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1위 통신·미디어사와 제휴했지만
최근엔 싱가포르 2위 통신 사업자 선택
KT 유리해 보이지만 결과 끝까지 지켜봐야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 3사가 디즈니의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디즈니플러스’를 국내에 독점 서비스하기 위해 치열한 물밑 협상을 벌이고 있다. 디즈니가 어떤 곳과 손을 잡을지 예측이 되지 않는 가운데 전 세계 주요 국가 사례를 살펴봤다. 이를 종합해볼 때 현재 협상 고지에서 가장 유리한 건 KT(030200)로 보이지만 결과는 끝까지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디즈니는 디즈니플러스를 서비스할 때 해당 지역의 1위 통신사와 손을 잡는 전략을 선택했다. 미국 버라이즌과 일본 NTT도코모, 인도 지오 등이 대표적이다. 세 국가 모두 큰 시장을 자랑하는 만큼 디즈니가 최우선으로 공략하는 지역이다.
디즈니가 가진 막강한 콘텐츠 영향력에 국내 통신사들도 디즈니플러스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디즈니플러스는 겨울왕국, 알라딘, 라이온킹 등 전통의 디즈니 콘텐츠를 비롯해 픽사, 마블, 스타워즈, 내셔널지오그래픽 등 7500편이 넘는 장편 드라마와 500편 이상의 영화 콘텐츠 등으로 전 세계 OTT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서비스한지 1년 만에 전 세계적으로 8600만명의 유료가입자를 유치하며 넷플릭스 가입자의 절반 수준까지 따라왔다. 디즈니는 디즈니플러스의 2024년 유료가입자 목표치로 애초 제시했던 6000만~9000만명에서 2억5000만명으로 높였다.
디즈니플러스는 넷플릭스와 달리 가족형 콘텐츠가 중심이기 때문에 케이블이나 인터넷TV(IPTV) 등 안방극장을 잡고 있는 로컬 사업자들과 협력이 필수적이다. 디즈니는 미국, 일본, 인도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유럽 최대 미디어 그룹인 비방디(프랑스), 유럽 최대 통신사 도이치텔레콤(독일) 등 1등 사업자들과 손을 잡고 디즈니플러스를 서비스 중이다. 넷플릭스가 해외 국가로 진출할 때 해당 지역의 하위 점유율 통신사와 계약하고 진입 후 그다음 상위 통신사하고 계약하는 방식을 채택한 것과 반대의 방식이다.
지난해만 하더라도 업계에선 국내 1위 통신사업자인 SK텔레콤(017670)을 디즈니플러스의 가장 유력한 파트너로 점쳤다. SK텔레콤은 2019년부터 디즈니와 물밑 접촉 중이란 사실을 밝힌 바 있다.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은 2019년 11월 기자들과 만나 "(협상을 위해) 디즈니와 만났고, 재밌는 것을 가져왔는데 아직 말을 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유료방송업계 일각에선 KT와 LG유플러스(032640)가 넷플릭스와 제휴 중인 만큼 디즈니와 제휴에서 SK텔레콤보다 불리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하지만 이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인도 지오의 경우도 이미 넷플릭스와 제휴를 맺고 있지만, 디즈니와 추가로 제휴를 했기 때문이다.
현재는 SK텔레콤보다 KT와 LG유플러스가 디즈니와 계약을 체결할 가능성이 더 크게 점쳐진다. 먼저 SK텔레콤의 자회사인 SK브로드밴드가 최근 ‘망 사용료’를 놓고 법적 소송 중이고, 자체 OTT인 웨이브를 육성하고 키우는 방향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들 때문에 디즈니가 제시하는 계약 조건이 좋지 못하면 SK텔레콤 입장에서 망설여질 수밖에 없다. 실제 다음 달 23일 디즈니플러스 서비스를 시작하는 싱가포르에서도 디즈니는 1위 통신사업자인 싱텔과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2위 통신사인 스타허브와 독점 계약을 맺은 사례가 있다.
또 현재까지 디즈니의 제휴 전략을 보면 한 지역에서 처음부터 두 개의 통신사와 동시에 제휴를 맺는 방식은 확률이 낮다. 디즈니 입장에서 여러 통신사와 협상을 진행해 계약을 체결하기보다는 한 통신사와의 제휴로 성공 사례를 만든 뒤 추후 다른 통신사와의 제휴를 맺을 때 협상이 더 수월할 수 있다.
이처럼 여러 사례로 봤을 때 현재 국내 시장 구조상 디즈니와의 협상에서 가장 유리한 건 KT라고 볼 수 있다. KT와 LG유플러스의 협상 의지가 똑같고 한 곳하고만 손을 잡는다면 디즈니 입장에선 KT와 손잡을 확률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무선시장과 달리 유료방송 시장에선 통신 3사 중 KT의 점유율이 가장 높다. 디즈니도 국내 시장 공략을 강화하기 위해선 로컬 콘텐츠 수급도 필수적이다. KT가 지난달 28일 콘텐츠 전문법인 ‘KT스튜디오지니’를 설립하고 오리지널(자체) 콘텐츠 제작을 위해 외부 자금도 수혈한다는 전략을 밝힌 만큼 서로 ‘윈윈’하는 시스템이 구축될 수 있다.
물론 디즈니가 디즈니플러스의 한국 서비스 시점을 올해 중반(6~8월)쯤으로 잡고 있는 만큼 어떤 결과가 나오기는 아직 장담하기 어렵다는 게 통신업계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디즈니 입장에선 반드시 통신사와 손을 잡지 않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디즈니가 만약 통신사와의 협상이 지지부진할 시 다른 유통경로를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남미 지역에선 1위 이커머스 업체인 마카도리브레 등을 통해 디즈니플러스를 판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