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특례법 개정 이후 대폭 늘기 시작
2015년 41건에서 2018년 183건

지난 4일 서울 성북구 정릉동의 한 야산에서 영아의 주검이 발견됐다. 성북경찰서에 따르면 시신은 비닐에 싸인 채 등산로 인근에 묻혀있는 상태로 지나가던 등산객에 의해 발견됐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하고 용의자를 추적하고 있다.

지난 1월엔 광주광역시 북구에서 A씨가 영아유기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A씨는 자신이 일하는 공장의 화장실에서 혼자 딸을 낳고 공장 인근 텃밭에 자신이 출산한 딸을 버리고 달아났다. 지적장애 3급인 A씨는 "잘 키울 자신이 없어 딸을 버렸다"고 경찰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러스트=정다운

최근 이같은 사건이 끊이지 않자 영아유기를 막기 위해 ‘비밀출산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이어진다. 경제·사회적 이유 때문에 병원 밖에서 홀로 출산한 후 영아를 유기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 영아유기 사건 3년 새 4배 이상 증가

영아유기 사건은 끊임 없이 발생하고 있다. 지난 16일에는 신생아를 유기한 여성 B씨가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다. B씨는 지난해 10월 인천 계양구의 한 빌라 현관에서 아이를 출산한 지 15분 만에 검정색 비닐봉투에 넣어 빌라 계단 아래에 유기한 혐의다. B씨는 일정한 소득 없이 할아버지가 매달 수령하는 국가보조금으로 생계를 이어갔다고 한다.

지난 4월에도 경남 밀양의 한 창고에 탯줄이 달린 신생아를 유기한 여성 C씨가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지난해 7월 자신의 집 화장실에서 아이를 출산한 뒤 그 다음날 평소 알고 지내던 할머니 집 창고에 아이를 버린 것이다.

지난 2월에는 D씨가 광주의 한 PC방 화장실서 아이를 출산한 뒤 버리는 사건이 있었고 집안에서 홀로 출산을 한 후 창밖에 유기한 혐의로 E씨가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다.

이같은 영아유기는 지난 2012년 8월 입양특례법 개정 이후 대폭 늘기 시작했다. 입양특례법은 친부모의 출생 신고가 있어야만 입양 절차를 밟을 수 있도록했는데, 이같은 법 개정은 출생 사실을 숨기려는 부모들이 자녀 입양이 아닌 유기를 택하게 했다는 것이다.

베이비박스를 운영 중인 주사랑공동체에 따르면, 베이비박스 보호 영아는 입양특례법 개정 전인 2011년에는 35명이었지만 2012년엔 79명, 2013년엔 252명으로 급증했다. 이후 2018년까지 200명대를 유지했다.

경찰에 신고된 영아유기 건수도 최근 3년(2015~2018) 사이 4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5년 41건이던 영아유기 범죄는 2016년 109건, 2017년 168건이다가 2018년엔 183건까지 늘어났다.

성산생명윤리연구소 부소장 엄주희 교수는 "자기 생활을 꾸려갈 수 있는 형편이 아닌 부모의 경우 출생신고조차 하지 않고 아이를 유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래픽=송윤혜

◇ 극단적 선택 않도록, 부모 익명성 보장 필요

영아유기라는 비극적인 사건을 줄이려면 비밀출산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비밀출산제는 실명 출생신고를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인 부모에게 익명 출산을 허용하는 제도다. 친부모의 이름, 생년월일, 주소 등 신원은 외부에 공개되지 않고 정부에서 관리하기 때문에 이들의 공적인 서류에는 자녀 출생 사실이 드러나지 않는다.

아이를 안전한 환경에서 키울 수 없는 부모가 홀로 아이를 출산해 유기하는 것보단, 이들에게 익명성을 보장해주면서 안전한 환경에서 아이를 출산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엄 교수는 "출생신고는 차치하더라도 원치 않은 출생을 한 친부모가 자기자신 또는 아이를 해치는 등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몰리는 경우도 있다"며 "부모와 아이의 생명을 위해서라도 비밀출산제는 반드시 필요한 제도"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같은 비밀출산제는 부모만을 위한 결정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아동의 ‘뿌리 찾을 권리’를 침해한다는 것이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부모 입장에선 반드시 필요한 제도라고 할 수 있지만, 아이를 위해서는 대책도 함께 수반돼야 한다"고 했다.

정 교수는 "비밀출생제를 시행하게 되더라도 부모의 신원을 ‘완전 익명’ 처리하는 것은 아동의 뿌리 찾을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라며 "정부가 친부모의 신원을 철저하게 보호·관리하고 있다가 아이가 만 18세 성인이 됐을 때 양측 동의하에 신원 확인을 가능하게 하는 식이어야 한다"고 했다.

한편 정부는 지난해 5월 ‘포용국가 아동정책’을 발표하면서 익명출산제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관련 법은 법제사법위원회 문턱도 넘지 못한 채 20대 국회는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