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폭스바겐그룹에 소속된 슈퍼카 브랜드 포르쉐는 최근 전기차 타이칸의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한다고 발표했다. 타이칸 터보S의 경우 안정성 제어시스템(PSM)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해 엔진 토크와 휠 스핀을 최적의 상태로 제어해 최대 가속 성능을 내도록 하는 런치 컨트롤 기능을 향상시켰다. 덕분에 정지 상태에서 속력을 시속 200㎞까지 끌어올리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기존 9.8초에서 9.6초로 단축됐다. 다만 국내에서 판매된 타이칸 터보S에는 이번 소프트웨어 업데이트가 적용되지 않는다.
자동차 업체들은 제로백(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로 속력을 내는 데 걸리는 시간)을 0.1초라도 줄이기 위해 상당한 공을 들인다. 이 때문에 부품이나 차체에 변화를 주지 않고 시스템만 개선해 정지 상태에서 시속 200㎞까지 속도를 내는 데 걸리는 시간을 0.2초 단축한 것은 상당한 성과로 평가 받는다. 현대차는 고성능 라인 N 모델에 런치 컨트롤 기능을 탑재했는데, 이 기능을 통해 제로백을 단축할 수 있는 범위는 0.3초 정도다.
그동안 자동차의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라고 하면 내비게이션이나 주행보조기능 정확도를 개선하는 정도에 그쳤다. 기존 내연기관차는 엔진을 갈아 끼우거나 개조하지 않는 이상 이미 생산된 자동차의 성능을 끌어올리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런데 모터와 배터리로 구동되는 전기차가 등장하면서 소프트웨어를 개선해 차의 본질적인 성능인 출력이나 효율성을 개선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스마트폰 운영체제(OS)를 업그레이드하면 앱 구동 속도가 빨라지고 새로운 기능이 추가되는 것처럼 자동차도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를 통해 핵심 성능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의미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 중 소프트웨어를 통한 성능 제어 부문에서 가장 앞선 경쟁력을 가진 곳은 미국의 테슬라다. 테슬라는 구글 안드로이드나 애플 iOS가 아니라 독자적인 차량용 OS를 운영하는데, 이를 통해 전기차의 핵심 기술인 완충 시 주행 거리를 늘리기도 한다. 지난해 출시된 모델Y에는 아예 업그레이드된 가속 부스트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모델Y 듀얼 모터 AWD를 가진 운전자가 2000달러를 내고 가속 부스트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하면 정지 상태에서 시속 96㎞(60mph)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기존 4.8초에서 4.3초로 줄어든다.
자동차 소프트웨어가 인포테인먼트나 주행보조 분야뿐 아니라 출력이나 주행거리 등 핵심 주행 성능에 관여하기 시작하면서 차량에 맞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자동차 업체의 투자는 지속될 전망이다. 폭스바겐과 BMW, 현대차(005380)등 글로벌 업체들은 자체 OS를 위한 연구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폭스바겐은 차량 내 소프트웨어 통합을 추진해 핵심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폭스바겐은 차량을 스마트폰과 같이 소프트웨어 기반 제품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전담 조직인 ‘카 소프트웨어’를 운영하고 있는데, 순수 전기차 ID.4에 처음 자체 차량 OS인 ‘vw.OS’를 탑재할 계획이다. 일본 도요타 역시 2022년까지 ‘소프트웨어 퍼스트(제일주의)’로 전사 조직을 개편하겠다고 발표했다.
현대차그룹 역시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끌어올려 미래차 시장에 대비한다는 계획이다. 현대차그룹은 엔비디아와 협력해 2022년부터 출시하는 현대·기아·제네시스 브랜드의 모든 차량에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커넥티드 카 운영 체제(ccOS)를 적용하겠다고 발표했다. 현대차그룹의 부품사 현대모비스(012330)는 통합 소프트웨어 개발에 투자를 지속해 핵심 사업을 전환하겠다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