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리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이 1조9000억달러(약 2100조원) 규모에 달하는 조 바이든 행정부의 경기부양책을 지난 40년 간 거시정책 중 최악이라고 평가했다.
서머스는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재무장관과 하버드대 총장 등을 거치고,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가경제위원장을 지냈던 인물이다. 그간 민주당의 경제정책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해 온 그가 바이든 행정부 정책을 두고 잇따라 비판의 수위를 높이는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서머스 전 재무장관은 19일(현지 시각) 블룸버그TV의 ‘월스트리트 위크’에 출연해 "정부의 적극적인 확장적 재정정책과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완화적인 통화정책이 동시에 추진되면서 인플레이션이 불붙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는 지난 40년 간 가장 무책임한 거시정책"이라며 "민주당 내 급진 세력의 비타협적인 태도와 공화당의 무책임한 행보가 빚어낸 산물"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인플레이션이 불러올 세 가지 가능성도 제시했다. 우선 미국에서 몇년간 물가상승이 지속돼 경제불황과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에 직면할 가능성이 약 33%라고 설명했다. 다음으로 연준이 인플레이션에 급하게 제동을 걸면서 경기가 침체에 빠질 가능성도 33%라고 진단했다. 마지막으로 인플레이션 없이 미국이 경제성장을 이뤄낼 가능성도 33%로 봤다. 서머스 전 재무장관은 "지금의 거시정책이 리스크를 일으킬 가능성이 더 높은 셈"이라고 평가했다.
서머스 전 재무장관은 연일 조 바이든 행정부의 대규모 부양책을 겨냥해 쓴소리를 내고 있다. 그는 지난 15일에는 CNN에 출연해 "욕조에 너무 많은 물을 붓는다면 물이 넘치기 시작할 것"이라며 "우리는 너무 많은 물을 쏟아부으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달에는 워싱턴포스트(WP) 기고문을 통해 "2차 대전 때와 가까운 규모의 대규모 부양책을 추진하는 건 우리가 한 세대 동안 경험해 보지 못한 인플레이션 압력을 촉발할 수 있다"고 했다.
서머스 전 재무장관과 비슷한 견해를 지닌 경제학자들이 최근 인플레이션 현상을 보면서 물가상승률이 두자릿수에 달했던 1970년대를 떠올리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WP는 "서머스 전 재무장관과 그레고리 맨큐 등 학자들은 1979년부터 연준이 물가 억제를 위해 기준금리를 19% 이상으로 인상했던 때를 기억하고 있다"면서 "이는 서머스 전 재무장관과 비슷한 세대의 민주당 정책입안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바이든 정부의 잇따른 대규모 재정 투입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논쟁은 뜨겁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미국 뉴욕시립대 교수는 1970년대와 같은 인플레이션 충격이 오진 않을 것이라며 서머스에 반박했다. 그는 이날 블룸버그TV에 출연해 "정부 대책으로 인한 최악의 시나리오는 과거 한국전쟁기 초기에 나타난 일시적인 물가 급등"이라며 "이번 대책은 심하게 인플레이션을 유발할만한 대책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당시 인플레이션 충격은 린든 존슨 당시 행정부의 과도한 확장적 재정정책을 비롯해 두 차례의 오일쇼크, 연준의 무책임한 통화정책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평가다. 재닛 옐런 재무장관도 지난 14일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인플레이션 리스크가 조금 있지만 일시적인 현상으로 그쳐 충분히 관리할 수 있을 것"이라며 우려를 일축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