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빈집’을 재생하거나 활용하겠다며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민간이 개발하도록 유도하는 한편 포기할 것은 과감하게 포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4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전국 곳곳에서 도시재생 사업 등을 통해 빈집 활용 사업이 진행되지만 효과는 미미한 상태다.
부산시 영도구 봉산2동 마을이 대표적인 사례다.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전망을 가졌지만 이 마을 주택 400여채 중에 100여채는 빈집이다. 이곳에서는 지난 2018년부터 빈집(마을) 재생 시범사업이 진행됐다. 빈집과 땅을 매입해 게스트하우스를 만들기도 했고 주민과 관광객이 함께할 수 있는 칵테일 체험공간도 조성했다.
정부에서는 우수사례로 꼽지만, 사실상 큰 효과는 보질 못하고 있다. 지역 경제가 살아났거나 인구 유입이 늘어나는 등의 실질적 성과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주민들의 거주 환경이 일부 개선된 것이 그나마 소득이다.
이를 두고 부동산 및 건설업계에서는 도시재생사업과 관련한 정책이 현실과 겉돌고 있는 증거라고 이야기한다. 특히 공공이 주도하는 현재 도시재생사업의 실효성을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은 주택 공급이 부족하다고 난리이지만, 전국적으로보면 빈집은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통계청에 따르면 공공주택과 단독주택을 포함한 전국 빈 집은 1995년 35만채에서 2019년 기준 약 142만채로 늘어났다.
정부는 2017년 2월 빈집 및 소규모주택 정비에 관한 특례법(빈집특별법)을 제정했다. 빈집의 체계적 정비를 위한 제도적 근거를 마련하고, 현행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가로주택정비사업 등을 이 법으로 이관해 사업절차를 간소화했다.사업 활성화를 위한 건축규제 완화, 정비·기술 지원 규정도 담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실무적으로 이를 활용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한다. 우선 빈집 소유주를 찾아 소통하는 것에서부터 어려움을 겪는게 현실이다. 방치된 빈 집도 사유재산인 만큼 도시재생 뉴딜 사업지로 지정하는 것만으로 무작정 철거를 할 수는 없다.
도시재생사업을 진행하는 한 관계자는 "오래 방치한 재산인만큼 소유주가 외지에 나가있어 행방을 수소문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면서 "사업을 해서 큰 수익이 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통상 몇 차례 소유주를 찾다가 포기하게 된다"고 했다.
연락이 되더라도 감정평가 금액이 워낙 낮아 토지를 팔도록 하는 것도 쉽지 않다. 빈집이 몰려있는 곳은 교통이나 편의시설이 마련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실거래가 이뤄지지 않아 감정평가액이 수년째 제자리인 경우가 많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소유주들은 감정평가액에 파느니 그냥 두겠다는 경우가 많다.
이런 문제들로 도시재생사업 진행 정도를 가늠할 수 있는 지방 빈집의 활용 동의율은 낮은 편이다. 최인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9년에 조사된 농촌 빈집은 전년보다 57.3% 늘어난 총 6만1317채다. 이 중 철거나 활용에 동의한 집주인 비율은 19.4%(1만1920채)에 그쳤다. 세부적으로 폐가 수준인 철거형 빈집 4만2111채 중 9980채만 철거를 동의했고, 활용 가능형 빈집 1만9206채의 경우 1940채만 동의했다.
거래를 활성화하겠다고 내놓은 대책도 헛돌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한국국토정보공사(LX)가 내놓은 빈집 거래 플랫폼 '공가랑'이다. LX는 12억여원을 투입해 공가랑을 개발했지만, 이용률이 현저히 떨어진다. 13일 기준 공가랑에 등록된 빈집은 162채에 그친다.
국토교통부는 ‘지자체장 확인 후 1년 이상 거주 및 사용이 없는 주택’을 빈 집으로 분류하는데, 그 규모는 전국적으로 약 10만9000채 수준이다. 이 점을 감안하면, 정부가 관리하려고 시도하는 전국 빈집 중 0.14%만이 공가랑에 올라온 셈이다. 부동산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미 이용자가 많은 부동산 매물 정보 플랫폼이 시중에 많은데 왜 굳이 세금을 투입해 빈집 플랫폼을 별도로 개발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빈집 활용 대책을 또 내놓은 상태다. 정부는 그동안 규제에 막혀 불법으로 여겨졌던 농어촌 빈집을 활용한 숙박업, 이른바 ‘한국형 에어비엔비’ 운영도 한시적으로 풀어주기로 했다. 지난달 21일 열린 혁신성장전략회의에서 규제샌드박스의 일환으로 농어촌 빈집 숙박 상생합의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이 대책 역시 별다른 성과 없이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한다. 1년 이상 아무도 거주하지 않거나 사용하지 않은 연면적 230㎡ 미만 단독주택만 가능하고, 광역자치단체별 1곳씩 5개 기초자치단체에서 총 50채 이내로만 사업을 진행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영업일수는 연간 300일 이내로 했다.
한 공유숙박업계 관계자는 "민간기업이 빈집을 활용한 숙박사업을 펼칠 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큰 세금을 들이지 않고 빈집과 주위 환경의 도시재생을 할 수 있을텐데, 숙박업이라는 이유로 규제를 하는 상황"이라면서 "규제 샌드박스로도 풀어준 것도 아주 제한적이라 안타깝다"고 했다.
학계에서는 빈집을 물리적으로 개조해 지역을 살리려는 것은 ‘환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냉정하게 볼 때 ‘지역도시의 통합과 축소’가 더 필요한 대안이라는 것. 김경민 서울대 환경대학원 부원장은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정부 주도로 시티 다이어트(city diet)라고 부르는 빈집 줄이기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물리적으로 빈집을 개선해 해결하려는 것은 환상"이라고 했다.
그는 "빈집이 있는 곳에 새로 다른 건축물을 짓거나 개조하려는 것은 세금 낭비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철거를 유도해 정리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면서 "정부 차원에서 공적 자금을 투입해 농어촌 지역 빈집 문제를 해결할 게 아니라 민간에 인센티브를 주거나 규제를 완화해 투자를 일으켜 지역을 살리는 방안을 쓰는 게 더 효과적이다"고 강조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도 "농어촌 지역의 인구 축소와 빈집 증가는 장기적으로 피할 수 없는 추세라는 점에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면서 "빈집에 관한 다양한 정책들의 경제적 효과와 효율성을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 시장 관계자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경제적 효과’와 ‘실효성’을 생각하면 결국 공공이 주도하는 도시재생은 예산 낭비일 뿐이라는 의견이 많다.
한 도시계획 분야 전문가는 "입지가 좋지 못해 경쟁력이 떨어져서 빈집이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민간이 개발해 지역을 살려보도록 유도하는 것이 더 효과가 클 수 있다"면서 "공공이 세금으로 조달한 제한된 예산을 넣어 환경미화를 나서는 수준으로 재생사업을 하는 것은 세금낭비일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