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스토킹 처벌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가해자를 처벌하는데만 초점이 맞춰져 피해자를 제대로 보호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스토킹 끝에 피해 여성의 집에 찾아가 일가족까지 무참히 살해한 ‘노원구 세 모녀 살인사건’이 되풀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지난 5일 경찰이 신상을 공개한 노원구 세 모녀 살인사건의 피의자 김태현(25)은 온라인 게임을 통해 알게 된 한 여성을 3개월간 스토킹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일방적으로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만나줄 것을 요구하던 김씨는 지난달 23일 노원구의 피해자 자택으로 찾아가 피해 여성과 어머니, 여동생까지 세 명을 잔혹하게 살해했다.
노원구 세 모녀 살인사건이 발생한 다음 날인 24일 국회에서는 스토킹을 범죄로 간주해 처벌하는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 처벌법)’이 통과됐다. 스토킹 처벌법은 스토킹을 한 사람에게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내릴 수 있도록 한 것이 핵심내용이다.
그러나 스토킹 처벌법은 가해자를 처벌하는데 치중해 정작 장기간 극심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는 피해자나 가족 등을 제대로 보호할 만한 조치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 한국여성의전화 관계자는 "피해자의 가족 또한 스토킹 범죄로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은 그동안 수많은 통계와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다"면서 "피해자 주변 인물들까지 보호할 수 있는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스토킹 가해자가 처벌된다고 하더라도 과태료 처분 정도로는 범죄를 막기 역부족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노원 세 모녀 살인사건 가해자에게 스토킹 처벌법을 적용했어도 살인을 저지르기 전 육체적 상해를 입힌 적은 없었기 때문에 과태료 부과 정도의 처벌만 내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이코패스 성향이 있는 사람의 경우 상대방이 죽거나 본인이 죽어야 스토킹이 끝나기 때문에 과태료 처분 정도로는 효과가 없다"고 강조했다.
스토킹 범죄의 경우 재범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구속수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승 연구위원은 "피해자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재범의 가능성이 농후할 경우 구속수사를 하기도 하는데, 스토커의 성격·행동 교정을 위해서도 30일 정도는 격리를 해야 한다"고 했다.
법률 전문가들은 가해자가 피해자나 그의 가족을 회유해 신고 또는 고소를 취하하도록 하는 ‘반의사불벌’ 조항도 폐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현욱 한국여성변호사회 전 회장은 "피해자는 왜 합의를 해주지 않느냐는 2차 가해에 시달리거나 해코지를 당할까 두려워 마지 못해 합의를 해 줄 가능성이 있다"면서 "용서해달라며 또다시 쫓아다니는 것이 두려워 겁이 나 수사 의뢰를 못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반의사불벌 조항은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가족부는 스토킹 피해자 보호조치에 대한 연구 용역을 진행해 오는 8월까지 마무리하고 관련 법안을 만드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스토킹 피해자를 보호시설에서 머무를 수 있도록 하는 게 핵심 내용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여가부 관계자는 "현재는 가정폭력이나 성폭력 피해자의 경우만 보호시설에 입소할 수 있어 스토킹 피해자는 보호받지 못했다"면서 "만약 스토킹 처벌법이 시행되는 9월 이전에 피해자 보호법이 제정되지 못하더라도 사업 운영지침을 변경해 피해자 보호가 가능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