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도 가족’ 민법 개정 착수… 동물학대 엄벌 첫 걸음 될까

조선비즈
  • 이은영 기자
    입력 2021.03.11 06:00

    법무부가 반려동물의 법적 지위를 개선하는 내용의 민법 개정을 추진한다. 동물이 사유재산이 아닌 ‘가족’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면서 동물학대 행위에 대한 처벌도 강화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 5일 오후 해운대해수욕장에 한 시민이 예쁜 모자를 씌운 반려견 6마리와 산책을 즐기고 있다. /김동환 기자
    법무부는 지난 9일 1인가구의 사회적 공존을 위한 제도 개선책을 논의하는 ‘사공일가(사회적 공존, 1인가구) TF를 구성했다고 밝혔다. 1인가구 관련 경력을 가진 민간위원단으로 구성된 이 TF는 ▲가족 개념 재정립 ▲상속제도 개선 ▲주거공유 지원 ▲임의후견 제도 활성화 ▲반려동물 법적 지위 개선 등 5대 중점 과제를 논의해나갈 계획이다.

    특히 반려동물의 법적 지위를 개선하는 내용이 중점 과제 중 하나로 꼽히면서 동물학대 처벌 강화 가능성에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법무부는 동물을 일반 물건과 구분해 제3의 지위를 부여하고, 반려동물 압류를 금지하는 방안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반려동물을 기르는 인구는 점점 늘고 있지만, 현행 민법에 따르면 동물은 여전히 ‘물건’으로 분류된다. 이 때문에 타인에 의해 반려동물이 학대 당하거나 사망할 시, 피의자에게는 형법상 재물손괴죄가 적용되고 반려동물의 가격과 상해 정도 등을 근거로 피해 규모가 추산된다.

    자신의 반려동물을 학대했을 때도 반려인의 동물 소유권을 박탈할 수 없어 강제 분리가 불가능하다. 또 반려인이 채무를 불이행할 시 반려동물도 사유재산으로 간주돼 압류 대상이 된다.

    동물학대 사건은 매년 늘고 있지만, 법적 처벌로 이어지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동물보호법 위반 사건은 2010년 69건에서 2019년 914건으로 9년 동안 13배 넘게 늘었다.

    그러나 같은 기간 동물학대 사건 기소율은 10%에도 미치지 못했다. 재판으로 넘겨진 304건 중 184명은 벌금형의 비교적 가벼운 처벌을 받았다. 징역형이 선고된 사람은 39명에 불과했고 이마저도 집행유예가 29명, 실형 선고는 10명이었다.

    어렵사리 재판에 넘겨지더라도 동물보호법 위반이 아닌 재물손괴 혐의만 적용되는 사례도 아직 이어지고 있다. 동물자유연대와 ‘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변호사들’이 지난해 12월 발간한 판례집에 따르면 지난 2019년 3월 피해자의 집에 침입해 피해자가 기르던 반려묘의 머리를 걷어차 다치게 한 후 반려묘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A씨는 재물손괴와 주거침입죄가 인정돼 징역 1년 6개월이 선고됐다.

    비가 내린 지난 1월 26일 서울 도심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카페 창가에 바싹 붙어 앉아 비를 피하고 있다. /연합뉴스
    재판부는 동물학대 행위에 대해 "피해자 소유의 고양이를 치료비 15만1250원이 들도록 손괴했고, 시가 미상의 고양이를 죽여 손괴했다"고 봤다. A씨가 피해자의 반려동물에 해를 가하면서 입힌 금전적 손실만을 따진 것이다.

    동물자유연대 등은 "동물보호법이 시행된 지도 30년이 넘었지만 동물학대 행위의 인정 여부가 수사·기소 담당자의 인식에 따라 달라지고 있다"며 "재물손괴로만 기소된 사례들의 경우, 동물을 인간의 소유물로만 보는 시각이 여전히 존재함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민법 개정으로 형법·동물보호법 개정과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 제고의 길이 열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동물권 연구 변호사단체 PNR의 김슬기 변호사는 "민법에서 동물이 ‘물건’이라는 범주 밖으로 나와 새로운 지위를 부여 받게 되면 동물 관련 개별 조항들도 차근차근 개정될 것으로 보인다"며 "예를 들어 남의 반려동물을 다치게 했을 때 민법상 재물손괴죄가 아닌 새로운 혐의가 적용된다거나, 재산분할 시 반려동물 양육권에 대한 조항을 새로 만드는 등 세세한 변화가 생길 수 있다"고 했다.

    김 변호사는 "민법 개정에 힘입어 형법과 동물보호법도 학대 행위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는 등 지금보다 동물권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바뀔 가능성이 열렸다"고 덧붙였다.

    반려동물에 대한 대중의 인식 개선의 계기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김 변호사는 "아직도 동물을 개인의 소유라고 여기는 인식이 강해 학대 행위에 대해서도 ‘내 재산에 내가 하는 건데’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며 "그러나 법이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고 명시적으로 규정한다면 동물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자연스레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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