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승리 소식에 한국 건설·부동산업계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국의 새로운 정책이 미칠 영향을 계산하는 것인데 위기 요인과 기회 요인이 모두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8일 건설업계와 증권업계, 연구기관 등에 따르면 바이든 당선인이 ‘친(親)환경’을 전면에 내세운 만큼, 국내 건설업계에는 위기와 기회가 함께 찾아올 것이란 전망이 많다. 바이든 당선인은 ‘오는 2050년까지 탄소 배출량 제로(zero·0)’를 목표로 4년간 청정에너지(Clean energy) 분야에 2조 달러를 투입하기로 했다.
일각에서는 이같은 공약에 따라 한국 건설업계의 전통적 효자 석유화학 플랜트 사업이 위기에 처할 것이란 우려가 나왔다. 한국의 해외 수주 중 상당 부분이 탄소배출과 따로 떼어 생각하기 어려운 석유화학 플랜트와 석탄·복합 화력 발전소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국제유가 하락에 수주가뭄을 겪던 차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타격이 예상보다 크지 않을 수 있다고 기대하는 시각도 있다. 라진성 KTB투자증권 연구위원은 ‘미 대선과 한국 섹터 전략’ 보고서에서 "미국 민주당 정부의 확장 재정정책으로 달러가 약세를 보이고 유가가 상승할 수 있다"면서 "이 경우 플랜트 발주가 재개될 수 있다"고 했다.
김종국 해외건설협회 대외협력실장은 "청정에너지는 기후 변화와 함께 이미 업계에서 오래된 이슈"라며 "한국 건설사들은 이미 사업 포트폴리오를 전환하고 있었다"고 했다. 친환경 에너지로 인한 후폭풍은 있겠지만, 그에 대한 대비도 이뤄지고 있었다는 뜻이다.
일부 업종·건설사에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라 연구위원은 "풍력·연료전지·수(水)처리 등 친환경 사업을 영위하던 중소 건설사들에게는 수혜가 될 수 있으며, 창호·단열재 등 그린 리모델링 사업에 진출한 건자재 업체에도 유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재생 에너지의 경우 비중이 커지고는 있어도 아직 절대적 규모가 석유에 비해 작아 안정적인 수주 예측이 어렵다는 전망도 있다.
1조3000억 달러에 이르는 대규모 인프라 투자도 예고됐지만, 한국 건설업계가 이를 수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해외건설협회 해외건설종합정보서비스에 따르면, 지난 2017년 1월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한 이후 지난 10월 현재까지 우리나라 건설사들이 미국에서 올린 수주 실적은 7억4040만 달러다. 같은 기간 국내 업계의 전체 해외건설 수주금액(1020억538만3000달러)의 0.7%에 불과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규모 인프라 공약을 내세웠지만, 자국 우선주의 기조에 따라 미국 건설사들이 사업 대부분을 수주했기 때문이다.
바이든 행정부 역시 ‘Make it in America’(미국 제조업 우선 정책) ‘Buy American’(미국산 제품 우선 조달정책)을 내세운 만큼 트럼프 행정부 시기와 마찬가지로 미국 인프라 시장 진출이 쉽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김종국 실장은 "트럼프 행정부 당시 자국 우선주의 기조와 함께 투자 유인(incentive) 제공으로 건설사들이 투자를 통한 우회 진출을 시도했는데,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까 예상한다"고 했다.
바이든 당선인의 법인세 인상 공약이나 연방 최저임금·노조조직률 인상 공약 역시 미국 시장 진출 비중이 낮은 한국 건설업계 입장에서는 ‘강 건너 불구경’이 될 가능성이 크다.
바이든 당선의 영향은 경제정책보다 오히려 외교전략에 좌우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도 있다. 한국 건설업계의 주 무대인 중동 지역은 미국 외교전략에 따라 정세가 급변하기 때문이다. 바이든 당선인의 구상에 따라 해외사업 수주 전략도 크게 요동칠 것으로 보인다.
대림산업은 지난 2017년 이란 정유회사에서 수주한 2조2000억원짜리 공사 계약을 2018년 6월 해지한 바 있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 미국과 이란 간 해빙 분위기가 돌며 이란으로 진출했다가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봉쇄전략으로 급선회하면서 이란을 제재한 여파로 금융 조달에 실패한 게 문제였다.
손태홍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 정부의 중동 전략 변화가 결정적인 외부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바이든 당선인은 트럼프 대통령에 비해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를 감소시킬 가능성이 높아 중동 시장이 우호적으로 변할 가능성이 열려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