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펌 매출에서 자문 컨설팅 비중 커져 기업들 로펌에 언론 대응 컨설팅도 요구
중앙일보를 대표하는 칼럼니스트인 권석천 기자가 최근 사표를 내고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법조계에서 화제가 됐다. 권석천 기자는 최근까지 JTBC 보도총괄을 지냈다. 한 대형로펌 관계자는 "기자 출신 전문위원이나 고문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권석천처럼 이름값이 있는 인물이 로펌으로 바로 자리를 옮긴 건 매우 드문 일"이라고 말했다.
권 기자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대선 가도에 함께 할 것이라는 풍문도 있었다. 갑작스러운 로펌행에 법조계가 더 놀란 이유다. 대형로펌의 '고문'이 어떤 자리길래 언론사 편집국장을 지낸 인물까지 영입하는 걸까.
◇권석천의 로펌行… 여론전 챙기는 로펌 분위기 반영 로펌은 변호사가 중심이 되는 조직이지만, 변호사만으로 할 수 없는 일도 많다. 민사나 형사사건은 변호사만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공정거래법이나 전자금융거래법 같이 개별 산업군에 대한 법률은 변호사만으로는 정확한 해석이나 내용 파악이 어렵다.
이때 필요한 존재가 전문위원이나 고문이다. 전문위원은 한 분야에 10~15년 정도의 경력을 가진 전문가들이고, 고문은 2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이들이다. 고문은 보통 기관장급 인물이 맡는 경우가 많다. 김앤장은 고문이 70명이 넘고 태평양이나 광장, 세종, 화우, 율촌 같은 대형로펌도 30여명에 달하는 고문을 운영하고 있다.
대형로펌에서 고문을 지낸 A씨는 "경제부처가 만드는 법률은 그 부처에서 근무한 경험이 없으면 법률의 입법 취지나 운영 과정을 모르기 때문에 아무리 변호사라고 해도 정확한 판단이 쉽지 않다"며 "정부부처의 업무 프로세스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전문위원이나 고문의 손을 거치면 변론이나 자문의 방향이 정반대로 바뀌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대형로펌의 매출에서 송무보다 자문이나 컨설팅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비변호사인 고문의 역할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권 기자를 영입한 태평양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로펌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대형로펌들이 맡는 기업 사건은 재판만큼이나 여론전이 중요한 경우가 많다. 올초 세간의 관심을 모았던 기업 경영권 분쟁 사례의 경우, 법리적으로는 질 수가 없다는 의견이 많았던 쪽이 예상을 뒤집고 완패했는데 여론전에서 밀렸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클라이언트가 로펌에 "여론전 이렇게 못할꺼면 기업사건 맡지 마라"고 했다는 얘기도 돌았다.
이미 법무법인 광장은 SBS 보도본부장과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을 지낸 최금락씨가 고문으로 있고, 법무법인 율촌도 중앙일보 논설위원과 국무총리실 대변인을 지낸 김왕기씨가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기업들이 로펌에 법리 검토만 맡기는 게 아니라 언론 대응에 대해서도 컨설팅을 맡기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사건 규모가 클수록 여론이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로펌들도 유력 언론인을 고문으로 영입해 재판 대응에 함께 나서려고 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연봉 5억' 고문도 있다… 영입 경쟁도 치열 대형로펌 고문에는 언론사 편집국장 출신뿐 아니라 전직 장관이나 공공기관장도 수두룩하다. 2019년에는 공군 현직 중령이 대형로펌에 취업하기 위해 군사기밀을 넘겼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대형로펌 고문은 어떤 대우를 받길래 '별의 자리'에 오른 사람들까지 탐내는 걸까.
몇 년 전 한 방송사에서 방영한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에는 로펌 대표가 전직 총리를 고문으로 영입하면서 연봉 5억원을 제시하는 장면이 나왔다. 실제로 그럴까.
로펌 관계자들은 말을 아끼면서도 영향력 있는 장관급이라면 연봉 5억원도 가능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한 로펌 관계자는 "전문위원의 경우 연봉 1억~1억5000만원 정도가 일반적이지만, 고문은 정해진 연봉 수준이 없다"며 "개인의 직급과 능력, 영향력에 따라 천차만별인데 S급 인사의 경우 연봉 5억원도 가능한 이야기"라고 귀띔했다.
연봉 5억원을 받는 고문이 있는가하면 무보수로 일하는 고문도 있다. 일종의 명예직처럼 고문 명함만 받고 활동하는 경우다. 로펌 고문이 되면 개인비서나 차량을 지급받을지 선택할 수 있는데, 개인비서와 차량만 해도 유지비가 1년에 1억원은 든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무보수라고 해도 비서나 차량을 지급받으면 사실상 연봉 1억원은 받는 셈이다.
여기에 로펌에 따라 업무추진비나 법인카드를 주지 않는 곳도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고문 정도 하는 고위직은 1년에 각종 경조사비용만 수천만원 단위로 나가는데 업무추진비가 나오면 이 부분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이 선호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고문 중에서도 실제 사건 수임에 뛰어드는 '현장파'는 성과급을 따로 받기도 한다. 다만 정부관료 출신 고문들은 사건 수임에 나서는 영업을 꺼려하는 편이다.
영향력 있는 인물의 경우 고문으로 영입하기 위해 대형로펌 간에 경쟁이 펼쳐지기도 한다. 현행 공직자윤리법은 고위공무원의 경우 퇴직 이후 3년간 대형로펌에 취업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전직 장관 등 유력 인물은 3년의 취업제한 시기가 끝날 때쯤이면 여러 대형로펌이 앞다퉈서 영입 제안을 한다.
한 전직 경제부처 장관의 경우 김앤장의 영입 제한을 마다하고 다른 대형로펌을 택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장관을 영입하기 위해 김앤장 설립자인 '김 박사(김영무 변호사)'가 나섰다는 말도 있었지만, 끝내 다른 로펌을 택했다. 이 장관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고향 후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연봉만 1.5배 정도 차이가 났지만 고향 후배의 끈질긴 요청을 뿌리칠 수 없어서 결국 김앤장 대신 다른 로펌을 택했다는 설명이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로펌 고문은 정·관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로비스트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커서 로펌들도 고문의 규모나 업무 등에 대해 대외비로 붙이는 경우가 많았다”며 “하지만 최근들어 로펌의 자문이나 컨설팅 업무가 법률서비스의 일부로 받아들여지면서 고문 활동에 대해서도 재평가가 이뤄지는 분위기”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