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이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의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에 대해 "타당성 판단에는 한계가 있다"면서도 "월성 1호기의 경제성을 불합리하게 낮게 평가했다"고 결론 내렸다. 조기 폐쇄 결정은 원전의 안전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것으로, 감사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인데, 경제성만 따져보자면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이 사실상 하자가 있다고 본 셈이다.

이번 감사 결과에 따라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에 대한 비판이 다시 고조되고 있지만, 세계적인 수준으로 성장했던 우리 원자력 산업 생태계는 이미 황폐해진 상태다. 원전 종주국이던 영국이 탈원전 정책 이후 원전 건설 능력을 잃고 아직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의 원전 생태계도 회복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경북 경주에 있는 월성 원자력 본부. 오른쪽부터 월성 1~4호기. 월성 1호기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의 여파로 조기 폐쇄 결정이 내려졌다.

탈원전 기조를 내건 문재인 정부가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원전은 세계적으로 기술력과 안전성을 인정받는 원전 강국이었다. 한국의 3세대 원전인 APR 1400은 프랑스·일본도 받지 못한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설계 인증을 받았다. 미국 이외 국가에서 NRC 인증을 받은 것은 한국이 유일하다. 덕분에 40년이라는 짧은 역사를 지닌 한국 원전은 앞서 100년 넘게 기술을 개발해온 미국, 프랑스, 러시아와 어깨를 나란히 해 경쟁했다. 그 성과는 UAE 바라카 원전 수주로 이어졌다.

하지만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분위기가 급변했다. 신한울 3·4호기 등 신규 원전 6기의 건설이 백지화됐고, 7000억원을 들여 개·보수를 마친 뒤 계속 운영될 예정이었던 월성 원전 1호기는 조기 폐쇄됐다. 태양광·풍력을 중심으로 한 신재생에너지가 원전을 대체할 것이라는 에너지 전환 정책이 추진되면서 국내 원전 생태계는 급격히 무너졌다.

아직은 원전 건설이 이뤄지고 있지만, 국내에서 건설 중인 마지막 원전인 신고리 5·6호기의 주요 설비 납품이 끝나는 내년 3월 이후에는 국내 원전 산업이 사실상 중단된다. 이후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이나 노후 원전의 수명 연장도 없기 때문이다. 산업부는 "에너지전환 이후에도 원전은 향후 60여년 동안 운영되기 때문에 관련 유지·보수 시장은 유지될 것"이라고 했다. 가동 중인 원전의 유지·보수 부품 생산을 제외하면 국내 시장에서 원전 부품 수요는 없다는 의미다.

가장 큰 피해 기업은 원전 핵심 설비인 원자로를 만들던 두산중공업이다. 지난 4월 국민의힘 윤한홍 의원이 낸 자료에 따르면 탈원전·탈석탄으로 인한 두산중공업의 미래 수익 상실 규모는 10조원에 이른다. 신한울 3·4호기를 포함한 신규 원전 6기 건설이 백지화되면서 매출 7조~8조원이 증발했고, 이미 7000억원을 투입해 핵심 기기 사전 제작을 마친 신한울 3·4호기 원전의 공사가 중단되면서 대규모 매몰 비용이 발생했다. 일감이 없어지면서 가동률이 급격하게 떨어졌고, 두산중공업은 결국 지난 3월 일부 휴업 결정을 내렸다. 수백명의 직원들이 길바닥으로 나앉았다.

두산중공업에 제품을 납품하는 수백여개의 중소협력사들은 이미 고사 상태다. 윤한홍 의원실에 따르면 원전 핵심 기기 부품을 만드는 500여 핵심 협력업체가 두산중공업에서 수주한 금액은 2016년 3700억원에서 지난해 2600억원으로 30% 줄었다.

정부는 원전 해체 시장에 진출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해외 원전 수주를 통해 국내 원전 업계의 명맥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원전 해체 사업의 경쟁력도 결국 원전 건설과 운영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라 해체 사업만 육성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국내에서는 사업을 접는 기업에 일감을 주겠느냐는 자조적인 목소리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