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사모펀드 사태 책임 있어…금융위와 금감원 싸움 붙인 꼴
동학개미 운동은 노동소득 실패와 자본소득 양극화 결과물
증권사, 실적 잔치 벌일 때 아냐…개인 투자자 신뢰 회복해야

"자본시장이 ‘자본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시장 원리에 가장 충실한 시장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정치적 논리를 들이밀면 시장은 파행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습니다."

안동현 전 자본시장연구원장(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은 9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경제학과 사무실에서 진행한 조선비즈와 인터뷰에서 정치권에 쓴소리를 쏟아냈다. 최근 정치권의 요구로 금융위원회가 공매도 재개 일자를 총선 뒤인 5월 3일 이후로 연장한 것에 대한 일침이었다.

안 전 원장은 자본시장 분야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인물이다. 고려대와 미국 뉴욕대에서 경영학 전공 석박사를 마친 안 전 원장은 노스캐롤라이나 경영대학 부교수를 거쳐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했다. 해외 유명 투자은행(IB)에서 업계 경력을 쌓고 국민경제자문위원회와 금융발전심의위원회,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등에서 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3년 전 자본시장연구원 원장직 임기를 1년 남기고 다시 학계로 돌아갔다.

9일 안동현 전 자본시장연구원장이 조선비즈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그가 학계로 돌아간 이후 금융권에서는 사모펀드 사태, 동학개미 운동, 공매도 논란 등 굵직한 일들이 일어났다. 이날 만난 안 전 원장은 정치권을 비롯한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증권사와 자산운용사에 쓴 목소리를 쏟아냈다. 모두가 최근 논란이 되는 일들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작심 비판이었다. 공매도 논란을 이야기할 때는 한동안 침묵하기도 했다.

안 전 원장은 "공매도 논쟁은 전문성이 필요한 영역으로 정치권에서 손을 댈 사안이 아니다"라면서 "개인 투자자들이 민감한 상황에서 불난 곳에 기름 붓듯 발언을 쏟아내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사모펀드 사태의 일차적 책임도 정치권에 있다고 못 박았다. 안 전 원장은 "사모펀드 규제 완화를 처음 주장했던 국회의원들이 이제 와서는 ‘왜 규제를 완화했느냐’고 정부에 되묻는데 후안무치(厚顔無恥)하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현재 금융위와 금감원이 책임 소재를 두고 다투고 있지만, 이들 기관을 싸움 붙인 곳은 사실 정치권"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도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금융위가 사모펀드 규제를 완화하라는 정치권의 요구를 끝까지 거부하지 못한 부분은 아쉬운 대목이라는 것이다. 금감원 또한 라임자산운용의 설정 자산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충분히 이상 신호를 느끼고 감독을 강화했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금감원이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 않다"면서 "사모펀드 사태에 직원이 연루된 상황에서도 오히려 칼을 거꾸로 빼들어서 금융감독 체계 개편을 이야기한다"고 지적했다.

동학개미 운동에 대해서는 증권사가 경각심을 가질 것을 조언했다. 안 전 원장은 "지난해 개인 투자자의 직접 투자가 증가한 원인의 이면을 살펴봐야 한다"면서 "이는 개인 투자자가 증권사 공모펀드 등을 통한 간접투자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신호와도 같다"고 했다. 또 그는 "지난해 개인 투자자 덕에 증권사가 최고 실적을 기록했지만, 지금은 잔치를 벌일 시점이 아니다"라면서 "언젠가 장이 폭락하는 경우 막대한 손실을 본 투자자들이 자본시장에 대한 신뢰를 잃고 시장에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음은 안 전 원장과의 일문일답.

금융위가 공매도 재개 시점을 5월로 연기했다. 자본시장 정책이 정치화했다는 시각이 있다.
"자본시장이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가장 시장원리에 충실한 곳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논리를 계속 적용하면 시장이 파행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공매도는 전문성이 필요한 영역으로 정치권에서 개입할 사안이 아니라고 본다. 만약 정치권이 도움을 준다면 개인 투자자와 금융위 사이 이견을 조율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무책임하게 불난 곳에 기름 붓듯 발언하면서 기관 투자자와 개인 투자자 그리고 금융당국 사이 대립 구도를 만드는 방식은 건전하지 않다."

