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100% 자회사로 CVC 보유 허용…금산분리에 예외 생겨
자기자본 200% 이내 차입 가능…펀드 40% 이내 외부 자금 유치
기업 현장 반응은 '시큰둥'‥ "투자 가로막는 규제 여전히 많아"

정부가 대기업의 벤처·스타트업 투자와 혁신금융 활성화를 위해 일반 지주회사의 기업형벤처캐피털(CVC) 보유를 허용하기로 했다. 금융회사가 재벌의 사(私)금고로 전락하는 것을 막겠다고 유지해온 금산분리(산업 자본의 금융 소유 금지) 원칙의 빗장이 조금 열린 것이다. 현행 공정거래법에서는 대기업 지주회사가 금융회사인 벤처캐피탈을 소유하는 것이 금지됐지만, 정부는 법 개정을 통해 벤처 투자에 대해서는 예외조항을 두기로 했다.

다만, 금산분리 원칙이 일부 완화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총수일가 사익편취를 막기 위해 지주회사가 지분 100%를 소유한 자회사 형태로만 CVC를 설립할 수 있게 했다. 총수 일가가 지분을 보유한 기업이나 계열사에 대한 투자는 금지했다. 투자 행위 외 다른 금융업은 금지되고, 차입 규모도 자기자본의 200%로 제한한다. 펀드 조성시 외부자금 출자도 40%로 제한한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이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공정거래법 개정해서 대기업 CVC 보유 허용

30일 정부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열린 제12차 비상경제중앙대책본부를 열고 이같은 내용의 일반지주회사의 CVC제한적 보유 방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공정거래법을 개정하고 정기국회를 통해 연내 입법이 이뤄지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그간 중소기업벤처부는 공정거래법이 아닌 벤처투자촉진법에 대기업 지주회사 CVC 허용 방안을 담아야 한다는 주장을 내놨으나, 관계부처 논의 끝에 공정거래법상 관련 규제를 푸는 방식으로 CVC를 허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대기업 지주회사 CVC는 지분을 100% 보유한 일반지주회사의 완전 자회사 형태로 설립하고, 기존 밴처캐피탈 형태인 중소기업창업투자회사(창투사) 및 신기술사업금융업자(신기사) 둥 두 가지 유형을 허용한다. 일반지주회사가 보유한 CVC는 자기자본의 200% 이내 차입이 가능하다.

타인자본을 이용한 대기업 지배력 확장을 방지하기 위해 펀드 조성시 조성액의 40% 범위내(세부비율은 시행령 규정)에서만 외부자금을 조달하도록 제한할 예정이다. 벤처투자 활성화라는 목적에 맞게 업무범위를 투자로 제한하고, 총수일가 관련 회사나 계열회사, 대기업 집단 투자도 막아뒀다. 펀드를 조성할 때에 총수일가와 계열회사 중 금융회사로부터의 출자도 금지된다.

국내 투자 활성화 목적에 맞춰 해외투자는 CVC 총자산의 20%로 제한한다. 창투자는 등록 후 3년 내 총자산의 40% 이상을 창업·벤처기업 등에 투자해야하고, 신기사는 신기술사업자로 투자 대상을 제한한다. 출자자 현황, 투자내역, 자금대차관계, 특수관계인 거래관계 등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정기적으로 보고해야 한다. 공정위·중소기업벤처부·금융위원회에서 각 소관사항에 대해 조사·감독할 예정이다.

CVC가 투자한 중소·벤처기업의 대기업집단 편입유예기간을 7년에서 10년으로 확대한다. CVC가 해당 기업의 지분 30% 이상을 소유하고 최다출자자인 경우나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경우 계열사 편입요건이 충족되나 유예기간을 늘려 선택의 여지를 늘렸다.

◇ 25조 대기업 유보금 벤처투자로 흘러들어갈까

현재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대기업 지주회사는 금융회사인 CVC 보유가 금지됐기 때문에 지주사 체제 기업의 경우 체제밖 계열사 또는 해외 법인 형태로 CVC를 운영 중이다.

지주사 체제인 롯데, CJ, 코오롱, IMM인베스트먼트 집단은 지주체제 밖 계열사 형태로 4개의 국내 CVC를 보유하고 있다. SK와 LG 등은 해외법인 형태로 CVC를 보유하고 있다. 지주사 체제가 아닌 삼성, 카카오 등 9개 집단은 11개 국내 CVC를 보유하고 있다. 대기업집단 64개 중 15개 집단이 17개 CVC를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당초 정부는 금산분리 원칙을 고려해 벤처지주회사 활성화를 추진했다. 하지만 올해들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벤처투자가 둔화하는 가운데 시중의 풍부한 유동성을 생산적인 부문으로 유인할 필요성이 커졌다. 이에 벤처활성화를 유도하기 위한 CVC 제한적 허용을 추진했다.

정부는 CVC 도입으로 대기업의 보다 신속하고 적극적인 벤처투자를 촉진하고 풍부한 유동성을 이용해 벤처투자가 확대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CVC는 펀드를 조성해 투자해 자금조달이 쉽고 분산투자를 통한 리스크 관리가 가능해 적극적인 투자가 가능하다. 현재 25조원에 달하는 대기업의 유보금 등 현금성자산을 벤처투자로 이끌겠다는 심산이다.

대기업의 신산업 진출을 위한 전략적 투자와 벤처생태계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는 것이다. 벤처기업의 스케일업(규모 확대), 대기업의 인수합병(M&A) 등 대형투자 촉진으로 ‘투자-성장-회수’의 선순환을 구축하겠다는 목표다. 상호협력 관계에 기반한 동반성장으로 궁극적으로는 우리 경제의 신성장 동력과 기업의 성장기회를 모색할 수도 있다.

◇ "전략적 투자·사업 협력 등에 제약 요건 너무 많아"

그러나 정작 기업에서는 금산분리 원칙이 일부 완화됐지만, 투자를 제한하는 조항이 너무 많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CVC 차입 한도를 자기자본의 200%로 제한한 규제가 대표적이다. 이는 현행 자기자본의 800~1000%까지인 창투자와 신기사의 차입한도에 비해서도 너무 제약이 강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주사 내 CVC를 만들기 위해서는 보유 현금 상당액을 자본금으로 투입해야 하는데, 이는 CVC를 통한 투자의 효율성을 저해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펀드 조성시 외부 자금 유치 한도를 조성액 40%로 묶어둔 것도 실질적인 투자 활성화 효과를 제약하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한 대기업 임원은 "정부가 투자활성화를 위해 금산분리 원칙을 일부 완화했지만, 지주사 내 CVC 설립, 펀드조성, 투자에 이르기까지 규제 조항이 너무 많아서 실질적인 투자 확대에 도움이 될 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다른 대기업 임원은 "전략적 투자를 하기 위해서는 조인트벤처 등 다양한 협력 모델이 나와야하는데 차입한도,펀드 조성 등에 제약이 너무 많아 정부 구상대로 하면 사업이 가능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