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孫正義)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가 애플과 엔비디아에 ARM 인수를 타진했다고 블룸버그가 보도했다. ARM은 스마트폰을 비롯한 모바일 기기에 쓰이는 모바일AP를 사실상 독점 설계하는 회사다. 애플·삼성전자·퀄컴·화웨이(하이실리콘)·미디어텍 등이 모두 ARM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모바일AP를 설계한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22일(현지 시각) 블룸버그와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소프트뱅크는 최근 애플과 엔비디아에 ARM 지분 인수 의사를 타진했다고 한다. 소프트뱅크는 2016년 320억달러(약 38조원)를 들여 ARM을 인수했다. 손 회장은 2016년 ARM 인수 당시 "바둑으로 치면 50수 앞을 내다보고 인생 최대의 베팅을 했다"고 말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현재 ARM 지분 75%는 소프트뱅크가, 25%는 자회사 비전펀드가 보유하고 있다.

소프트뱅크는 최근 위워크 등 스타트업 투자 실패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위기에 빠져 있다. ARM 지분 매각은 경영난을 벗어나기 위한 움직임이다. 소프트뱅크는 ARM 지분을 부분·전량 매각하거나 기업공개(IPO)를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은 ARM 최초 설립을 주도한 회사다. 아이폰과 아이패드에 쓰이는 A시리즈 모바일AP가 ARM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한다. 지난 6월 열린 WWDC 2020에선 PC 제품 맥(Mac)에 인텔 CPU 대신 ARM 기반 칩셋을 넣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애플은 ARM과 인연이 깊고, 기술적 연관성도 높은 셈이다.

엔비디아는 세계 최대 그래픽처리장치(GPU) 설계·제조사다. 최근 들어선 데이터센터와 인공지능(AI)·빅데이터 분야에 GPU가 널리 쓰이며 사세가 확장되고 있다. 지난 8일에는 인텔을 뛰어넘고 미국 반도체 회사 중 시가총액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엔비디아는 소프트뱅크와 인연이 있다. 소프트뱅크는 2017년 엔비디아 지분 40억달러 가량을 사들였다 매각한 바 있다.

팀 쿡 애플 CEO가 ‘WWDC 2020’에서 자사 PC 제품에 ARM 기반 칩을 탑재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외신과 반도체업계는 애플과 엔비디아가 ARM을 통 인수할 가능성은 작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애플은 ARM을 인수할 시 반독점 규제를 받을 수 있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경쟁사가 모두 ARM 라이선스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애플이 ARM에 관심이 있더라도, 키옥시아(옛 도시바 메모리) 인수 때처럼 일부 지분을 매입하는 데 그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엔비디아는 ARM과 사업 연관성이 떨어진다. 엔비디아 주력 제품인 GPU는 ARM과 기술적 연관성이 적다. 엔비디아는 최근 서버 시장에 큰 관심을 갖고 있지만, ARM은 서버 시장에서 입지가 미미하다.

무엇보다 소프트뱅크가 ARM을 인수하며 ‘몸값’이 지나치게 올랐다는 점도 통매각의 발목을 잡는다. 40조원에 육박하는 금액으로 인수한 만큼, 그 이하 가격에 매각하긴 힘들다는 관측이다. 하지만 ARM은 지식재산권(IP) 라이선스료로 매출이 발생하는 회사여서 매출이 높은 편이 아니다. 실적이 마지막으로 공개된 2017년 당시 ARM 매출은 1524억엔(약 1조7000억원), 영업이익은 243억엔(약 2800억원)에 머물렀다.

소프트뱅크와 ARM, 애플과 엔비디아는 매각과 인수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ARM이 보유한 기술의 가치는 높지만, 높은 가격과 낮은 수익성이 매력을 떨어뜨린다"며 "ARM을 통째로 인수할 회사를 찾긴 힘들어 결국 IPO나 일부 지분 매각이 이뤄질 것으로 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