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지위 공고해지자 유료모델 잇달아 추진
카카오 가맹택시 팽창할수록 관리미흡 지적

택시 기사 A씨는 최근 카카오가 출시한 월 9만9000원짜리 멤버십 상품에 부리나케 가입했다. 선착순 2만명만 받는 이 멤버십은 기사가 원하는 목적지 콜을 우선 연결해주는 기능과 실시간으로 수요가 몰리는 지역을 한 눈에 보여주는 지도 등을 제공한다. A씨는 "가뜩이나 과잉공급으로 손님이 모자란 데 여기서 더 도태되면 밥줄이 끊긴다는 위기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다른 기사들도 같은 생각을 한 듯 이 멤버십은 출시 사흘 만에 조기마감됐다.

국내 택시 호출의 80%를 쥐고 있는 카카오 자회사 카카오모빌리티가 유료화 모델 구축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4월 티맵모빌리티-우버의 합작법인 ‘우티’ 출범 등을 앞둔 상황에서 경쟁 플랫폼을 견제하는 동시에 이익 극대화를 꾀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사실상 강매다"라는 말이 나온다. 카카오 독점이나 다름 없는 시장에서 심판이 경기 규칙을 바꾸는데 누가 안 따르고 배기겠느냐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카카오 말고는 별다른 선택지가 없는 게 현실이다"라며 "카카오는 택시 업계에서 ‘갑’카오라 불리며 제왕처럼 군림하고 있다"고 말했다.

◇ "기사, 승객, 경쟁 플랫폼 모두 카카오의 노예"

24일 모빌리티 업계에 따르면 카카오는 최근 택시 기사와 경쟁 업체를 상대로 유료화 작업에 착수했다. 하나가 일반 택시 기사 2만명만 가입할 수 있는 카카오T ‘프로 멤버십’이고 다른 하나는 타다, 우버, 마카롱택시 등 이른바 브랜드 택시라고 불리는 가맹 택시 사업자들에게 앞으로 카카오 호출 이용료를 받겠다는 것이다.

유료화 타깃이 된 택시 기사와 경쟁 업체 모두 울며 겨자 먹기로 카카오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다. 기사들은 ‘콜 싸움’에서 뒤지지 않기 위해 앞다퉈 멤버십에 가입했고, 경쟁 업체들은 카카오의 택시 애플리케이션(앱)을 쓰지 않고서는 현실적으로 손님을 받을 수 없어 카카오 호출 이용료를 낼 수밖에 없다. 한 택시 기사는 "경쟁 플랫폼에서 아무리 좋은 서비스가 나와도 택시 입장에서 카카오를 쓰는 것과 쓰지 않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라며 "카카오를 안 쓰면 손님을 태울 수 없고, 손님 입장에서도 카카오를 써야 택시가 잘 잡히기 때문에 서로가 카카오에 종속되는 구조에 갇혀버렸다"고 말했다.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 등 택시 4단체는 지난 16일 성명을 내고 "프로 멤버십에 동조한다면 택시 종사자간 극심한 출혈경쟁이 불가피해져 결국 단순 플랫폼 노동자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라며 "카카오는 독점적 지배시장 지위를 악용한 시장 교란행위를 즉각 중단하라"고 밝혔다. 경쟁 업체들 역시 "카카오가 자사 가맹 택시 ‘카카오T블루’를 우대하기 위해 경쟁사 배제에 나선 것이다"라며 "유료 모델 전환은 요금 인상으로 이어져 승객들에게도 좋은 게 아니다"라고 우려하고 있다.

