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인터뷰] "동남아는 美中日 각축장...韓, 좋은 이미지 당연시 하면 안돼"

조선비즈
  • 이용성 국제부장
    입력 2021.01.11 06:00

    "RCEP 발효로 아세안 역내 교역도 활발해질 것"
    캄보디아·라오스의 공사장에는 예외 없이 ‘중국어 표지판’
    개발협력 통해 도움 주고 좋은 외교관계 유지해야 승산
    아세안 출신 이주노동자·다문화가정 잘 돌보는 것도 외교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시장의 중요성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커질 수밖에 없다. 미국과 중국이 역내의 외교·경제 주도권을 서로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중략) 다행히 아세안 지역에서 한국의 이미지는 좋지만 그걸 당연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국제관계에서는 우호적인 감정도 뭔가 도움을 줘야 계속 유지될 수 있다."

    이혁 한∙아세안센터 사무총장. /한∙아세안센터
    아세안은 총인구 6억5000만명, 국내총생산(GDP) 2조9000억 달러(약 3167조원)의 거대 단일시장이다. 1967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등 5개국으로 출발했다. 1984년 브루나이에 이어 베트남(1995년), 라오스·미얀마(1997년), 캄보디아(1999년)가 차례로 가입하면서 10개국 체제가 됐다.

    이후 꾸준히 역내 경제 통합을 추진해 2010년 아세안자유무역지대(AFTA)가 탄생했고, 2015년 말 아시아판 유럽연합(EU)을 지향하는 아세안경제공동체(AEC)가 출범했다. 민감 품목을 제외한 상품 교역의 역내 평균 관세율을 0%에 가까운 수준으로 낮췄고, 2025년까지 단일 경제권을 구현한다는 계획이다.

    우리에게 아세안의 중요성이 부쩍 커진건 2018년 미·중 무역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부터다. 수출 시장으로 의존도가 높은 미국과 중국 간 갈등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교역시장 다변화가 지상과제가 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세계 최대 규모의 자유무역협정(FTA)인 RCEP(알셉·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이 체결된 것도 아세안의 위상을 한층 끌어올렸다. 전세계 국내총생산(GDP)의 약 30%를 차지하는 RCEP은 우리나라와 아세안 10개국, 중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 15개국이 지난해 11월 체결했으며, 연내 발효가 유력한 상황이다.

    이혁 한∙아세안센터 사무총장은 "한국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아세안 시장에서 경쟁에 뒤쳐지지 않으려면 정부가 역내 국가들과의 개발협력 등을 통해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해 우리 기업들의 현지 진출에 유리한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혁 사무총장은 외교부의 브레인이자 대표적인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전문가로 꼽힌다. 2018년 4월 한∙아세안센터 사무총장에 부임하기 전까지 주베트남·주필리핀 대사, 외교부 기획조정실장과 아시아태평양 국장, 청와대 외교비서관 등을 역임했다. 주일 대사관 공사 출신으로 베트남을 비롯한 아세안 지역에서 일본의 역할과 위상에 대한 이해도 깊다.

    한·아세안센터는 한국과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 ASEAN) 10개 회원국 간 교류협력 확대를 목적으로 지난 2009년 설립·출범한 국제기구다. 한국 기업의 아세안 진출을 돕기 위해 시장조사단을 파견하는 등 역내 투자와 인적 교류 확대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 사무총장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8층 한∙아세안센터에서 인터뷰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지난해 업무에 제약이 많았을 것 같다.
    "인적 교류에 제약이 많아 소셜미디어(SNS)와 온라인 기반 활동에 치중할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업무 영역을 확장하고 체질을 개선하는 계기도 됐다. 세미나와 워크숍은 앞으로도 상황에 따라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병행해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온라인으로 진행하면 훨씬 더 많은 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그렇다 해도 교류의 질적인 측면을 생각하면 만나서 이야기 나누는 것과 같을 수는 없다."

