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투자자에게 팔기 전 법인 등 상대로 안전성 검증 필요
증권사가 문제 펀드 걸러내고 유망 펀드 키우는 역할 해야
美, 변호사·회계사 등 금융전문가에 한해 사모펀드 투자 허용

최근 사모펀드 업계에서는 소수의 자산운용사 매니저가 문제를 일으킨 탓에 시장 자체가 죽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자산운용사들은 판매사는커녕 자산을 맡아줄 수탁은행도 찾지 못하고 있다. 대형 금융사들이 위험 부담으로 인해 펀드 설정을 꺼리는 탓이다.

현재 상황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은 예견된 결과였다고 말한다. 정부가 2015년 사모 전문 자산운용사 등록 기준을 자본금 규모 60억원에서 20억원으로, 2017년 이를 다시 10억원으로 대폭 낮추면서 전문성이 부족한 운용사가 업계에 대거 유입됐다는 것이다. 전문성 결여는 자연스레 모럴해저드 가능성도 키웠다. 사모 전문 자산운용사는 2015년 말 19곳에서 2016년 말 91곳으로 급증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251곳까지 늘었다.

중·고위험 상품을 주로 다루는 사모펀드가 위험한 것은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저위험 상품만 시장에 유통될 수도 없는 법이다. 전문가들은 사모펀드를 다룰 만한 능력이 있는 운용사와, 이를 발굴할 증권사 프라임브로커, 전문성을 갖춘 투자자가 라는 삼박자가 맞아야 시장이 건전하게 성장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사모펀드 투자 피해자들이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사모펀드 사태는 운용사가 우후죽순 생긴 상황에서 검증되지 않은 펀드가 프라이빗뱅커(PB)를 통해 대규모로 유통되면서 발생했다. 대규모 환매 중단 사태를 맞은 라임자산운용 사모펀드 규모는 2015년 200억원대에 불과했으나, 2019년 5조7000억원까지 급증했다. 이 중 은행 판매분은 약 2조원(34.5%)에 달했다.

윤선중 동국대 교수는 "그간 사모펀드가 대형 일반은행이나 증권사들 통해 판매됐는데, 이렇게 대형 영업점을 통해 판매가 이뤄지는 것은 문제"라며 "2015년 금융당국의 규제 완화로 일반 대중들도 사모펀드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해줬지만, 해외사례를 봐도 사적계약에 의해 이뤄지는 사모펀드를 이런 식으로 판매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말했다.

윤 교수 의견처럼 사모펀드가 일반 투자자에게 판매되기 전까지 안정성을 검증하는 단계를 거쳐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설정된지 얼마 되지 않은 펀드는 법인 투자자와 일부 전문 투자자들을 대상으로만 판매를 시작하고, 이후 운용 성과가 검증되면 일반 투자자에게도 펀드를 판매하자는 주장이다.

이때 초기 단계 운용사를 키워주는 증권사의 역할이 중요하다. 자기자본 3조원 이상의 종합금융사업자로 등록한 증권사는 현재 프라임브로커서비스(PBS)를 제공할 권한이 있다. PBS는 사모펀드를 키우는 금융투자업계의 ‘벤처캐피털(VC)’로 불린다. 증권사가 사모펀드에 종합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이들의 성장을 돕는다.

증권사는 PBS를 통해 사모펀드에 자금을 공급할 투자자를 주선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외에도 신용을 공여하거나 증권을 대차해주고 업무 컨설팅도 지원한다. 현재 삼성증권·미래에셋대우·NH투자증권·KB증권·한국투자증권·신한금융투자 등 6개 증권사가 해당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펀드매니저, 펀드매니저의 지인, 프라임브로커가 소개한 투자자들을 위주로 소규모 펀드를 조성한 이후 우선 해당 펀드가 실적을 쌓도록 도와야 한다"면서 "신생 펀드의 대형 판매 채널 진입이 제한되는 부분을 프라임브로커가 채워줄 수 있다"고 말했다.

