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정부가 우버이츠 배달원과 같은 플랫폼 노동자에게 근로자 지위를 부여하는 법안을 발표했다. 해당 법안이 한달 내 의회를 통과하면 스페인은 플랫폼 노동자의 근로자 지위를 인정한 첫 유럽연합(EU) 국가가 된다.
11일(현지 시각) 파이낸셜타임즈(FT)에 따르면, 스페인 정부는 코로나19로 급격히 늘어난 배달원과 같은 플랫폼 노동자들을 프리랜서가 아닌 근로자로 인정하는 내용의 법안을 마련했다. 이번 법안은 지난해 9월 스페인 대법원이 스페인 현지 배달 앱 ‘글로보(Glovo)’의 전직 배달원이 제기한 사건에 "음식 배달원은 자영업자가 아니라 직원이다"라고 판결한 후 발의됐다.
이번 법안엔 우버나 딜리버루 같은 플랫폼 회사가 인공지능(AI)알고리즘이 어떻게 작업을 할당하고 성과를 평가하는지에 대한 정보를 근로자에게 알려줘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스페인의 노동부 장관 욜란다 디아즈는 "우리는 EU에서 이 문제에 대해 법안을 만든 첫 국가가 된다"이라며 "플랫폼 노동자들이 권리를 인정받고, 그들이 지금 보장받지 못하는 사회적 보호를 받게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 법안은 많은 사람들의 삶을 바꿀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페인의 플랫폼 종사자들은 환영 의사를 밝혔다. 바르셀로나에서 배달원으로 일하는 인라나 아자드(28)은 "(근로)계약과 고정급여가 있으면 좋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바쁠 땐 하루에 10시간이 넘게 일하지만, 한번 일할 때 10~15유로(약 1만3000원~2만원)밖에 벌지 못한다. 그는 "이는 내가 살고, 먹고, 가족을 부양하기엔 부족하다"고 말했다.
반면, 관련 업계에서는 반발이 일고 있다. 바르셀로나에서 시작한 배달 어플리케이션 글로보는 "정부가 배달업에 대한 장벽을 높이고 추가적인 어려움을 만들고 있다"면서 "배달 어플리케이션은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동안 음식점들이 살아남을 수 있게 도왔다"고 지적했다.
글로보의 공동 설립자인 사차 미차드는 "규제가 필요하지만, 플랫폼과 배달원 모두의 의견을 고려했어야 했다"며 스페인이 다른 EU국가들에 비해 "급진적인 정책"을 시행한다고 비판했다.
배달업체 우버이츠를 거느린 우버도 반대 의사를 밝혔다. 우버는 "우리는 전국의 모든 관련 당사자들과 협력해 독립적으로 일하는 배달원들의 환경을 개선하길 바란다"며 "일자리를 모두 없애고 싶지 않다"고 강조했다. 우버는 "우리는 유연성, 통제성을 유지하면서 업무 수준을 높이고, 독립적으로 일하는 배달원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제공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우버와 같은 배달업체들은 이번 규제로 스페인 음식배달 플랫폼에 속한 3만명에 달하는 배달원의 4분의 3이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플랫폼 노동자의 지위를 보호하려는 움직임은 유럽 전역에서 일고 있다. 지난달 영국 최고 법원은 "우버 직원은 자영업자가 아니라 근로자다"고 판결했다. 이미 이탈리아, 네덜란드, 프랑스 및 벨기에에서도 유사한 판결이 있었다. EU 집행위원회도 지난달 24일 플랫폼 노동자의 근로자성과 관련한 규제 초안 검토를 시작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