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우등생’ 두산그룹의 자구안 이행에 속도가 붙고 있다. 두산솔루스, 두산건설 등 주요 계열사들의 매각이 임박해지면서 3조원 규모의 자구안이 연내 마무리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4일 재계에 따르면, 국책은행으로부터 3조6000억원을 지원받은 두산그룹은 지난달부터 차입금 상환에 나서고 있다. 채권단에서 긴급운영자금을 지원받기 시작한 지난 3월 말 이후 4개월여 만이다.
◇ 일단 순탄하게 흘러가는 두산그룹 자산 매각
두산중공업은 지난달 초 골프장 클럽모우CC 매각 거래를 완료하고 채권단 차입금을 처음으로 상환했다. 매각 대금 1850억원 중 회원권 입회보증금 반환 비용 등을 제외한 1200억원을 갚은 것으로 알려졌다. 두산그룹은 같은달 20일 VC 네오플럭스를 신한금융지주에 매각해 730억원을 마련했다.
두산건설과 두산솔루스, 두산타워 매각도 가시화되고 있다. 두산은 마스턴투자운용과 그룹 사옥인 두산타워 매각을 위한 막바지 협상을 벌이고 있고, 전자·바이오소재 사업체 두산솔루스는 스카이레이크 인베스트먼트와 협상 중이다. 두산건설 역시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하면서 이르면 올 하반기에 거래가 완료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두산중공업 유상증자도 연내 성사될 것이란 기대감이 나온다. 두산중공업이 해상풍력 사업을 미래 먹거리로 제시하면서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는 덕분이다. 두산중공업 주가는 지난 3월 2395원까지 내렸으나, 3일 현재는 1만6300원까지 올라섰다. 이태훈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IPO 시장의 열기와 주가 흐름 등을 볼 때 목표금액인 1조원을 채우기에 무리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 두산모트롤 BG·인프라코어 매각은 곳곳 암초
다섯 곳의 매각이 순항하고 있지만, 두산모트롤 BG와 두산인프라코어의 매각은 아직 안갯속이다. 방위산업용 유압기기를 생산하는 두산모트롤 BG의 매각은 해외 매각 반대 이슈로 지연되고 있다.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에서 중국 건설장비 제조사인 ‘서공그룹’이 빠졌지만, 공동 우선협상대상자로 미국계 사모펀드인 ‘모건스탠리 PE’가 선정되면서 노조의 반발은 이어지고 있다. 두산은 조만간 국내 PE와 미국PE 중 한 곳을 최종 우선협상대상자로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두산모트롤 노조 관계자는 "해외 사모펀드로 매각될 경우 방산사업부와 민수사업부가 분할돼야 하는데, 이는 심각한 고용불안을 초래하고 임직원들의 생존권을 위협할 것"이라며 "해외자본인 모건스탠리로의 매각을 반대한다"고 했다.
두산그룹의 캐시카우인 두산인프라코어 매각도 아직 갈피를 잡기 힘들다. 앞서 두산인프라코어 인수후보로 한화와 현대중공업그룹이 거론됐지만, 이들은 "인수를 검토한 바 없다"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두산인프라코어의 가격과 진행 중인 소송 문제도 쟁점이 될 전망이다. 인프라코어 자회사인 두산인프라코어차이나(DICC)는 재무적 투자자(FI)와 각각 100억원, 7051억원 규모의 소송을 진행 중이다. 두산인프라코어가 최종 패소하면 최대 1조원에 달하는 돈을 지급해야 한다. 매각대상에서 두산인프라코어의 알짜 자회사인 두산밥캣이 빠져 두산과 원매자의 가격 눈높이가 다를 수도 있다.
정동익 KB증권 연구원은 "탄탄한 영업이익을 올려온 두산밥캣을 분리할 경우 두산인프라코어는 매물로서 매력이 떨어진다"고 분석했다. 최광식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인프라코어는 DICC소송, 경기 불확실성으로 매각이 단기간 내 성사되기 어렵다"고 했다.
◇ 중추기업 내놓는 두산… "성장동력 잃어 위기 올 수도"
일각에서는 두산그룹이 이번 자구안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을 경우 역설적으로 성장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과거 한진그룹이나 현대그룹 등은 산은 지시 아래 적극적으로 계열사 매각 등을 추진했다가 경쟁력을 잃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학과 교수는 "두산그룹은 ‘다 잃을 것이냐’, ‘조금이라도 지킬 것이냐’의 갈래에 서 있어 선택의 여지가 없다"면서도 "주요계열사의 매각에 성공할 경우, 재벌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중견기업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두산그룹이 계열사들을 매각해서 자금을 마련할 경우 두산중공업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빨리 모색해야 한다"며 "주어진 기한에 이를 해내지 못하면 비용만 소모하고 또다시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