정치권에서 개인 투자자의 목소리를 대신 낼 수는 있지 않나.
"그렇더라도 문제의 초점을 정확히 짚어야 한다. 현재 정치권과 개인 투자자가 문제 삼는 무차입 공매도(주식을 빌리지 않은 상태에서 주식을 파는 것)는 공매도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의도적으로 무차입 공매도를 하는 경우는 드물다. 투자자 입장에서 그럴 유인이 없다. 결제일 이후 2일이 지나도 주식을 빌리지 못해 결제불이행이 뜨는 경우 투자자가 얻는 수익이 없기 때문이다. 해외에서도 실수로 무차입 공매도를 해서 결제 불이행이 뜨는 경우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안 교수는 자신을 스스로 ‘학계에서 공매도에 대해 가장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으로 칭했다. 그는 공매도 문제의 핵심을 ‘외국인 투자자의 시장 지배력’과 ‘불공정 거래에 악용될 가능성’으로 꼽았다. 집중 매도 전략을 펼치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개인 투자자에 비해 주가에 미치는 영향력이 지나치게 크기 때문이다. 안 교수는 "주식시장은 완전 경쟁이 보장돼야 하는데 이런 공매도 거래 행위는 불공정 거래를 유발한다"면서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경제적으로 문제가 있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공매도 재개 이전까지 금융당국은 어떤 문제를 해결해야 할까.
"코스닥 시장에 외국인이 주식을 한 주도 보유하지 않고 공매도만 하는 종목이 있다. 시가총액이 작아 공매도가 취약한 종목을 거래소가 분석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토대로 종목별로 공매도 가능 비율을 정하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선물 옵션 시장에서 매수·매도 한도를 정하는 '포지션 제한 제도'와 비슷한 원리다. 홍콩식 공매도는 종목별로 가능 종목과 금지 종목을 나누는 '모 아니면 도'의 방식이라면, 내가 제안하는 방식은 비례적 허용 방식이다. 또 불공정거래를 막는 차원에서 대차시장에서 진성 매도자를 파악할 수 있는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하고 불공정거래에 대한 부당이득 환수가 용이하도록 법규를 개정해야 한다."

사모펀드 사태도 지난해 문제로 떠올랐다. 금융위와 금감원이 서로를 탓하고 있다.
"사모펀드 사태도 사실 자본시장 정책이 정치화된 사례 중 하나다. 현재 금융위가 금감원에 감독 책임을 묻고, 금감원이 금융위에 규제 완화 책임을 물으면서 대립하고 있다. 사실 현재 두 기관을 싸움 붙인 곳은 정치권이다. 4년 전에 금융권에서 일했다면 당시 정무위 소속 국회의원들이 '사모펀드처럼 수익률이 좋은 상품을 왜 부자에게만 파느냐'면서 사모펀드 투자 요건을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을 모두 알 것이다. 당시 정부안은 투자 요건을 5억원 이상 유지하거나 3억원 이상으로 하향 조정하는 것이었다. 결국 1억원 이상 하향 조정안으로 대폭 규제가 완화됐다. 지금 국회의원들은 '왜 규제를 완화했느냐'고 다른 소리를 하는데 후안무치라는 사자성어가 떠오른다."

금융당국은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나.
"금융위가 책임이 있다면 당시 정치권의 압박을 버티지 못한 것이다. 금감원도 엄밀히 말하면 감독 책임이 있다. 라임자산운용의 경우 총운용자산(AUM)이 4000억원에서 4조원으로 단시간에 10배가 뛰었다. 그것도 메자닌과 같은 특수상품을 중심으로 자산이 급증했다면 금융당국이 살펴봤어야 한다. 매달 통계를 수집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게다가 검사 과정에서는 소속 직원이 검사 문서 유출 혐의로 연루됐다. 금감원이 반성하는 태도를 보인 적이 있나. 오히려 칼을 거꾸로 빼들어 금융감독 체계 개편을 말하고 있다. 금융사 최고경영자(CEO) 제재도 전체적으로 중징계 일변도다. 만약 그런 식이라면 직원의 일탈 행위를 관리하지 못한 금감원 원장과 부원장도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동일한 잣대를 적용한다면 이러한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가 없다."

