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데이터청 설립 한 목소리
옥상옥·빅브라더 논란 우려도
정치권에서 최근 ‘데이터청’ 설립을 추진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기존에 국가의 정보를 정리하고 총괄하는 역할을 해왔던 통계청과의 역할 정립이 어떻게 이뤄질지 주목된다. 데이터청은 데이터가 ‘4차 산업시대의 원유’라는 인식 하에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는 지적에 따라 논의되고 있다. 이미 인구, 재산, 혼인, 고용, 산업활동 등 다양한 국가 데이터를 총괄하고 있는 통계청의 위상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데이터청 설립에 대해서는 여·야가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앞서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데이터부 또는 데이터청을 만들어 데이터를 통합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11일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도 공공데이터와 민간 데이터를 통합,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데이터청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래통합당 소속인 원희룡 제주도지사도 12일 김 위원장의 의견에 적극 동조했다. 이에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도 16일 "데이터청과 데이터거래소 신설을 검토하겠다"며 이를 거들었다.
정부와 여당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침체한 경기를 살릴 ‘한국판 뉴딜’의 일환으로 디지털 뉴딜을 추진하고 있다. 여기서 금융·환경·교통·헬스케어 등 국민 생활과 밀접한 15개 분야의 빅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하고 데이터를 개방하는 계획을 세웠는데, 정치권은 이를 데이터청 설립과 연관짓고 있다.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활용하는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는 취지에 공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우려도 만만치 않다. 우선 통계청이 이미 국가 중요 정보를 수집해 통계 자료를 생산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보를 다루는 데이터청이 또 만들어질 경우 옥상옥(屋上屋) 기관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정부 관계자는 "민간과 공공 데이터를 표준화해 연계하자는 차원에서 데이터청 설립을 제시하는 것이라면, 지금도 각종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는 통계청의 기능을 확장하면 된다"라고 말했다. 행정 자료와 민간 자료를 ‘데이터’로 가공할 수 있는 제도적 어려움이 있는 상황에서 통계청은 이를 다룰 권한이 없으므로, 제도를 보완하면 데이터청을 신설하는 효과를 통계청을 통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통계청의 시계열 단절과 유용성이 부족한 통계 제시 등으로 정부 기관조차 통계청을 불신하는 분위기가 높아지면서, 데이터청이 막강한 권한을 가진 기관으로 설립될 경우 통계청을 대체할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 제시되고 있다. 새로 생길 데이터청과 통계청의 역할 구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기능이 중첩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한 정부부처 관계자는 "통계청이 최근 내놓는 통계 중에는 정책을 입안하는 데 쓰기 어려운 ‘죽은 통계’가 너무 많다"면서 "통계청이 통계를 대대적으로 개편하면 최근 정치권에서 나오는 데이터청과 기능이 겹칠 가능성도 많다"고 했다.
통계청은 정치권에서 데이터청 설립을 추진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지만, 데이터청이 어떤 형태로 세워질지 실체가 없어 구체적인 대응안을 내놓기는 어렵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데이터청에서 다룰 데이터의 종류와 통계 관련 권한 등이 도출되지 않은 상황이라 반박 논리를 세우기 애매하다는 것이다.
데이터청이 ‘빅브라더(big brother)’처럼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등장하는 빅브라더는 모든 시민을 밤낮으로 감시하는 디스토피아의 핵심적인 시스템이다. 정부 기관 산하에 설치하는 ‘청’ 형태의 기관이 모든 국민의 일거수 일투족 정보를 쌓아두고 자칫 이를 그릇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생활 침해 가능성을 예방하려면 데이터에 대한 ‘비식별화(누군가의 정체성이 공개되지 않도록 개인을 알아챌 수 있는 정보를 삭제 또는 정리하는 과정)’가 이뤄져야 한다. 데이터청 설립 후 비식별화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감시할 수 있는 제도적 여건을 갖춰야 하는데, 그럴 수 있느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 11일 미래통합당 주최로 열렸던 '데이터청 설립을 위한 전문가 간담회’에서 김진욱 한국IT법학연구소 소장은 "국내에서는 국민의 이용자 정보를 수집, 보관, 활용, 가공하고 있는 반면에 재산적인 혜택은 전혀 주지 않는다"면서 "헌법에 따르면 공공의 필요에 의해 국민 재산권을 사용하면 정당한 보상을 해야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개인정보유통, 활용에 대한 사회적 반감이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