    아세안 국가들과 교역에도 타격이 불가피했을텐데.
    "교역은 걱정했던것 만큼 크게 줄지 않았다. 2019년 한국과 아세안의 교역 규모가 1530억 달러(약 167조원)였는데 지난해 11월까지 1297억 달러였으니 선방했다고 볼 수 있다. 그보다 관광 분야의 타격이 컸다. 2019년에 우리나라에서 아세안 국가를 방문한 관광객은 1000만명을 넘어섰고, 그쪽에서 우리나라에 온 관광객도 약 270만명에 달했는데 지난해에는 코로나 사태로 방문이 끊기다시피 했다. 아세안 전체 국내총생산(GDP)에서 관광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약 14%에 달하고 태국 같은 경우에는 22%나 되기 때문에 경제적인 충격이 클 수밖에 없었다."

    미·중 갈등으로 지난 2~3년간 아세안 시장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졌지만 ‘베트남 쏠림’이 지나치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지난해 11월까지 우리나라와 아세안의 교역에서 베트남이 차지하는 비중은 48%로 절반에 가까웠다. 그렇다고 베트남과의 교역과 인적교류가 늘어나는 것 자체를 나쁘게 볼 수는 없다. RCEP 발효로 아세안 역내 교역도 활발해질 것이고 각국의 경제와 인프라 상황에 따라 밸류체인도 형성될 것이다. 베트남만 해도 벌써 미얀마 등 주변 국가에 투자를 많이 하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나라의 대(對) 아세안 투자와 교역도 다변화 될 것으로 본다."

    베트남이 제2의 중국이 될 수 있을까?
    "베트남 인구가 1억에 가깝지만 시장 규모나 자본, 기술력 면에서 아직 갈길이 멀다. (베트남 최대 민간기업인) 빈(Vin)그룹이 스마트폰(빈스마트)도 만들지만 삼성과 화웨이등 다른 기업들이 많이 앞서있다. 자동차(빈패스트)는 연간 25만대를 생산하는데 독일 기술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 자체 브랜드와 기술력으로 수출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기는 당분간 쉽지 않아 보인다. 대외 의존도가 높아 경제구조도 취약하다. 삼성전자가 베트남 GDP의 30% 이상을 차지한다. 중국처럼 외국인 투자자를 내치거나 할 수 있는 나라는 아니다."

    우리 기업들이 다른 아세안 국가에서도 선전하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시장 진출은 기업이 판단할 문제다. 하지만 정부가 외교적으로 힘을 실어줄 수는 있다. 개발협력 등을 통해 도움을 주고 좋은 외교관계를 유지해 우리 기업들이 진출하기 좋은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

    K팝과 K드라마의 인기 덕에 우리나라의 이미지는 괜찮은 편 아닌가.
    "한류열풍에 힘입어 아세안 국가에서 한국의 이미지는 좋지만 그걸 당연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호적인 감정도 뭔가 도움을 줘야 계속 유지될 수 있다. 베트남에만 약 20만명의 한인들이 산다. 필리핀과 인도네시아의 한인 인구는 각각 6만~7만명, 5만명을 헤아린다. 한인 커뮤니티가 지역 사회에 많이 기여하고, 구성원들이 품격있게 행동하고 현지인들을 존중하면 그게 한국의 국가브랜드의 중요한 부분이 된다. 그게 언젠가 국내 기업들의 현지 진출에 힘을 실어줄 것이다."

    우리나라에 있는 아세안 출신 이주노동자와 다문화가정을 잘 돌보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중요할 것 같다.
    "물론이다. 일본과 비교하면 그 부분에서 우리나라가 그렇게 못하는 것 같진 않다. 관련 프로그램도 많이 생겼고, 예산도 적잖게 쓴다. 일본의 경우 이주노동자와 다문화가정을 돕기 위한 자원봉사활동이 우리 보다 훨씬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긴 하다."

    과거 아세안에서 우리나라는 중국에 기술력에서, 일본에 가격경쟁력에서 앞선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중국에 가격경쟁력에서, 일본에 기술력에서 뒤진다는 뜻도 된다). 그런 분석이 지금도 유효할까.
    "이제 그런걸로 비교되는 시대는 지난 것 같다. 국적을 불문하고 품질과 가성비에서 앞선 물건을 만들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 승리하는 시대가 온 것 아닐까."

