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과 함께 5G는 이제 막 현실이 됐습니다. 연말까지 미국 도시 60개 이상에 초고주파(28GHz) 대역 5G 서비스를 제공하겠습니다." 지난 13일 (현지시각) 애플의 첫 5G 스마트폰 아이폰 12가 공개된 행사에서 초고주파 대역 5G 지원 도시를 기존 39개에서 55개로 확대한다고 발표한 버라이즌의 한스 베스트베리 최고경영자(CEO)가 한 말이다.
매출 기준 세계 1위 이동통신 사업자 수장이 세계 최초 5G 상용화 타이틀은 한국에 놓쳤지만, ‘진짜 5G’에서는 선두에 서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진짜 5G는 4G보다 20배 빠른 서비스로 초고주파 대역에서만 가능하다.
베스트베리의 발언 모습을 보고 한국에서의 여러 장면이 떠올랐다.
"종전 4G보다 속도는 20배, 연결할 수 있는 기기는 10배로 늘어나고 지연 속도는 10분의 1로 줄어든 넓고, 체증 없는 ‘통신 고속도로’가 바로 5G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4월 8일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세계 최초 5G 상용화 축하 행사에 참석해 한 말이다. 당시 버라이즌이 5G 상용화 일정을 4월 4일로 앞당기자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국내 통신사들과 협의해 당초 일정 대비 이틀 앞당긴 3일 밤 5G 서비스를 개시했다.
5G 상용화가 미국과 불과 하루 차이였던 것이다. 교과서에는 문재인 정부 최대 업적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얻은 세계 최초 5G 상용화 국가라는 타이틀은 1년 반이 지난 현재 무색해 보인다. 문 대통령이 공언한 ‘진짜 5G’ 서비스의 전국 도입에 주무부처 장관이 부정적인 입장을 공개표명했기 때문이다. 지난 7일 최기영 과기정통부 장관은 국정감사에서 "일부 도심지역을 제외하고 28GHz 대역은 전국민 서비스를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고 있다"고 밝혀 논란이 일었다.
최 장관은 "28GHz 5G 서비스 전국망 서비스는 해당 주파수를 매입한 통신사가 결정할 문제로 정부가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정부가 지난해 4월 5G용으로 할당한 주파수는 저주파 대역인 3.5GHz와 초고주파 대역인 28GHz 두가지다. 국내 통신사가 현재 서비스 중인 것은 3.5GHz 뿐이다.
3.5GHz와 28GHz는 주파수별 특징에서 차이가 있다. 3.5GHz는 전파도달 범위가 비교적 긴 대신 최대 속도는 그만큼 빠르지 않다. 통신사 입장에서는 더 적은 기지국으로도 전국망을 구축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반면 28GHz는 전파도달 범위가 짧고 잘 끊기는게 단점이지만 최대 속도는 LTE(롱텀에볼루션) 4G보다 20배 빠르다. 이에 더 많은 기지국 설치가 필요하다. 투자비가 더 많이 드는 것이다.
통신 3사는 공공재인 주파수를 할당받는 대신 2019년부터 3년 안에 사업자별로 각 1만5000대 이상의 28GHz 대역망을 구축하기로 했지만, 대역망 구축 의무사항이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지난 8월말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을 통해 받은 준공검사 기준으로 3.5GHz는 10만4691국인 것에 반해 28GHz는 단 1대도 설치되지 않았다.
결국 국내에서 5G폰을 사용하는 고객들은 제대로 된 5G 성능을 이용하지 못하면서 더 비싼 요금을 지불하고 있는 셈이다. LTE보다 불과 2~3배 빠른 속도에 만족하면서 말이다.
이에 5G 품질에 실망한 고객들은 5G 서비스를 해지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5G서비스를 시작한 2019년 상반기부터 올해 현재까지 5G서비스를 사용하다 LTE로 돌아간 가입자만 56만명이 넘어섰다.
이런 상황은 28GHz 대역을 상용화 한 미국의 상황과 차이가 더 난다. 버라이즌은 현재 미국 일부 도시에 한정된 자사 5G 커버리지를 ‘아이폰12’ 출시에 맞춰 전역으로 확대, '버라이즌 5G 울트라 와이드밴드’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앞으로 진정한 5G 세계 첫 상용화 국가는 한국이 아닌 미국이 될 지 모르는 일이다. 5G에 올인하겠다고 선언한 애플이 세계 첫 5G 상용화 국가이자 보급률 1위인 한국을 아이폰12 1차 출시국에 넣을 것이라는 전망을 뒤집고 제외할 수 있었던 것도 ‘무늬만 5G 서비스’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 정부는 28GHz 대역이 대국민 서비스가 아닌 일부 기업용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하지만, 이는 국민 개개인의 역량을 무시하는 처사다. 마치 과거 조선시대 한자(문자)는 사대부들만 알면 충분하다는 논리가 떠오른다. 국민 개개인이 20배 빠른 5G 인프라를 활용해 어떤 맞춤형 개인화 서비스를 탄생시켜 국가적 혁신으로 연결될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라도 정부와 통신 3사 간 ‘빅딜’이 필요해 보인다. 내년에 사용 기한이 끝나는 2G·3G·LTE 주파수 재할당 비용에서 정부가 한 발 양보해 통신사 요구에 맞춰주는 것도 한 방법이다. 통신사들은 1조6000억원을 적정 비용이라고 주장하지만 정부는 최대 5조5000억원을 생각하고 있다.
정부가 진정으로 5G를 기반으로 한 4차 산업혁명 선도국가 비전을 실행하기 위해선 ‘빅딜'을 하는 결단이 필요하다. 주파수 재할당으로 절약된 비용으로 통신 3사가 28GHz 전국망 투자를 완료하겠다는 약속을 확실히 받아내는 게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