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명 높은 물가, 원격근무 확대에 기업들 실리콘밸리 '탈출'
실리콘밸리의 '터줏대감' 오라클도 텍사스로 본사 이전
테슬라, HPE 등도 텍사스행, 애플도 신캠퍼스 건설중
"오스틴, 물가 싸고 소득세 없고 고급인력 넘쳐.. 최적의 조건"
국내에서는 텍사스주립대의 메인 캠퍼스가 있는 대학도시이자 삼성전자 법인과 반도체 사업장이 위치한 곳으로 잘 알려진 텍사스주 오스틴에 대형 정보기술(IT) 기업을 비롯해 스타트업이 대거 몰려들고 있다.
이에 따라 인구 약 75만명의 오스틴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실리콘밸리'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코로나19로 인한 원격근무를 비롯해 실리콘밸리의 높은 세율과 물가를 피해 대기업들이 본사를 텍사스로 잇달아 옮기고 있는 가운데 테슬라, 애플 등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도 텍사스로 향하고 있다.
27일(현지 시각)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텍사스주 오스틴은 최근 최첨단 스타트업·IT 밸리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의 이주와 원격 근무자들이 캘리포니아의 실리콘밸리를 벗어나 오스틴으로 거주지를 옮기면서 변화의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WSJ에 따르면 오스틴 시내 곳곳에는 새 건물 건축을 위한 건축용 크레인이 들어서있다. 또 세계적인 스포츠 의류 브랜드인 룰루레몬을 비롯해 명품 향수 브랜드인 르라보, 명품 브랜드인 에르메스 등이 도시 곳곳에 매장을 열고 있다. 도시에 몰려는 인구와 소비 수준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의미다. 오스틴의 인구는 2000년 67만명 수준에서 현재는 100만명에 달할 정도로 급격히 늘었다.
WSJ는 이처럼 오스틴이 새로운 도시로 탄생하게 된 배경에는 코로나19를 꼽았다. WSJ는 코로나19로 인해 미국 각지에서 원격 근무가 확산된 가운데 기업과 근로자들이 캘리포니아를 벗어나 오스틴으로 옮겨오면서 도시의 변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1년 내내 따뜻한 기후와 낮은 임대료, 물가 등도 오스틴이 각광받게 된 이유 중 하나다.
오스틴 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지난 11월 기준 IT기업을 비롯한 39개 회사가 올해 오스틴으로 본사를 옮겼다. 팔란티어 창업자 조 론스데일이 만든 벤처캐피탈 회사 8VC와 로펌용 기록 관리 소프트웨어(SW) 업체 파일트레일(FileTrail), 온라인 설문조사 SW 회사 퀘스천프로(QuestionPro) 등이 올해 본사를 오스틴으로 이전했다.
텍사스 오스틴은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 AMD와 PC 제조사인 델 등 업계 선두주자들이 이미 터를 잡고 있는 도시다. 여기에 삼성전자 시스템반도체 공장도 오스틴에 위치하고 있다. 여기에 최근 미국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업체 휴렛팩커드 엔터프라이즈(HPE)가 본사를 캘리포니아 산호세에서 텍사스 휴스턴으로 이전한다고 밝힌 후 대규모 이전을 시작했다.
특히 미국 실리콘밸리 터줏대감 가운데 하나인 소프트웨어 업체 오라클이 이달 텍사스주로 본사를 옮긴다는 계획을 밝히면서 화제가 됐다. 오라클은 1977년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에 설립된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 가운데 하나다. 1989년 지금의 실리콘밸리로 본사를 옮겼다.
이어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CEO도 거주지를 20여년 살던 캘리포니아에서 텍사스로 옮기겠다고 밝힌 바 있다. 텍사스에 스페이스X 생산시설이 있고 새로운 공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테슬라와 민간 우주기업 스페이스X의 본사는 여전히 캘리포니아에 있지만 앞으로 텍사스로 옮길 수 있다는 뜻을 트위터에서 내비치기도 했다.
이는 반대로 수많은 기업들이 미국을 대표하는 혁신 도시인 실리콘밸리를 떠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특히 코로나 상황에서 재택근무가 확대되며 이를 촉진시켰다는 것이 WSJ의 분석이다. 악명 높은 부동산 가격과 높은 개인소득세율에도 불구하고 실리콘밸리를 고집해왔던 기업들이 주(州) 정부의 엄격한 봉쇄 조치로 불만이 폭발했고 대체지역으로 텍사스 지역이 각광받고 있다는 얘기다.
텍사스는 상대적으로 땅값이 저렴하고 개인소득세도 없다. 이중 오스틴은 고급 노동 인력을 확보할 수 있는 곳으로 특히 인기가 높다. 이 지역에는 25개 대학이 위치하고 있으며 노동인구의 47%가 대졸자다. 아직 개발이 되지 않은 지역이 많아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설 공간도 많다.
이처럼 실리콘밸리를 떠나는 기업들의 숫자가 점점 늘고, 반대로 오스틴에는 많은 기업들이 몰려들면서 오스틴 서부 구릉지대를 가리키는 '실리콘힐스(Sillicon Hills)'와 같은 단어들이 떠오르고 있다. 실리콘힐스는 스타트업을 비롯한 첨단 IT 기업이 대거 입주해있다. 오스틴에 최근 '스타트업 도시'와 같은 별칭이 붙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반면 오스틴 내부적으로는 갑작스럽게 몰려든 사람들과 자동차, 건물들로 도시 전체에 교통 체증을 비롯한 각종 문제가 새로운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WSJ는 "대기업들과 엄청난 자본이 몰려들면서 오스틴 역시 과거 실리콘밸리가 위치한 새너제이처럼 인구 밀도, 교통, 임대료 상승 등의 문제가 다시 논쟁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