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앤장 시작부터 ‘준비기일의 공판화(化)’ 전략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은 ‘사업상 합병’일 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지난 11일, 중앙지법에서 가장 좌석수가 많은 곳이자 역대 '거물급 피고인'들이 거쳐간 형사대법정 417호.

오후 2시가 되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최지성 옛 미래전략실장(부회장), 김종중 옛 미전실 전략팀장(사장), 최치훈 삼성물산 이사회 의장(사장) 등 총 11명의 피고인들을 대리하는 '변호인 군단'이 자리를 속속 메웠다. 법무법인 태평양과 화우, 세종 등 대형로펌부터 법무법인 다전, 한승 등 각양각색의 변호사들이 입정하면서 금세 만석이 됐다. 이날 재판은 형식상 2차 공판준비기일이지만 재판부 교체 후 첫 준비기일이라는 점에서 내용상 '리턴 매치'가 시작되는 날이었다.

양측의 신경전은 이 부회장측 변호인인 김유진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가 PT를 하면서 본격 불거졌다. 공판준비기일에는 통상 증거 인부(인정 또는 부인)에 대한 양측의 입장을 정리하는 선에서 그친다. 하지만 피고인측은 PT를 통해 마치 정식재판처럼 검찰의 공소사실 하나하나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는 ‘이례적 변론’을 했다.

그러자 검찰 측에서는 즉시 불쾌감을 표출했다. 이 부회장을 기소한 이복현 대전지검 부장검사는 "첫 공판도 아니고 준비기일 아니냐"면서 "엄격한 증명을 필요로 하는 자료들이고 일부는 증거로도 쓰이는데 (지금 PT 자체가) 방식이 적절한지 의문이 든다"고 따졌다.

법조계에서는 이른바 ‘준비기일의 공판화(化)’ 전략을 김앤장이 애시당초 준비했을 거라고 입을 모은다. 한 대형로펌의 관계자는 "이 사건 쟁점이 복잡하고 전문적이라 기자들한테 ‘정리된 자료’ 자체가 기사화하는데 도움이 된다"면서 "일차적으로는 '대(對) 언론 효과'를 노렸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무엇보다 재판부에 검찰측의 논리가 어떤 점에서 잘못됐는지 선명한 프레임을 통해 보여줌으로써 쟁점을 변호인측 의도대로 끌고 가는 효과를 볼 수 있다"고 귀띔했다.

김앤장은 이번 사건을 이 부회장이 기소된 직후인 지난해 9월 7일 맡았다(접수증명). 하지만 사실 삼성과의 인연은 국정농단 초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검찰이 국정농단 사건을 경영권 승계를 위한 뇌물 사건으로 봤다. 이에 이 부회장측에선 삼성그룹 승계라는 대가성과 관련있는 것으로 의심받고 있는 합병의 적법성을 설명하기 위해 그야말로 ‘전문가’들이 필요했다. 법무법인 기현이 이 부회장의 재판을 도왔는데, 실질적으로 이때부터 이미 김앤장과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기현은 김앤장 출신 합병 전문가들이 나와 만든 로펌이다.

이번 사건 역시 합병에 대한 이해도가 가장 중요하다는 점에서 삼성이 고민 없이 김앤장을 낙점했다는 후문이다. 삼성은 당초 '국정농단 사건' 대리로펌으로 김앤장이 아닌 태평양을 선택했다. 당시 법조계에선 다양한 추측들이 나왔다. 박근혜 전 대통령 등과 함께 이 부회장이 수사를 받는 상황에서 로펌 1위 김앤장과 재계 1위 삼성의 결합은 '기득권 청산'을 외치며 촛불을 들고나온 민심을 더욱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도 그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번에야말로 삼성이 김앤장을 호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됐다. 재판 결과에 따라 수감생활을 하고 있는 이 부회장의 형기가 더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다.

실제 첫 PT를 맡은 김 변호사 역시 서울고법 판사 출신으로 기업인수 및 합병과 상법에 탁월한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지난 11일 김앤장은 '합병비율이 의도적으로 조작됐다'는 검찰측 주장을 반박하는데 중점을 뒀다.

검찰은 '제일모직 고평가-삼성물산 저평가'로 불리한 시점에 합병을 해 삼성물산 주주의 주주가치 증대 기회를 상실케 하는 등 손해를 보게 했다고 했다. 이에 김앤장은 당시 제일모직 사업 부문이 창사 9년만에 매출 1조를 달성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반대 논리를 제시했다.

구체적으로는 검찰 주장처럼 제일모직 고평가로 주가 하락이 예상되는 상황이라면 제일모직 '순매도'로 손실 최소화에 나섰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실제 국민연금은 제일모직 상장 후 합병발표 전까지 주식 4669억원(337만7321주)을 순매수했다. 김앤장은 "검찰 주장대로 제일모직이 고평가라서 곧 주가하락이 예상된다면 국민연금 등이 왜 순매수했겠냐"고 따졌다.

그러면서 당시 포스코와 현대차 등 시가총액 상위 10개 회사중 주가순자산배수(PBR)가 1미만인 회사가 3개, 상위 20개 회사 중 8개, 30개 회사 중 14개에 달했다는 점도 근거로 들었다. 특히 건설회사는 당시 대부분 PBR이 1미만이었다는 점에서 이익 측면에서 보더라도 삼성물산이 저평가였다고 볼 수 없다고 반박했다.

김 변호사는 "업종과 사업구조가 다른 기업간 매출과 자산, 영업이익과 비교해 고평가 및 저평가를 논할 수 없음은 인터넷에 쳐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공개된 정보 아니냐"고 반박했다.

이처럼 김앤장 측은 이 부회장의 목적이 ‘경영권 승계’에 있었다는 주장을 탄핵하기 위해 향후 재판에서도 합병이 시장 판단에 따른 ‘사업상 합병’이었음을 증명하는데 방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은 최근 충수염으로 수술을 받고 건강상 이유로 첫 공판을 연기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이에 내달 22일 첫 정식재판을 받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