전 세계적 추세를 봐도 사모펀드는 프라임브로커 주선 투자가 대세를 이룬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 관리회사 시트코 그룹(CITCO)이 2017년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PB를 통해 판매되는 사모펀드는 11%에 불과했다. 반면 프라임브로커가 소개한 소수 고객에게만 펀드를 판매하는 경우는 41%에 달했다.

물론 무분별하게 사모펀드에 자금을 공급하면 안 된다. 증권사가 수수료 수익을 위해 옥석을 가리지 않고 사모펀드에 서비스를 제공할 경우 문제가 생긴다. 이번 사모펀드 사태에서도 증권사가 자체 평가없이 운용사에 대규모 레버리지를 제공하면서 문제가 커졌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증권사 프라임브로커서비스 부서가 사모펀드 사태로 인기를 잃고 있는데, 오히려 유망 인재가 가야 한다"면서 "그래야 투자 전략이 좋은 헤지펀드를 골라내 투자하고 수익률을 올리면서 사모펀드 시장을 다시 활성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우량한 펀드라면 그 펀드가 새로 생긴 펀드라고 해도 기회를 줘야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모든 상품이 트랙레코드를 쌓아야 일반 투자자에게 판매할 수 있다면 산업이 죽을 수밖에 없다"면서 "판매사가 보기에 전략이 좋은 상품은 철저한 검증을 통해 설정할 필요도 있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자산운용사 임원은 "여러 자산을 교체하면서 편입하는 실적배당형 상품은 트랙레코드를 쌓을 수 있지만, 단일 자산에 투자하는 프로젝트성 상품은 운용 기간이 끝나면 투자 자체가 끝난다"면서 "레코드를 쌓을 수 없는 프로젝트성 상품은 판매사의 사전 검증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조선DB

사모펀드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투자자의 자질 또한 중요하다. 투자자도 책임 투자가 가능하도록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 사모펀드 적격 투자자 기준은 ‘전문 투자자’와 ‘일반 투자자’로 나뉘는데, 정부는 일반 투자자 기준을 2015년 최소투자금액 5억원에서 1억원으로 대폭 낮췄다.

투자요건이 완화되면서 금융취약계층이 사모펀드에 투자했다가 낭패를 봤다. 금융감독원의 옵티머스 펀드 사태 보고 자료에 따르면 옵티머스자산운용의 46개 펀드에 돈을 부은 개인의 투자액(2404억원) 가운데 70대 이상 노인이 투자한 돈이 697억원(29.0%)으로 모든 세대 중 가장 많았다. 이들 가운데서는 평생 모은 퇴직금을 투자했다가 투자금을 잃은 사례도 다수 있었다.

정부가 최소투자금액 기준을 다시 3억원으로 높였지만,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광록 충북대 법학대학원 교수는 "최소투자금액은 투자 경험을 보여주는 지표가 아니다"면서 "투자자의 투자 경력과 수익률 지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지표를 새롭게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송 연구원은 "미국은 일반 투자자의 경우 자산 규모와 관계없이 사모펀드 관련 변호사나 회계사 등 금융분야의 자격증을 소지한 경우에만 투자를 허용해주고 있다"면서 "금융권 전문가만 해당하므로 인원이 제한돼 사모펀드에 투자할 수 있는 사람이 (우리나라처럼) 무한정 확장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손실 감당 능력을 감안하고자 자산 규모와 소득을 기준으로 두는 방법도 있다. 미국은 전문 투자자의 경우 일회성 최소투자금액이 아닌 총 자산 규모에 따라 사모펀드 투자를 허용해주고 있다. 펀드 종류별로 다른데, 총 자산규모가 100만달러(약 11억원) 이상이고 2년 소득이 연간 20만달러(약 2억원)를 넘거나, 투자 잔고가 500만달러(약 56억원) 이상인 경우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