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지원금으로 저금리 대환 대출을 받을 수 있어요. 대신 보내드린 은행앱 설치하시고 개인정보 입력 후 기존에 받은 대출금을 현금으로 갚으셔야 합니다."

작년 10월 피해자 A씨는 금융감독원 직원을 사칭한 보이스피싱 조직원 B씨의 말에 속아 1650만원을 인출한 뒤 B씨에게 보냈다. 또다른 피해자 C씨 역시 지난 1월 보이스피싱 조직원으로부터 걸려온 가짜 대출상담 전화를 받던 중 "기존 대출금을 상환하면 더 좋은 조건의 대출을 할 수 있다"는 말에 속아 1800만원을 송금했다. 두 사례 모두 최근 경찰이 공개한 정부 지원 대출 상품을 위장한 보이스피싱 피해 실제 사례들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사태 이후 불황이 이어지면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겨냥한 보이스피싱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가짜 은행앱을 만들고, 휴대전화를 해킹해 은행 대표전화까지 중간에서 가로채는 등 보이스피싱 수법이 다양하게 진화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많다.

조선일보DB

16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보이스피싱으로 검거된 사람은 2177명으로 2019년(1513명) 대비 약 44% 늘었다. 보이스피싱 범죄로 나타난 피해액 역시 큰 폭으로 증가했다. 지난해 해당 범죄 피해액은 7600억원으로 전년대비 504% 급증했다.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것이다.

보이스피싱 범죄집단의 수법은 갈수록 고도화되고, 사람들의 심리를 교묘히 이용하는 방식으로 진화해왔다. 특히 지난해에는 코로나 사태로 경제적 어려움에 빠진 사람들의 절박한 심리를 이용, 보이스피싱 피해자가 급격히 늘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경찰은 최근 보이스피싱의 수법은 휴대전화 해킹과 조직적인 ‘팀플레이’가 특징이라고 설명한다. 예로 저금리 대출을 미끼로 보이스피싱 범죄를 시도하는 경우 대출상품을 안내해주면서 해킹 은행앱 설치를 안내하는 상담원, 은행 채권추심팀 직원과 금융감독원 직원을 사칭한 조직원, 현금을 직접 건네받고 대납영수증을 전달하는 조직원 등 최소 4명 이상이 필요하다.

우선 보이스피싱 범죄조직은 저금리의 대환 대출이 가능하다는 문자메시지를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전송한다. 문자를 받은 사람들 중 대출이 막혀 절박한 사람들이 전화를 걸면 상담원을 사칭한 보이스피싱 조직원이 은행앱을 설치한 뒤 대출 서류를 작성해야 한다면서 가짜링크를 보낸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비롯된다. 가짜 은행앱을 설치하는 순간 휴대전화는 해킹이 되고 모든 통신내역이 도청된다. 만약 피해자가 의심을 하고 해당은행 고객센터로 전화를 걸면 보이스피싱 조직원이 전화를 중간에 가로채 대신 받기 때문에 의심을 가졌던 피해자들도 곧이 곧대로 조직원들의 말을 믿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일러스트=정다운⋅조선일보DB

최근 적발된 보이스피싱 범죄조직의 사례를 보면, 은행 채권추심팀 직원을 사칭한 사람이 대출 심사 중 기존 대출에 문제가 있다는 안내를 한 뒤 금융감독원 직원을 사칭해 전화를 걸어 피해자에게 계좌가 정지되고 신용불량이 될수 있다는 식으로 겁을 줬다.

피해자는 보이스피싱이 의심돼 은행 채권추심팀과 금융감독원에 확인 전화를 걸었지만,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이 전화를 돌려받아 결국 속수무책으로 그들의 말을 믿을 수 밖에 없었다.

지난 2월 보이스피싱 피해를 입은 이모씨는 한 유튜브 방송에서 "PC방을 운영하면서 돈이 필요해 대출을 알아보던 중 보이스피싱 사기를 당해 2300만원의 피해를 입었다"면서 "처음에는 보이스피싱을 의심했지만 금융감독원이나 은행 대표번호로 전화를 걸어서 확인을 하는 과정에서 의심이 전부 풀렸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대환대출을 받으려면 기존 대출금을 갚아야 하고, 계좌이체를 하면 금융감독원이 보기 때문에 안되고, 직접 만나서 전달하면 흔적이 남지 않아 기존 대출계약 위반 문제도 없다는 말을 믿었다"며 "현장에서 만난 조직원에게 2300만원을 전달하자, 당당하게 완납 증명서를 끊어주는 모습도 보였다"고 했다. 그는 "나중에 생각해보니 바보 같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서울경찰청은 최근 보이스피싱 전문수사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서울지역 각 경찰서에서 처리 중인 보이스피싱 수사를 직접 하기로 했다. 최근 급증한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 심각성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서울 지역에서 접수된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2228억원에 달한다. 지난 15일 장하연 서울경찰청장도 "보이스피싱을 올해 50%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총력 대응하고 있다"며 "예전과는 다른 대응체계로 임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