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사외이사 자리에 공정거래위원회 전관들이 대거 포진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거래법 개정을 앞두고 대기업들이 전관예우를 염두에 뒀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2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반기보고서를 제출한 상장사 가운데 38곳이 공정위원장, 부위원장, 사무처장 출신 등 전직 관료를 사외이사나 감사로 선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상법 등 ‘공정경제 3법’ 개정안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사익 편취 규제 대상 확대 ▲지주사 자회사·손자회사 지분율 요건 강화 ▲가격·입찰 등 담합의 '전속 고발제' 폐지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지난 20대 국회에서 논의가 시작된만큼 기업들이 이를 대비해 공정위 전관들을 영입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공정경제 3법 통과 이후 발생할 수 있는 각종 고발에 대비하고 유사시 공정위 조사에 미리 대응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에 새로 포함되는 현대글로비스는 이동훈 전 공정위 사무처장을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이 전 처장은 DB, DB하이텍 사외이사도 겸하고 있다. 현대차도 공정위 전관인 이동규 전 사무처장을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백용호 전 공정위원장(LG전자), 안영호 전 공정위 상임위원(LG화학·신세계), 정중원 전 상임위원(롯데케미칼·진에어)도 이름을 올렸다.
이밖에도 공정위 출신들은 대기업 곳곳에서 사외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김동수 전 공정위원장(두산중공업), 노대래 전 위원장(헬릭스미스), 정호열 전 위원장(제이에스코퍼레이션)도 사외이사로 선임됐다. 김원준 전 공정위 사무처장 직무대행(한일현대시멘트)도 사외이사로 직을 맡았다. 삼천리도 올해 김병일 전 부위원장을 뽑았다.
1%의 모회사 지분만 갖고도 자회사 이사에 대해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하는 다중대표소송제가 통과되면 상당수 대기업은 큰 영향을 받게 된다. 전속고발권이 폐지될 경우 앞으로 가격·입찰 등 중대한 담합(경성담합) 관련해 누구나 기업을 검찰에 고발할 수 있게 된다.
향후 공정위 조사 등에 대비하기 위한 포석도 깔려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한진은 공정위가 지난 7월 87억원의 과징금을 물리기로 결정하기 수개월 전인 3월에 손인옥 전 공정위 부위원장을 신규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손 전 부위원장은 현대차증권 사외이사도 겸하고 있다.
임영철 전 하도급국장은 올해 초 공정위가 과징금 약 17억원을 물린 BGF리테일에서 활동 중이다. 조성욱 공정위원장도 한화그룹에서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사외이사를 지냈다. 조 위원장은 다만 올해 한화그룹 총수일가의 일감 몰아주기 의혹을 심의한 전원회의에 불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