사고도 있었지만, 좋은 소식도 있었다. 동학개미 운동으로 지난해 장이 호황이었다.
"마냥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20~40대가 주식 투자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배경을 살펴봐야 한다. 그 이면에는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인해 뒤처진 자들의 '절박함'이 있다. 이번 정권은 근로격차를 줄여서 양극화를 해소하겠다고 했다. 나를 포함한 많은 경제학자가 '언 발에 오줌 누기'라고 봤다. 양극화의 주범은 근로소득 격차가 아닌 자본소득 격차다. 서울 아파트 중위값이 9억원이 넘고 대출까지 조여놨는데 젊은 층이 무슨 재주로 아파트를 사겠냐.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타는 유일한 수단은 주식시장밖에 남지 않았다. '로또성' 투자가 이어지고 있는데 경제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신호와도 같다. 부동산 가격 상승을 따라잡기에 시간이 촉박하니 고위험 고수익 자산에 투자하는 경향이 강해진다."

고수익을 추구하며 주식 시장에 투자자가 몰리는 추세가 사회적 문제로 이어질까.
"증권사가 동학 개미 덕분에 역대 최고 이익을 냈다. 그러나 자축할 시점이 아니다. 만약 장이 꺼지고 투자자 손실이 막대하면 주식시장에 대한 신뢰가 무너질 수 있다. 주식시장만의 특징이 있다. 투자로 큰돈을 잃은 사람은 다시는 시장에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처음 주식 투자를 시작한 2030대가 낭패를 보면 이들이 시장을 떠날 수 있다. 내가 증권사 직원이라면 경각심을 가질 것 같다."

증권사의 역할은.
"소비자 보호에 집중해야 한다. 개인 투자자의 직접 투자 비율이 높아지고 있는데 간접 투자보다 위험한 방식이다. 개인은 기관보다 정보가 부족하고 자본력이 뒤처지기 때문이다. 증권사 차원에서 간접 투자의 인기가 시든 이유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 그간 증권사는 개인 투자자의 이익을 도모한다기보다 수수료 수익을 챙기기에 급급했다. 이들이 다시 개인 투자자의 신뢰를 얻도록 노력해야 한다. 위험을 고지하고 정보를 제공하는 등의 방법이 있다."

정부의 역할은 무엇인가. 최근에는 공모주 배분 방식도 증거금 규모와 관계없이 균등 배분하는 비중을 늘리는 등 개인 투자자 친화적인 정책을 펴고 있는데.
"추세에 휩쓸린 즉흥적인 정책을 펴면 안 된다고 본다. 시장 상황이 변하면 투자자 손해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공모주가 날개를 달고 '따상(신규 상장 종목이 첫 거래일 공모가 대비 두 배로 시초가를 형성한 후 가격제한폭까지 올라 마감)'을 기록하는 경우도 있지만, 나중에 '따하(신규 상장 종목이 첫 거래일 공모가 대비 절반 수준으로 시초가를 형성한 후 가격제한폭까지 내려 마감)'가 되면 어떻게 할 것이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공매도든 사모펀드든 결국 모두 신뢰의 문제다. 증권사나 자산운용사 등 기관이 개인 투자자로부터 신뢰를 회복해야 하는 시점이다. 운용사나 판매사는 '잘 팔리는 상품'이 아니라 '고객에게 최선인 상품'을 판매하고 고객의 돈을 자신의 돈보다 소중하게 관리해야 한다. 그런 이후에 정부에 요구할 부분이 있으면 요구하면 된다. 예컨대 현재 증권사나 자산운용사는 연기금과 같은 '큰 손' 투자자보다 개인 투자자로부터 초과 수익을 내는 기형적인 방식으로 성장해왔다. 연기금이 위탁 운용 수수료가 저렴한 곳을 낙찰하기 때문이다. 이런 관행을 고쳐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