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투자자 책임이 있다고 해석할 여지가 있는 탓이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착오취소는 투자자의 직업, 행위의 종류, 목적 등에 비추어 요구되는 주의를 현저히 결여한 경우 투자자의 중대한 과실이 있었다고 봐서 성립되지 않는다.

당초 이들 기관 세 곳도 사내복지기금을 통해 옵티머스에 투자했으므로 법정 소송을 거쳐야 하는 전문 투자자로 분류됐다. 자본시장법 시행령 제10조 3항에 따르면 법률에 따라 설립된 기금과 기금을 관리·운용하는 법인은 전문 투자자로 분류된다.

그래픽=송윤혜

상황은 분조위가 열리기 나흘 전인 1일 공공기관 사내복지기금을 일반 투자자로 보는 대법원 판례가 나오면서 반전됐다. 대법원이 사내근로복지기금은 전문 투자자가 아닌 일반 투자자에 해당해서 투자자 보호 의무가 있다고 선고한 것이다.

대법원은 "전문 투자자의 범위는 자본시장법과 그 시행령에 따라 명백하게 인정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한정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면서 "근로복지기본법에 따라 설립된 법인인 사내근로복지기금은 전문 투자자로 규정하고 있는 ‘법률에 따라 설립된 기금’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에 따라 금감원은 NH투자증권으로부터 받은 투자자 목록에서 한국농어촌공사, 한국마사회, 한국전력공사 사내근로복지기금 세 곳과 기업 사내복지기금 네 곳 등 총 7곳을 일반 투자자로 재분류했다. 당초 NH투자증권이 전문투자자로 분류해서 금감원에 제출한 기관들이었다. NH투자증권도 대법원 판례에 따라 이들 기관을 일반 투자자로 재분류하는 것에 동의했다.

금감원의 면죄부에 따라 이들 기관 세 곳도 투자 원금 전액을 반환받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현재 이들 기관은 NH투자증권에 착오취소를 적용하라는 민사소송을 진행하는 단계다. 투자자가 금감원의 분쟁조정 대상에 포함되려면 소송을 진행하지 않아야 한다. 앞서 이들 기관은 NH투자증권이 분쟁조정안을 수락하면 소송을 취하하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현 상황과는 별개로 이들 기관은 공공기관인데도 공공기관 확정매출채권의 존재 여부를 파악하지 못해 충분한 주의 의무를 기울였느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지난해 안병길 국민의힘 의원실이 입수한 NH투자증권과 한국농어촌공사의 통화 녹취록에는 농어촌공사 관계자가 공공기관 매출채권 개념에 의문을 제기하는데도 20억원 투자를 섣불리 결정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국정감사에서 한국농어촌공사는 상품제안서에 수익성과 위험성에 대한 설명이 나와있지 않음에도 전화상으로 관련 내용을 듣고 섣불리 투자 결정을 내렸다는 질타를 받았다.

김인식 한국농어촌공사 사장이 지난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한국농어촌공사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김철웅 금감원 소비자권익보호 담당 부원장보도 분조위 결정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옵티머스 펀드 투자자 일부는 공사였다"면서 "공사 내부 승인 절차가 있어서 (펀드 투자) 사실을 어느 정도 인지했을 텐데 공공기관 확정매출채권 존재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면서 공공기관에도 투자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일반 투자자 가운데 주의 의무를 결여한 곳도 전액 반환이 가능하냐는 질문에 김 부원장보는 조선비즈와 전화 통화에서 "일반 투자자도 중과실 소지가 있다면 자율조정 과정에서 착오취소를 적용받지 못할 수도 있다"면서 "NH투자증권이 조정안을 수락하더라도 일반 투자자 일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 다시 금감원에 안건이 회부되고 조정이 결렬되면 소송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한국농어촌공사는 30억원, 한국마사회는 30억원, 한국전력공사는 10억원을 사내근로복지기금을 통해 옵티머스 펀드에 투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