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국 '탄소중립' 선언에 기업들도 발빠른 대응
LG화학은 친환경 전기로 공장 가동, 포스코는 수소 사업 키운다
애플도 2030년까지 "제조공급망 탄소중립" 발표
전기료 상승·설비투자 급증에 경제성 악화 우려도

정부가 205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제로(0)’로 만드는 탄소중립(Net Zero)을 선언하면서 국내 기업들도 잇따라 탄소 저감을 선포하고 나섰다. 공장을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기반 친환경 전기로 가동하고, 공정 자체를 탄소 배출이 없는 방식으로 탈바꿈한다는 계획이다. 포스코, 한화, 효성 등 주요 기업들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 중인 수소 사업에도 앞다퉈 진출하고 있다.

다만 아직 친환경 공정이나 수소 관련 기술이 고도화되지 않아 경제성이 떨어지는 만큼, 기업들이 빠른 시간 내 탄소중립을 실현하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픽=김란희

LG화학(051910)은 지난 7월 국내 화학업계 최초로 ‘탄소중립 성장’을 선언했다. 그 일환으로 LG화학은 재생에너지로 만든 친환경 전기를 사용해 공장을 가동하기로 했다. LG화학의 중국 장쑤성 우시 소재 양극재 공장은 현지 풍력·태양광 전력판매사인 ‘윤풍신에너지’로부터 연간 140GWh(기가와트시) 규모의 재생에너지를 구매하는 전력구매계약(PPA)을 지난 13일 체결했다.

친환경 전력 사용시 일반 산업용 전력과 비교해 10만톤의 탄소 감축이 기대된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LG화학은 "우시 양극재 공장에 이어 내년까지 저장성 소재 전구체 공장도 재생에너지 전력으로 전환해 중국 내 배터리 소재 분야에서 90% 이상 탄소중립을 실현할 계획"이라고 했다.

LG화학 중국 우시 양극재 공장 전경

포스코도 최근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석탄을 사용한 기존 철강 공정을 친환경 방식으로 바꾸고 수소사업을 확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탈탄소 전략을 발표했다. 포스코는 2050년까지 수소 생산 500만톤 체제를 구축하고 수소 분야 사업으로 매출 30조원을 달성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친환경 에너지 캐리어(저장매개체)인 수소를 주도적으로 생산하고, 이를 철강 생산에 활용해 기후변화 주범인 탄소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인다는 구상이다. 나아가 수소를 활용한 철강 생산 기술인 수소환원제철공법에 투자해 2050년까지 탄소 배출이 없는 ‘수소환원 제철소’를 구현하고, 수소 생산·운송·저장·활용에 필요한 강재 개발 등에 투자하기로 했다. 포스코 관계자는 "철강 분야에서 탈탄소·수소시대를 열겠다"고 말했다.

SK(034730)그룹의 6개 계열사를 필두로 국내 기업의 ‘RE100’ 가입에도 탄력이 붙는 분위기다. RE100이란 기업에서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대체하는 자발적 캠페인으로, 현재까지 애플, 구글, BMW 등 글로벌 277여개 기업이 가입했다. 오비맥주의 본사인 AB이베브가 RE100에 가입하자, 오비맥주도 광주·청주·이천 등 3개 맥주 생산 공장에 태양광 발전 설비를 설치하고, 향후 태양광 발전 전력으로 맥주를 생산하기로 했다. 오비맥주는 "맥주를 생산하는 전력을 재생에너지로 대체하면 연간 탄소 배출량을 약 5621톤 감축할 수 있다"고 밝혔다.

기업들의 이런 움직임은 선택이 아닌 필요에 의한 것이다. 세계 각국이 지구온난화에 대응하기 위해 ‘탄소중립 정책’을 추진하는 상황이라 탄소 저감 노력에 동참하지 않는 기업은 장기적으로 국제사회에서 설 곳을 잃을 수 있다. 당장 대응하지 않으면 수년 내 각국의 환경 규제 장벽에 부딪혀 해외 사업을 하기 어려워질 수 있어 기업들이 선제적으로 탄소 저감 노력에 돌입했다고 업계는 분석한다.

미국에선 애플이 올해 7월 2030년까지 전세계 제조 공급망에서 탄소 배출량 ‘제로(0)’를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환경을 위한 노력을 뒷받침하는 혁신은 지구에 이로울 뿐 아니라 제품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세계에서 새로운 청정 에너지원을 개발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애플 '데이브 로봇'은 아이폰 탭틱 엔진(Taptic Engine)을 분해해 희토류 자석과 텅스텐 등 핵심소재와 강철소재를 회수한다.

당장 내년부터 정부가 탄소 저감 관련 기술에 투자하는 기업에 세제 혜택을 지원하기로 하면서 탄소중립 노력에 동참하는 기업들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2050년까지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려면 사업장의 전기요금 상승, 공정 변환을 위한 막대한 설비투자 비용 등이 불가피한 만큼, 탈(脫)탄소를 서두르다가 경쟁력을 잃지 않기 위해선 업종별로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는 "탄소제로(net zero)는 엄청난 도전이기 때문에 현실적인 조치가 우선되어야 한다"며 "기후 목표를 달성하려면 글로벌 GDP(국내총생산)의 1~2%를 지출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고 18일(현지시각) 보도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30년까지 탄소중립 실현에 필요한 인프라 구축에만 연간 7조달러가 들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정부와 기업 모두 에너지 전환에 막대한 비용을 투입해야 하는 셈이다.

정부 내에서도 탄소중립 실현 방법을 두고 ‘신중론’이 제기되고 있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최근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에서 "탄소저감 노력을 하면 탄소배출 가격이 오르고 장기적으로 난방비와 전기료가 상승하고 자동차 유류세도 비싸진다"며 속도 조절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국내 석유화학 업계 관계자는 "앞으로 탄소중립 노력을 강화하면서 전력 사용량이 급증할 전망인데, 친환경 전력을 수월하게 공급받을 수 있는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며 "업종별로 공정 변환에 필요한 설비투자 비용에 대한 정부 지원도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