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결은 원자구조 유지하고 전기 특성 바꾸는 '변형공학'
MIT "시뮬레이션 결과, 변형 다이아 전기 흐를 수 있어"
"고성능 태양전지·광학센서·LED용 반도체 활용 기대"
낮은 구동 비용·인공합성 기술 발전에 "궁극의 반도체" 기대도

다이아몬드.

전기가 안 통하는 부도체인 다이아몬드를 도체나 반도체로 바꿀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향후 실현되면 단단하고 열을 잘 전달하며 광학적 특성이 뛰어난 다이아몬드를 실리콘·질화갈륨 대신 태양전지·광학센서·발광다이오드(LED)용 반도체로 사용해 성능을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연구진은 수백 나노미터(nm·10억분의 1미터) 크기의 ‘다이아몬드 바늘’에 변형을 가함으로써 전기전도도를 조절할 수 있음을 양자계산·기계학습 등을 이용한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확인했다고 지난 5일(현지시각)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했다. 논문 제목은 ‘다이아몬드의 금속화(Metallization of diamond)’다.

이날 과학전문매체 사이언스데일리(Science Daily)에 따르면 연구진이 사용한 방법은 ‘변형공학(strain engineering)’이라는 것이다. 변형공학은 물질이 갖고 있는 고유의 원자 구조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힘·열 등을 가해 모양을 늘이거나 구부리고, 물질 고유의 성질을 바꾸는 방법이다. 실리콘 등 현재 쓰이는 반도체 역시 지난 20년간 이를 통해 성능을 향상해왔다고 매체는 전했다.

하지만 기존 방법은 변형률이 1%에 불과해 다이아몬드까지 변형시키기는 어렵다. 변형률은 물질의 모양이나 크기가 원래 대비 변한 비율이다. 다이아몬드는 탄소 원자들이 견고한 격자구조를 이루고 있어 외부의 작은 힘이나 열로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너무 강한 변형도 안 된다. 원자 구조가 바뀌어, 같은 탄소 구조체인 흑연 등으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구현한 다이아몬드 바늘(왼쪽)과 10%의 변형률로 변형을 가해 늘이고 구부린 모습(오른쪽). 에너지 밴드갭의 크기는 색깔로 표현됐다. 다이아몬드는 밴드갭이 5.6eV(녹색)로 높아 부도체로 분류되지만, 변형할 경우 0(빨간색)까지 줄어들 수 있어 실리콘 같은 반도체나 금속 같은 도체로 바뀔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다이아몬드가 수백 나노미터 길이의 바늘(needle) 형태를 이루고 있는 ‘다이아몬드 바늘’에 주목했다. 2018년 홍콩 학계에서는 다이아몬드 바늘이 내부 원자들의 격자구조들을 유지하고 부러지지 않으면서도 상온에서 10%라는 비교적 높은 변형률로 늘어나고 휘어질 수 있으며 다시 원래 모양으로도 쉽게 되돌릴 수도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온 바 있다.

연구진은 이같은 ‘탄성 변형공학’을 통해 다이아몬드 바늘을 늘이고 구부릴 때 에너지 ‘밴드갭(bandgap)’이 크게 변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밴드갭은 전자가 물질 속에서 원자핵에 구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이동하기 위해 뛰어넘어야 하는 ‘에너지 장벽’의 높이로, 물질마다 그 값이 정해져있다. 밴드갭이 큰 물질은 내부의 전자가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해 전기가 잘 통하지 않는 부도체가 된다. 밴드갭이 작은 물질은 전자가 쉽게 장벽을 뛰어넘고 움직일 수 있어 도체가 된다. 부도체와 도체 중간 수준의 밴드갭을 가진 물질은 외부 조건에 따라 전기전도도가 변하는 반도체가 된다.

부도체인 다이아몬드의 밴드갭은 5.6전자볼트(eV)로, 실리콘(1.1eV)의 5배 수준이다. 연구진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다이아몬드 바늘을 변형하면 일부분의 밴드갭이 실리콘 수준은 물론, 이론적으로 0eV까지도 낮아질 수 있음을 확인했다. 변형을 통해 반도체나 도체로 전기적 특성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아직 연구 초기단계지만 다이아몬드를 반도체로 활용할 경우 기존보다 더 많은 빛에너지를 흡수하고 대면적·초박막화가 가능한 태양전지, 자외선부터 적외선까지 다양한 주파수의 빛을 감지할 수 있는 고성능 광학센서를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연구진은 내다보고 있다. 고효율 LED, 소형 전력장치, 양자 센서 등으로도 활용될 수 있다.

다이아몬드 반도체 개발에 대한 연구는 이전부터 여러 방식으로 시도돼왔다. 전문가들은 전자기기 구동 비용을 줄여주는 고성능화와 인공 다이아몬드 합성 기술 발전 등에 힘입어 경제성을 갖출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2016년 나노과학 전문매체 ‘나노월크(Nanowerk)’에 따르면 다이아몬드는 실리콘보다 14배 더 열을 잘 전달한다. 효율적인 열 방출이 가능해 전자기기·장치의 냉각 시스템에 드는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의미다. 전력 전달 시 발생하는 손실도 크게 줄일 수 있다. ‘다이아몬드 센서’를 개발 중인 무츠코 하타노 도쿄공업대학 교수는 "다이아몬드는 비싼 보석으로 인식되지만 탄소만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메탄과 수소 등을 이용해 인공적으로 만들 수 있다"며 "여러 특징을 종합하면 궁극의 반도체"라고 말했다.

지난해 국내에서도 인공 합성 기술에 진척이 있었다. 기초과학연구원(IBS) 연구진은 그래핀을 이용해 반도체 소자로 쓰일 얇은 다이아몬드를 만드는 데 성공, 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에 발표했다. 그래핀과 다이아몬드가 구조만 다를 뿐 같은 탄소로 이뤄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연구팀은 "다이아몬드 박막의 두께는 0.5나노미터에 불과한 만큼 비용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