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산·화석연료 의존도 하락에 단기급등 힘들다" 분석도
지난해 코로나 사태로 반토막이 났던 국제유가가 최근 배럴당 60달러를 돌파하면서 거침없는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60달러를 넘어선 것은 지난해 코로나 확산세가 본격화되기 전인 지난해 초 이후 처음이다. 일부 투자은행과 시장 전문가들은 "유가 슈퍼사이클(대호황)의 시작"을 점치며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국제유가는 올 들어서만 30% 가까이 상승했다. 24일(현지시각) 뉴욕상업거래소에서 4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전 거래일보다 2.51% 오른 배럴당 63.22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해 1월6일(배럴당 63.27달러) 이후 최고 수준이다. 브렌트유도 2.64% 오른 배럴당 66.18달러에 마감했다.
유가 상승을 부채질하는 요인으로는 최근 미국 텍사스주(州)를 강타한 이상 한파로 인한 원유 생산 차질,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대규모 경기 부양책과 백신 보급 확산에 따른 경기 회복 기대감, 산유국의 감산 등이 꼽힌다.
최근 미 최대 석유산지인 텍사스주를 덮친 한파로 일부 정유 시설이 폐쇄되면서 원유 생산량이 큰 폭으로 줄어든 점이 유가에 영향을 미쳤다. S&P 글로벌 플래츠는 기록적인 한파와 폭설에 따른 정유 시설 가동 중단으로 텍사스주에서 일평균 원유 생산량이 최대 300만배럴 감소한 것으로 추정했다. 텍사스 퍼미안 분지는 미 원유 공급의 약 4분의 1을 담당하는데, 가동률이 평소의 절반 수준으로 급감해 공급난이 예고되고 있다.
주요 외신은 얼어붙은 원유 시추와 정유 설비를 정상화하는 데만 최소 2주가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원유 생산이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려면 수주일은 걸릴 것으로 보여 당분간 유가도 상승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석유 수요와 투자 심리가 회복되고 있다는 점도 유가를 끌어올렸다. 특히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 중인 1조9000억달러(약 2100조원) 규모의 경기부양책에 힘입어 경제가 정상화되고 석유 수요가 늘어날 것이란 기대감이 커졌다. 코로나 백신 관련 희소식도 유가 상승에 기여하는 요인이다. 국가별로 백신 접종을 확대하고 있는 가운데 24일 미국 식품의약국(FDA) 연구진이 존슨앤드존슨(J&J)이 개발한 코로나 백신의 긴급사용 승인을 지지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한 것도 유가에 호재로 작용했다.
여기에 석유수출국기구(OPEC) 등 산유국의 감산 이행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앞서 중동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 아라비아는 유가 부양을 위해 지난해 감산에 돌입했으며, 올해 2~3월까지 하루 평균 100만배럴을 감산하기로 했다. 다른 산유국들도 감산에 동참하면서 공급이 줄었다. 그간 공급 과잉이 해소되면서 유가도 상승세로 돌아섰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해 말 중국과 인도를 중심으로 회복세를 보이던 석유 수요가 올해 선진국으로 옮겨가면서 당분간 유가 상승이 지속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당초 시장 전문가들은 올해 상반기까지는 유가가 배럴당 40~50달러선에 머물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유가가 연초부터 상승 랠리를 이어가자 주요 투자은행들은 앞다퉈 유가 전망치를 상향조정하고 나섰다. 조만간 유가 ‘배럴당 100달러 시대’가 열릴 것이란 관측도 고개를 들고 있다. 유가가 100달러선에 거래된 것은 2014년이 마지막이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올해 WTI의 목표가를 기존 65달러에서 72달러로 높였다. 브렌트유도 오는 3분기 기준 75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골드만삭스는 "원유 생산량 회복이 지연되는 가운데 원유재고는 낮아 유가가 추가 랠리를 펼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제프리 커리 골드만삭스 애널리스트는 "미국 대규모 경기부양책으로 소비가 늘면서 석유 수요도 늘어날 것"이라며 "올해 유가가 배럴당 80달러선에 거래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JP모건은 유가는 물론 구리 등 주요 원자재 가격이 일제히 뛰는 ‘원자재 슈퍼사이클’의 시작을 예고했다. 크리스티안 말렉 JP모건 석유·가스 총괄은 "석유가 필요 없어지는 시점이 오기 전에 석유 부족 사태부터 겪을 것"이라며 "그 사이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또는 그 이상으로 치솟을 수 있다"고 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도 공급과잉 해소와 글로벌 부양책에 힘입어 수년 내 유가가 100달러를 넘길 수 있다고 진단했다.
물론 당장 유가가 100달러를 돌파하기는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블룸버그가 집계한 애널리스트들의 유가 전망치 평균은 2025년까지 배럴당 65달러였다. 산유국이 올해 증산에 나설 가능성이 높은 데다 세계 주요국이 탄소저감을 목표로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추는 정책을 펼치면서 수년 내 석유 수요가 꺾일 것이란 전망이 나오기 때문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도 석유 트레이더들의 말을 인용해 "석유시대가 저물기 전에 유가가 몇 번 더 치솟을 수 있지만, 이를 ‘슈퍼사이클’로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