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하반기 폐전지~ 양극재 생태계 완성
"인적분할 대기환경사업, 투자 늘릴 것"
"내년 하반기부터 포항에서 배터리 양극재 생태계가 본격적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면 창출되는 부가가치가 2.5배 이상 늘어날 겁니다."
지난 16일 충북 청주 본사에 만난 이동채 에코프로 회장(사진)은 ‘515 프로젝트’가 실현 가능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515 프로젝트는 2025년까지 매출 5조원, 영업이익 15%를 달성하자는 이 회장의 비전이다. 그는 "부가가치 스펙트럼을 넓혀 5년 안에 세계 1위 양극재 기업으로 키우겠다"고 말했다.
1998년 설립된 에코프로(086520)는 본업인 대기환경 사업보다 이차전지 리튬이온 배터리에서
가장 중요한 원료인 양극재를 생산하는 에코프로비엠 지주사로 더 유명하다. 에코프로비엠은 연간 5만 9000t의 양극재 생산으로 국내 1위 기업이고, 전기차 배터리에 많이 쓰는 니켈·코발트·알루미늄(NCA) 양극재에선 점유율 세계 2위다. 1위는 테슬라에 양극재를 공급하는 일본 스미토모다.
회계사 출신인 이 회장은 "1만명을 먹여 살릴 회사, 미래를 고민하는 조직을 만들고 싶어 제조업을 시작했다"며 "직원들의 다양성을 조정하는 역할이 내 캐릭터와 잘 맞는다"고 말했다.
◇경쟁사보다 3~4년 앞선 기술력…삼성SDI와 합작사 설립
양극재는 배터리 용량을 늘리고 출력을 높이는 핵심 원료로 에너지를 저장하거나 방출시키는 역할을 한다. 배터리 원가의 40%를 차지한다. 제조공정은 니켈·코발트·알루미늄·망간 등 원료에 화학반응을 일으켜 전구체를 만들고, 리튬을 섞어 구우면 완성된다.
10만평 규모의 ‘에코배터리 포항 캠퍼스’에는 이런 제조 공정에 특화된 계열사가 입주해 있다. 양극재를 생산하는 에코프로비엠, 양극재 전 단계인 전구체를 만드는 에코프로지이엠, 리튬을 제조하는 에코프로이노베이션이다. 폐배터리에서 원료를 뽑아내는 에코프로씨엔지는 내년 하반기 완공된다.
이 회장은 "우리의 경쟁력이 경쟁사보다 3~4년 앞선 기술력이라고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삼성, SK, 일본 무라타제작소(TMM), 대만 이원몰리 같은 다양한 고객"이라며 "그들에게 얻는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 상황이지만 직원들을 유럽과 일본으로 보내 고객을 만나고 기술을 알리고 이유"라고 했다.
고객사에서 배터리 증산에 열을 올리면서 매출이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2016년 1700억원, 2017년 3300억원, 2018년 6700억원, 2019년 7020억원, 올해는 3분기까지 6700억원을 달성했다. 이 회장은 "모든 계열사 매출을 합치면 시장 전망인 1조원의 95% 이상 달성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매출 전망도 밝다.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2025년 양극재 수요량은 지난해보다 6배 증가한 275만톤에 달한다. 올 초 SK이노베이션(096770)과 앞으로 4년간 2조 7000억원 규모의 계약을 맺고 양극재 생산을 준비 중이다.
삼성SDI(006400)와는 끈끈한 관계다. 합작사인 에코프로이엠을 차렸고 최근 삼성 전용 양극재 공장을 착공했다. 이 회장은 "합작사 설립은 삼성에서 앞으로 더 많은 양극재를 공급받겠다는 의지 표시가 아닌가 생각한다"며 "삼성에서 기술을 높게 평가해줬고 서로 이해가 맞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출력이 세고 오래 가는 NCMX 양극재(니켈 함량 90% 이상)가 부분적으로 내년 하반기 출시된다"며 "여러 회사에 우리의 기술과 경쟁력을 제시하고 있다"고 말해 새로운 고객사 확보 가능성을 시사했다.
BMW·포드·테슬라 등 해외 완성차 업계가 배터리를 직접 만들겠다고 발표하는 것도 호재다. 이 회장은 "양극재 산업의 판을 더 키워주는 좋은 소식"이라며 "해외기업과 손잡는다면 포항에 조성하고 있는 양극재 생태계처럼 패키지로 진출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저가공세, 치킨게임 대신 극일 기회로
이 회장과 양극재의 인연은 2004년 당시 제일모직이 주도한 양극재 개발 정부과제에 참여하면서 시작됐다. 2006년 사업성 문제로 양극재 사업을 정리한 제일모직으로부터 그때까지 개발된 기술을 모두 사들였다. 연구개발 끝에 2008년 국내 최초로 하이니켈 NCA 양극재를 개발했지만 수요가 터져주지 않았다.
2009년 일본에서 전량 수입되던 전구체를 개발해 회사가 도약하는가 싶더니 2012년 문제가 생겼다. 500억원을 투자해 설비를 늘렸더니 일본기업의 저가 공세가 시작된 것이다. 납품하던 대기업도 단가를 낮춰달라고 했다. 치킨게임 국면에서 이 회장은 회사 매출의 60%를 차지하던 전구체 사업을 아예 접어버렸다.
이 회장은 직원들과 다시 양극재 고도화에 매달렸다. 해외로 눈을 돌렸고 리튬이온 배터리 종주국 일본이 눈에 들어왔다. 2년 만에 소니에서 거래를 하자는 연락이 왔고 국내 대기업에서도 손을 내밀었다.
이 회장은 "양극재 사업 12년 동안 손해만 보다가 2015년 8월 처음으로 월차 이익을 냈을 정도면 직원들과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겠느냐"며 "대기업에서 회사 팔라는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한 것은 이 산업에 확실한 비전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룹 모태인 환경사업, 양극재처럼 키울 것
에코프로는 최근 환경사업부를 떼내 에코프로인사이트로 인적분할한다고 발표했다. 이 회장 "환경사업부가 배터리 소재 지주사에 묻혀 있으면 시장을 선도할 수 없다"며 "양극재 사업부가 분리돼 경쟁력을 높인 것처럼 환경사업부도 그렇게 키우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매출 900억원을 기록한 환경사업부는 반도체·디스플레이 공장에서 나오는 유해가스 제거필터, 온실가스 저감 설비, 미세먼지 원인물질 제거 설비 등 3가지 분야 사업군이 있다. 2009년 세계 두번째 과불화화합물(PFC) 제거 장치 개발, 2018년 마이크로웨이브를 이용한 휘발성유기화합물(VOC) 저감장치를 세계 최초로 개발하는 등의 성과를 냈다.
이 회장은 "앞으로 투자 규모 커지고 사업 아이템 범위가 넓어질 것"이라며 "산업현장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해결하고 2~3년 안에 탄소배출권 시장을 선도하는 회사가 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인류를 이롭게하는 기술과 아이템이 있다면 허황되게 들릴지라도 사업화해야 기업인"이라며 "대기업 팀단위에서 다룰 수 없는 매출 500억~ 5000억원 아이템을 지속적으로 발굴하면 에코프로는 세계 일류 기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