◇ 택시 위주 정부정책이 카카오 독점만 강화

업계에서는 택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국내 모빌리티 시장의 특성상 지금의 갑을 관계가 예견된 결과였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카카오가 이미 택시 플랫폼을 꽉 잡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형태의 운송 서비스가 나올 때마다 규제하기에 급급해 카카오 입지만 더 공고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지난해 3월 이른바 ‘타다 금지법’으로 멈춘 렌터카 기반의 승차 공유 서비스 ‘타다’가 대표적이다. 타다는 승차거부 없는 시스템, 조용하고 쾌적한 환경, 친절한 기사라는 경쟁력을 토대로 이용자들에게 주목받으며 부상했지만 당시 정부는 ‘택시와의 상생’이라는 명분 아래 타다를 불법으로 만들었다. 그 결과 국내 모빌리티 시장은 산업 생태계 외연을 넓힐 기회를 놓쳤고 지난 1년 사이 여러 모빌리티 스타트업이 문을 닫거나 극심한 경영 악화에 시달려야 했다. 타다가 가장 먼저 서비스를 중단했고 비슷한 형태의 렌터카 사업을 하던 차차 역시 올해 초 그만뒀다.

카카오의 가맹형 택시 ‘카카오T블루’.

정부는 타다 금지법에 마련된 ‘플랫폼 운송사업자’ 허가를 받으면 "제2의 타다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면허 대수를 택시 총량에 따라 제한적으로 내주는 데다 수익의 일정액을 택시 산업을 위한 기여금으로 내도록 하고 있어 여전히 택시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한 모빌리티 스타트업 대표는 "정부 정책이 결과적으로 카카오 몰아주기를 한 꼴이 됐다"며 "우리 같은 스타트업은 점점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고 했다.

타다가 멈추기 무섭게 카카오는 ‘만족스러운 승차 경험’이라는 타다와 같은 가치를 내걸고 자사 브랜드 택시인 T블루 확장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그런데 지난해 4월 5000대 수준이던 카카오 T블루는 두 달 뒤인 6월 1만대가 되고 현재 1만6000대까지 늘며 관리가 불가능한 수준이 됐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기사들은 요금의 3~4%를 카카오 측에 내기 때문에 운행 건당 수익이 줄어들어 불만이고, 승객은 T블루를 이용하기 위해 최대 3000원의 비용을 더 지불해야 해서 서로 간의 눈높이가 맞지 않는 구조적인 문제에 봉착한 것이다. 이미 T블루가 과잉된 상황에서 카카오의 무리한 양적 팽창은 서비스 질의 하향평준화만 불렀다는 평가가 나온다.

◇ "눈치 보기 급급한 정부, 주도적으로 방향 설정해야"

전문가들은 새로운 업(業)이 등장할 때마다 정부가 구산업과 신산업을 중재하려는 접근 방식부터 잘못됐다고 비판한다. 서로 하고 싶은 얘기만 끝 없이 늘어놓다 보니 양쪽이 만족하는 안은 절대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타다에 앞서 2019년 카카오 ‘카풀’도 정부가 택시 업계의 반발에 끌려다니다 사장시켜버린 케이스다. 전국 25만 택시의 과잉공급이라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지금과 같은 의사결정은 ‘신산업 등장-택시 업계 반발-정부 규제’라는 악순환만 되풀이 할 뿐이라는 지적이다.

김현명 명지대 교통공학과 교수는 "영국, 호주에서는 정부가 대원칙을 명확히 세운 뒤 각 산업이 맞춰 따라가는 방식을 취한다"며 "예컨대 타다와 같은 새 모델이 나오면 버스, 지하철 등 기존 대중교통 수단이 다니는 경로를 침범하지 못하도록 하거나 지방 교통으로 확장할 시에는 각 지역에 기반한 지방 근로자를 고용하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처럼 무작정 막는 등 극단적으로 가기보다는 일관된 원칙 하에 양측이 절충점을 찾아가도록 이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이 국가들은 2018년부터 원칙 중심의 정책을 펼쳤는데 지금 보면 가장 갈등, 혼란 없이 연착륙한 모델이다"라며 "반면 한국 정부는 좋게 말하면 중재자 역할에 그칠 뿐이고 나쁘게 말하면 눈치 보기에 급급한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