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박소정 교수 연구팀
"개인병원 과잉 진료 등 공급자 모럴해저드"
실손의보 적자 주요 원인, 병원 관리감독 결함
실손의료보험(실손의보) 가입자가 일반 병원이나 의원에서 진료를 받을 경우 병원비를 69% 더 쓴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실손의보가 중소형 병원에서 과잉 진료를 유도하는 일종의 모럴해저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실손의보 적자가 커지고 보험료가 올해 20% 가까이 인상(1~2세대 기준)되는 배경 중 하나는 허술한 감독 체계가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박소정 서울대 교수와 정찬욱씨(서울대 경영대 석사)는 최근 ‘실손의료보험의 의료기관별 도덕적 해이(Fee-For-Service Health Insurance and Moral Hazard of Hospitals)’는 제목의 연구보고서(working paper)를 작성해 국제금융소비자학회(IAFICO) 등 관련 학회에서 발표했다. 박 교수 등은 현재 연구보고서의 학술지 게재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한국의료패널 자료를 이용해 2008~2016년 실손의보 가입 여부가 의료비 지출과 내원 일수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특히 병원 유형과 내원·입원 여부에 따른 차이를 각각 분석해 의료 공급 유형에 따른 효과를 판별한 것이 특징이다.
박 교수 등은 보고서에서 실손의보 가입 여부가 병원·의원 등 중소형 병원의 의료 공급에 미친 영향을 따로 분석했다. 실손의보 가입에 따른 영향과, 실손의보에 가입한 상태에서 중소형 병원을 이용한 것이 미친 영향을 함께 살피는 방식이었다.
그 결과 실손의보 가입 만으로는 영향이 크지 않았는데, 실손의보에 가입한 사람이 병·의원을 이용했을 때 의료비 지출이 크게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병원을 찾은 외래 환자의 경우 실손의보자의 의료비 지출이 69% 뛰었다. 입원 환자의 경우 실손의보 가입 여부가 의료비에 미친 영향은 12%였다. 연령, 직업 및 학력, 결혼 여부, 만성질환 유무 등이 동일하다고 가정한 경우였다. 박 교수는 "병·의원 이용과 실손보험 가입 여부가 동시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병·의원의 의료 공급 행태가 의료비 지출을 늘린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진료 회수의 경우 외래는 0.48회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입원 환자의 경우 0.14일 더 입원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보통 병원은 규모에 따라 의원(병상수 29개 이하), 병원(30개 이상 99개 미만), 종합병원(병상수 100개 이상에 7~9개의 진료 과목 보유) 등으로 나뉜다.
단순하게 실손의보 가입 여부만을 분석했을 때에도 의료비 지출이 큰 폭으로 뛰는 것으로 나타났다. 외래 진료의 경우 실손의보에 가입자는 의료비가 65% 더 많이 지출했다. 의원에서는 34%에 달했다. 종합병원은 실손의보 가입 여부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또 진료 회수도 의원이 0.44회, 일반 병원이 0.16회 더 많았다.
이 보고서는 실손의보 가입자가 과도한 의료비 지출을 하는 주요 원인이 병원의 공급 행태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보고서는 "의료 공급자인 의료기관 또는 의사의 도덕적 해이가 의료 수요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며 "규모가 작은 의료기관이 실손의보 가입자에게 더 큰 비용을 부과하거나 잦은 방문을 유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결국 병원에 대한 관리감독이 제대로 되지 않은 제도적 결함 때문이라는 것이다.
올해 주요 손해보험사들은 실손의보 보험료를 1세대 상품 기준 20% 전후로 인상했다. 생명보험사도 삼성생명이 18.5% 인상하는 등 보험료를 끌어올렸다. 실손보험은 2009년 10월 이전 판매한 1세대 상품을 구(舊) 실손보험, 2009년 말부터 2017년 3월까지 판매한 2세대 상품을 표준화 실손보험, 그리고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판매되는 상품을 신(新) 실손보험이라 부른다. 이 가운데 구 실손보험과 표준화 실손보험의 인상률이 모두 높았다.
보험사가 보험료 인상 근거로 든 것은 적자상품이란는 것이다. 지난해 상반기 구 실손보험과 표준화 실손보험의 위험손해율은 각각 142%와 132%다. 위험손해율은 고객이 낸 보험료 중 보험금 지급을 위한 재원인 위험보험료(분모)로 실제 고객 대상 지급액인 지급 보험금(분자)을 나눈 값이다. 보험 상품의 채산성을 가리키는 지표인데, 100%를 넘기면 보험사 입장에서 그만큼 적자를 본다는 얘기다. 다만 각각 분모와 분자에 보험사의 상품 운영비인 부가 보험료와 사업비 등이 포함시켜야 회사 차원의 손해율을 볼 수 있다.
구 실손보험은 가입자가 거의 의료비 부담을 지지 않으며, 표준화 실손보험은 10% 안팎만 부담한다. 따라서 비급여 항목에 대한 지출에 거리낌이 없다. 보험연구원이 지난해 9월 발표한 ‘최근 실손의료보험 청구 실태와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상반기 실손보험으로 청구된 비급여 진료는 1조1500억원 규모로 2017년 상반기(6400억원) 대비 79.7% 늘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