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외 기업의 최대 화두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다. 그 중에서도 환경을 향한 관심이 뜨겁다. 애플, 아마존, 페이스북 등 세계 굴지의 기업들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겠다"며 앞다퉈 친환경 전략을 발표하고 나섰다. 이런 움직임은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를 포함한 세계 주요국 정부가 ‘친환경’을 정책 기조로 내세우면서 가속도가 붙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친환경’ ‘녹색’ 수식어가 붙은 기업에 자금이 몰려 가치가 과도하게 높아지는 ‘그린 버블(green bubble)’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 금융서비스 업체 모닝스타에 따르면 지난해 ESG 펀드에 몰린 자금은 3500억달러로 2019년보다 배가 넘게 늘었다. 태양광·풍력 기업의 경우 실적은 지지부진한데 친환경 기업이라는 이유만으로 주가가 급등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덴마크 풍력기업 오스테드는 3년간 이익 성장률은 미미했지만 주가는 3배 뛰었고, 미 수소기업 플러그파워의 주가는 연초 SK의 지분 투자 소식에 주가가 한 달만에 50% 이상 올랐다.

한쪽에서는 투자 과열이 일어나고 있는 반면, 정작 세계 온실가스의 30%를 배출하는 철강·시멘트·석유화학·정유 등 굴뚝산업은 대책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석탄·석유 기반의 기존 산업 인프라를 전면개편하지 않는 이상 탄소저감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다.

최근 산업통상자원부는 주요 업종과 탄소중립 추진 전략을 논의했는데, 굴뚝산업에서는 회의적인 반응이 이어졌다. 국내 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탄소중립은 거스를 수 없는 세계적인 흐름이지만, 지난해 업계가 4조8000억원에 달하는 적자를 낸 상황에서 적극적인 온실가스 저감에 나서기 쉽지 않다"고 했다.

발전소나 공장 등의 굴뚝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를 잡아두는 기술인 탄소포집 기술이나 풍력·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생산 전력으로 공장을 가동하는 방법 모두 현재로선 효율성이 떨어지고 비싸 적용이 불가능하다는 게 기업들의 입장이다. 철강업계의 경우 기존 석탄 대신 수소를 환원제를 쓰는 수소환원제철법을 도입하려면 기존 제철소 설비를 없애고 대규모 투자를 통해 제철소를 새로 지어야 한다.

이런 현실적인 장벽 때문에 기업들이 무늬만 녹색 경영을 표방하는 '그린 워싱'의 유혹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고 에너지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지금도 많은 기업들이 유행에 휩쓸려 구색 맞추기식 친환경 전략을 남발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기존에 추진 중이던 지속가능 전략에 ESG라는 이름만 붙이는 식이다.

이상과 현실간 괴리로 인해 발생하는 '그린 버블'이나 '그린 워싱' 같은 부작용을 막으려면 업종별로 맞춤형 탄소중립 전략과 지원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무늬만 '탄소중립'에 그치지 않으려면 정부도 연구개발(R&D) 지원과 금융지원책을 포함해 업종별로 세부적인 로드맵을 하루빨리 제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