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그룹이 아시아나항공(020560)매각이 중단되면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일부에선 해체 가능성까지 거론될 정도이다. 핵심 계열사인 금호산업이 아시아나항공 매각대금으로 받는 3200억원을 대출금 상환 등에 사용해야 하는 데 여의치 않게 됐기 때문이다. 특히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금호고속이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금호그룹 사옥.

당장 발등의 불을 끈다 해도 문제는 여전하다. HDC현대산업개발(294870)뿐만 아니라 제주항공(089590)등 아시아나항공에 관심을 가졌던 다른 항공사들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다른 회사 인수를 포기하고 긴축 경영에 들어간 데다, 기내식 납품 계열 문제 등 박삼구 회장 리스크가 커 PEF(사모펀드)의 인수도 어려워진 상황이다. 최소한 올해 또는 내년에 매각이 어려워지면, 금호그룹의 자금 경색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11일 재계에 따르면 금호그룹은 아시아나항공 매각 중단을 맞아 독자적인 구조조정 준비에 착수했다. 광주 광천동의 고속버스 터미널을 겸한 복합 쇼핑몰인 유스퀘어를 비롯해 금호고속 등 그룹이 보유한 목포, 여수, 순천, 해남 등 터미널 부지와 건물을 매각하는 데 1순위로 거론된다.

지난해 금호그룹은 주력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을 매각하면서, 금호산업이 보유한 지분 30.77%에 대한 대가로 3230억원을 받기로 했다. 나머지 2조원 정도의 매입 대금은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아시아나항공에 빌려준 돈을 되갚고, 자본을 확충하는 데 사용키로 했다.

아시아나항공 매각 무산으로 그룹 해체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금호고속의 재무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금호그룹은 ‘금호고속→금호산업→아시아나항공’의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 금호산업과 금호고속은 각각 자회사인 아시아나항공과 금호고속 지분을 담보로 대규모 차입해왔다. 금호고속이 금호산업 지분을 담보로 1300억원을 빌린 게 대표적이다. 금호고속의 재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금호산업이 아시아나항공 지분 매각 대금을 확보했어야만 구조다.

금호고속은 코로나19로 창사 이래 최대 위기 상황이다. 한국노총에 따르면 코로나19가 발생한 2월부터 8월까지 전국 고속버스 수익금은 전년 동기 대비 49% 줄었다. 금호고속이 운영하는 유스퀘어 이용객수도 급감했다. 금호고속은 장거리 노선은 50%, 단거리 노선은 30% 각각 감축하고 수백명의 직원 대상으로 휴직을 실시하고 있다.

금호고속 소속 직원이 광주 광천동 고속버스터미널 뉴스퀘어에 주차된 금호고속 버스 앞을 지나고 있다.

2019년 말 현재 금호고속은 1조3000억원의 부채를 갖고 있다. 자본금은 3870억원이다. 지난해 4330억원의 매출을 거둬, 27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그런데 이자비용이 280억원에 달한다. 지난해에는 아시아나항공 매각에 따라 아시아나항공과 연관된 신주인수권부사채를 갚아야해 560억원의 채무상환손실까지 감당해야했다. 결국 792억원의 순손실을 입었다.

결국 금호산업이 아시아나항공 매각으로 손에 쥐게될 3230억원을 금호고속 등의 재무구조 개선에 써야했던 상황인 셈이다. 금호산업의 자금 사정도 좋은 편이 아니다. 금호산업의 부채는 6월 말 현재 9730억원에 달한다. 당기 순이익은 220억원에 불과하다. 그나마 2019년 상반기 110억원 순손실을 입었던 것에서 흑자 전환에는 성공한 모양새다.

아시아나항공에 정부 자금이 들어가는 과정에서 감자(減資)가 이뤄지거나 또는 지분 가치가 희석될 경우 금호산업이 대출을 하면서 담보로 내세우곤 했던 아시아나항공 지분 가치도 그만큼 쪼그라든다. 결국 금호산업도 자금압박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광주 유스퀘어.

당장 파산을 면하더라도 당분간 매각 작업이 이뤄지기 어려운 상황이라, 자금 경색 국면이 계속될 전망이다.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놓고 HDC현대산업개발과 경합하던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 인수를 포기하는 등 항공업계가 긴축 경영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또 PEF가 나서기도 어렵다. 제주항공의 입찰가 기준으로도 1조7000억원이 필요한데, 리스크가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박삼구 금호그룹 회장.

특히 박삼구 회장의 금호그룹 재건에 아시아나항공의 영업권이나 자산이 쓰이면서 이면계약 등이 맺어져있을 가능성이 높다. 박삼구 회장이 그룹 지배권을 유지하기 위해 금호고속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인수한 업체에게 아시아나항공의 기내식 사업 독점권을 넘긴 게 대표적인 사례다. 기내식 사건의 경우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달 부당지원행위에 해당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금호그룹이 내놓을 수 있는 자산 중 핵심은 광주 고속버스 터미널인 유스퀘어다. 유스퀘어는 면적이 10만여㎡에 이르는 데다 신세계백화점, CGV 등이 임차인으로 있는 복합쇼핑몰이기도하다. 호반건설이 계열사 KBC(광주방송)이 보유한 광천동 땅에 지상 48층짜리 주상복합 아파트 단지 호반써밋플레이스를 지어 큰 수익을 거두는 등 해당 부지는 광주시 도심에서 ‘노른자위’로 꼽히고 있다. 하지만 터미널 부지 개발이나 매각, 용도변경 등도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상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하므로 당장 실현 여부가 불투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