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 문화전문기자

MBC 주말 예능 ‘놀면 뭐하니’를 즐겨 본다. 유재석은 ‘위대한 코치’ 김태호PD의 추임새를 거절하지 않는 것을 통해 자기 잠재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린다. “즐길 수 있는 정도의 고통을 주고 싶다”는 김태호의 자극에 드러머, 요리사, 가수 등으로 N차 세포분열하며, 신나게 자기를 갈아 넣는 것이다. 머물지 않고 계속 움직이고 확장하는 포맷은 ‘놀면 뭐 하니’의 동력이다.

보통은 인정받고 성공하기 위해 한 우물 파며 ‘죽기 살기로’ 덤비는데, 유재석은 닭도 튀겼다(닭터유)가 트로트(유산슬)도 불렀다가 여러 개의 우물을 파며 ‘놀기 살기로' 쉬지 않고 움직인다. 이름하여 올인하듯 올인하지 않으며 여러 개의 무게 중심으로 미끄러지는 너, ‘부캐(부캐릭터)'의 탄생이다.

그런데 이런 식의 릴레이, ‘본업 속의 부업'인 부캐야 말로 이 시대에 솔깃한 존재 양식이 아닌가 한다. 일찍이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을 쓴 강상중 전 도쿄대 교수도 충고했다. ‘올인하지 말라, 스스로를 궁지에 몰지 말라, 여러 개의 스테이지에서 여러 개의 정체성을 갖고 살라’고.

무엇보다 ‘부캐'의 출발은 성과보다 즐거움을 우선으로 삼는 태도다. 이익보다 재미가 기준이라 끈질기게 계속할 수도 언제든 내려놓고 갈아탈 수도 있다. 놀이와 일의 중간 지대에 걸쳐진 이 양다리의 여유는, ‘경쟁과 올인'으로 지친 사람들에게 복안의 시야를 터준다. 힘이 들어가면 불을 켜고 앞만 보지만, 힘을 빼면 옆길도 샛길도 잘 보인다. 여러 개의 무게 중심을 가진 유산슬과 혼성 그룹 싹쓰리 멤버들(유두래곤, 이효리(린다G), 비(비룡))이 MBC 담장을 가볍게 넘어 여러 방송사에 동시에 출연하는 식이다.

김태호 PD는 연초에 자사의 미디어 탐사프로그램에 나와 "재미있는 콘텐츠라면 플랫폼보다 위에 있고, 세계관을 공유해가다 보면 마블처럼 시청자들이 움직여서 찾아보는 콘텐츠가 될 것"이라고 했다. 전통 미디어가 먼저 틀을 깨고 여러 플랫폼과 연합하고 확장할 수 있었던 것은, ‘싹쓰리' 라는 잘 만들어진 ‘리미티드 에디션' 덕이다.

유두래곤과 린다G와 비룡... 각자의 슈퍼히어로 수트를 입은 싹쓰리 ‘어벤져스'가 벤을 타고 방송사가 모인 상암동 미디어 시티를 도는 광경은 이제 플랫폼의 배타적 경계는 사라졌다는 것을 암시하는 퍼포먼스처럼 보인다.

때로는 ‘본캐’로, 때로는 ‘부캐’로 우리 모두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다양하게 연기하며 살고 있다. 혼성그룹 싹쓰리(SSAK3). 싹쓰리 멤버 '유두래곤' 방송인 유재석, '린다G' 가수 이효리, '비룡' 가수 비.

무엇보다 부캐는 그것을 연기하는 개인에게 자신의 욕망과 진정성을 점검하는 좋은 기회가 된다. 뮤직비디오 ‘깡'에서 시작된 대중의 조롱을 자기애로 반전시킨 비의 투지도 놀랍지만, 싹쓰리 멤버 중 ‘스스로를 궁지에 몰지 말라’던 강상중 전 교수의 말을 가장 이상적으로 구현한 사람은 이효리와 그의 부캐 ‘린다G’가 아닌가 싶다.

LA에서 온 사업가 출신, 욕망의 화신 ‘린다G’로 분한 이효리는 방송 내내 비룡(비)을 향해 ‘딴 주머니 찬 거 아냐?’ ‘꼴보기 싫어'를 연발하며, 스타를 향한 대중의 이중심리를 유머로 투사해낸다. 대중의 눈치를 보지 않으면서도, 대중에게 눈도장을 찍는 이효리만의 꼼수 없는 화법은, 재능을 넘어서 ‘사랑받을 용기, 미움받을 용기’가 바탕이 된 진정성의 힘으로 보인다.

‘싹쓰리'의 대표곡 ‘다시 여기 바닷가'를 작곡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이상순을 배려해, 이 기회에 더 많은 곡을 쓰라고 부추기는 유재석에게 "남편이 이번 곡으로 자기 운을 다 쓴 것 같다"거나, 크리스마스 시즌에 다시 뭉치자는 비룡에게 "임신 계획이 있다"는 폭탄선언은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는 세상의 상식을 단번에 뒤집는다. 그의 부캐 놀이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지, 진정으로 소중한 게 무엇인지를 터득한 분별력으로 더없이 자유롭다.

아무리 화려한 네온이 그들을 감싼다 해도 ‘LA 출신 사업가 린다의 물욕’은 제주도민 효리의 ‘자기다움'을 억압할 수 없고, 그때 우리는 ‘놀면 뭐 하니'를 만든 제작진의 진의와 톱스타의 ‘부캐’ 외도에 안도한다.

3개월간 제주에서 서울행 비행기를 타고, 여름 음원 차트 1위를 성취한 그 힘의 동력은 ‘타자의 인정’이 아니라 ‘자기 즐거움'이었구나. 우리 모두 여름 한 철 ‘싹쓰리'와 잘 놀았구나.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기 안에서 충돌하는 다양한 욕망을 정돈하고 나만의 질서를 찾는 일인데, 그렇게 부캐 ‘린다G’는 ‘본캐' 이효리 안에 쌓인 억압과 불안을 해소하면서, 더 넓게 자기 통합을 이뤄낸다.

개그우먼 김신영의 부캐인 트로트 가수 ‘둘째이모 김다비'. 김신영 프로그램에 대타로 출연하기도 한다.

바야흐로 멀티 페르소나가 각광받는 뉴노멀 시대다. 점점 더 고정된 가치도 고정된 플랫폼도 고정된 배역도 고정된 직업도 사라질 것이다. 여러 플랫폼을 유연하게 타고 흘러가려면 스스로 직업의 물체성을 ‘레이어드와 유닛’의 형태감으로 투명하고 가볍게 만들어야 한다. 어떤 주제와도 붙을 수 있고 아무하고도 다양하게 겹쳐지고 재조립될 수 있도록. ‘여러 스테이지에서 여러 개의 정체성을 갖고 살라’던 강상중 교수의 예지처럼, 자의 반 타의 반, 우리가 꿈꾸던 ‘부캐’의 나날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