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산업 경쟁력·군사력 좌우하는 반도체 외주화에 위기감
화웨이·SMIC 등 中 싹 밟고 자국 기업엔 보조금 지급 검토
美 의회, 반도체 공장 건설에 10년 간 17.6조 보조금 법안 추진
특정산업에 보조금 지급은 美 정부가 中 비난했던 핵심 내용
미국이 자국 반도체 생산이 공동화 될 수 있다는 위기감에 행동반경을 대폭 넓히고 있다. 화웨이, SMIC와 같은 중국 기업의 싹을 밟는 한편, 행정부와 의회는 자국 반도체 기업에 150억달러(17조6000억원)의 보조금을 10년 간 지급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27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미 상무부는 기업들에게 "SMIC로의 수출이 군사적 목적으로 전환될 위험이 있다"며 "수출하기 전에 허가를 받으라"는 서한을 25일 보냈다.
미 행정부는 '군사적 위험'을 이유로 들었지만, 중국 정부가 반도체 산업의 견인차 역할을 맡긴 SMIC를 타깃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반도체 생산을 해외에 뺏기고 있는 데 따른 위기감이 주 원인 일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미 상무부가 SMIC에 대한 수출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SMIC과 중국 반도체 산업 전반의 타격은 막대할 전망이다. 미국 투자은행 제프리스&컴퍼니에 따르면 SMIC의 반도체 제조 설비 50%가 미국에서 온다. 이 회사는 최대 고객사가 화웨이여서 이미 미국의 수출 규제로 타격을 입은 상태다.
시진핑 정부가 내세우는 '중국 제조 2025 계획'에도 먹구름이 낀다. '중국 제조 2025'는 2025년까지 반도체를 비롯한 10대 첨단 제조업 분야의 핵심 기술, 부품, 소재 자급도를 2020년까지 40%, 2025년까지 70%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이 계획의 중심 축 역할을 하는 게 SMIC다.
미 행정부가 화웨이와 SMIC 등 국제 시장에서 존재감을 높이는 중국 기업의 싹을 밟는 동안, 의회에선 자국 기업에 대규모 보조금을 주는 법안이 초당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미 상원과 하원은 각각 독자적인 반도체 지원 법안을 심의하다, 최근 단일화 작업에 들어갔다. 현재까지 확정된 안(案)에 따르면 반도체 공장과 연구시설 건립을 지원하는 150억달러(17조6000억원) 규모의 기금을 조성해 10년 간 운용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여기에 미 행정부가 검토중인 추가 연구개발 지원금 100억달러(11조7000억원)를 더하면 연방정부 지원금이 총 250억달러 규모에 달한다. 주정부와 지방정부도 최근 반도체 공장을 유치하기 위해 세금 혜택 등을 확대하는 추세여서 보조금 이외 지원까지 포함하면 규모는 더 커진다.
시장경제를 대표하는 미국은 그동안 특정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행위에 신중했다. 연구개발에 공적 예산을 배정한 적은 있지만 공장 건설에 보조금을 직접 투입하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세계무역기구(WTO) 규범에 저촉될 가능성도 있다. 미국이 중국을 비난해왔던 주요 내용도 '특정산업에 거액의 보조금을 준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조금 카드까지 들고 나온 건 군사력에도 영향을 주는 반도체 생산의 외주화가 가속화 돼 정작 미국이 공동화 되는 현상이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정보기술이노베이션재단에 따르면 세계 반도체 시장은 인텔 등 미국 업체 점유율이 47%로 2위 한국(19%), 3위 일본(10%)을 크게 따돌리고 있다.
그러나 생산능력으로 따지면 미국의 점유율은 12%에 불과해, 중국(15%)에 뒤지고 있다고 미국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분석했다. 미국은 생산을 대만 등 해외에 맡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10년 뒤에는 중국의 점유율이 24%까지 확대돼 대만을 제치고 세계 1위에 오를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