    오랫동안 아세안 지역의 맹주는 일본이었다. 그런데 중국이 막대한 자본을 앞세워 인프라 투자를 늘리면서 변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식민지배 경험을 통해 이 지역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후쿠다 독트린’을 앞세워 40년 넘게 동남아 시장에 공을 들여왔다. 그런데 이제 중국이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나타나 긴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중국은 동남아시아에서 영향력을 키워야만 미국과 경쟁할 수 있다. 그렇게 본다면 이 지역을 둘러싼 중국과 일본의 경쟁은 미·중 갈등의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도 있다."

    후쿠다 다케오 전 일본 총리는 1977년 동남아 6개국 순방의 마지막 국가였던 필리핀에서 "일본은 군사 대국이 되지 않을 것이며 아세안 회원국들과 정치·경제뿐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도 마음과 마음을 어루만지는 진정한 친구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일본은 이 같은 내용의 '후쿠다 독트린’을 바탕으로 동남아 국가들에 대한 공적개발원조(ODA)와 투자를 크게 늘렸고 대중음악과 애니메이션, 패션 등 '소프트 파워'로 동남아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중국이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를 앞세워 아세안 국가에 인프라 투자를 늘리면서 경제 종속 심화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캄보디아와 라오스의 대규모 공사장에는 거의 예외 없이 중국어 표지판이 붙어있다. 중국 국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아세안에서도 경제적으로 취약한 나라들이 중국에 경제적으로 예속되기 십상이다. 캄보디아 경우 정치권의 부패가 심하고 (훈 센 총리의 36년에 걸친) 장기 독재가 이어지면서 일본은 손을 떼다시피 했다. 라오스는 시장 규모가 작아서(인구가 약 700만명에 불과) 관심을 가지는 나라가 중국 뿐이다. 미얀마도 조심하지 않으면 중국의 부채-함정 외교(debt-trap diplomacy)'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미국의 동맹국인 필리핀은 2016년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 취임 이후 친(親)중국으로 급선회했다.
    "중국과 미국 중 어느 나라가 앞으로 필리핀의 국익에 중요한지에 대한 나름의 판단이 선 것 같다. 중국의 경제력이 커지고, 중국과 필리핀의 교역량도 늘어나면서 필리핀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도 급증했다. 미국의 경제적 중요성은 점점 감소하고 있다. ‘미국이 동맹이라고 해도 막상 중국이 필리핀 공격했을 때 막아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했을 것이다. 현실주의적인 판단일 수 있지만 위험한 생각일 수도 있다. 정권이 바뀌면 또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아세안 국가 중에는 화교(華僑)자본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곳이 적지 않다. 중국에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을까.
    "화교들이 반드시 ‘친중’은 아니다. 동남아시아에는 중국이 공산화되기 전에 정착한 화교들이 많은데, 그 중에는 중국에 반감을 갖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물론 본토와 사업으로 엮여있는 경우는 예외로 봐야한다."

    싱가포르의 쇼핑 중심지인 오차드 거리의 야경. /트위터 캡처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시행 여파로 ‘아시아의 금융허브’ 경쟁에서 싱가포르가 반사이익을 볼 것으로 보는 의견이 많다.
    "지난해 상반기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아세안 투자 1위 국가는 싱가포르(23억 달러)였다. 베트남(14억 달러)은 2위다. 생활환경이 좋고 법인세(최고 17%, 홍콩은 최고 16.5%)가 낮은데다 상속세도 없다. 그렇다고 홍콩의 위상이 쉽게 흔들릴 것 같진 않다. 입지조건이 워낙 좋다. 홍콩을 통한 간접 수출 등을 통해 누리는 이익이 적지 않다는 건 중국도 잘 알고 있다. 아마 시간이 지나면 홍콩에 대한 간섭을 ‘뉴노멀(새로운 표준)’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중국 정부가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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