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g 관리기구, 사모펀드사에 권한 넘기려다 제동
"투자자 이익이 최우선인 회사에 맡기는 건 부적절"
美 캘리포니아 법무부 장관까지 나서 반대 입장
민영화 일단락됐지만 ISOC 수익 다변화는 숙제

'닷컴(.com)'과 '닷넷(.net)'. 인터넷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도메인입니다. 인터넷 주소 말미에 붙는 이 최상위도메인(top-level domain·TLD)은 개인이나 기업이 영리 등 다양한 목적으로 활용이 가능합니다. 닷컴은 ‘commercial(상업적인)’을 닷넷은 ‘network(네트워크)’를 줄인 말이죠.

닷컴, 닷넷과 함께 많이 쓰이는 또 다른 최상위도메인이 ‘닷오알지(.org)’입니다. 비영리 기관이나 단체에서 많이 사용합니다. 예를 들어 해외에서는 적십자(redcross.org)나 국제인권감시기구(hrw.org) 등이, 국내에서는 참여연대(peoplepower21.org), 소비자시민모임(consumerskorea.org) 등이 이용하고 있습니다.

비영리기관과 단체에서 주로 쓰는 도메인인 ‘닷오알지(.org)’는 ‘퍼블릭 인터레스트 레지스트리(PIR)’와 PIR을 통제하는 ‘인터넷소사이어티’에 의해 관리된다.

최근 인터넷 업계에서는 .org 관리 권한을 민간 투자회사에 넘길지를 두고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논란은 지난해 11월 인터넷 기술 협력 관련 국제 단체인 ‘인터넷 소사이어티(ISOC)’와 사모펀드사 에토스캐피털 간 거래 소식이 전해지며 불거졌습니다.

ISOC가 .org 관리 기구인 '퍼블릭 인터레스트 레지스트리(PIR)'를 11억3500만달러(약 1조4000억원)에 판매하기로 한 것이죠. PIR 매각 절차는 전 세계 인터넷 주소를 감독하는 국제인터넷주소관리기구(ICANN)가 승인만 하면 최종 확정될 예정이었습니다. .org에 대한 판매, 관리 등 실무는 PIR과 이를 통제하는 ISOC에 의해 이뤄지지만 소유권 이전 등 중요 사안을 결정할 때는 ICANN의 허가를 얻도록 돼 있습니다.

그러나 이같은 소식은 많은 비영리단체의 거센 반발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반대 측에서는 에토스캐피털이 도메인을 맡게 되면 비용을 줄이기 위해 PIR에 대한 투자를 줄이는 한편 공익 단체에 부과하는 .org의 등록·유지비를 급격히 올릴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PIR 매각을 원천 무효화하라는 반대 서명 사이트(savedotorg.org)도 생겨나 최근까지 전 세계 900개에 가까운 단체와 2만7000여명이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에토스캐피털이 "견제 장치로서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관리 협의회(stewardship council)’를 구성하고 도메인 사업에서 가격 인상 등 사익보다 공익적 가치에 우선순위를 둘 것을 약속한다"고 했지만 반대론자들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습니다. 사모펀드의 궁극적인 목표는 결국 투자자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분위기는 ICANN을 관할하는 미 캘리포니아주 법무부까지 나서며 더 심각해졌습니다. 올해 초 하비어 베세라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은 .org를 사기업에 넘기는 데 대해 공식적으로 우려를 표명한 데 이어 지난달 15일 ICANN 이사회 측에 서한을 보내 "글로벌 인터넷 생태계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결정해 달라"고 압박하기도 했습니다.

국제인터넷주소관리기구(ICANN)가 ‘닷오알지(.org)’를 사모펀드사 에토스캐피털에 넘기지 않기로 결정하자 그동안 반대 운동을 하던 서명 사이트(savedotorg.org)에서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ICANN 이사회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각) .org 관리 권한을 에토스캐피털에 넘기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 마르텐 보터맨 ICANN 이사회 의장은 "지금까지 공익 활동에 기반을 뒀던 PIR이 사익을 추구하는 주주에 종속될 경우 발생할 불확실성을 감안하면 매각을 보류하는 게 공익에 부합한 결정이라고 판단했다"고 했습니다. 그는 "에토스캐피털이 제안한 협의회는 아직 검증도 안 돼 제대로 작동할 지 의문"이라며 "또 PIR이 자금 조달을 위해 3억6000만달러의 빚을 지도록 하는 조건이 있는데 이는 PIR의 영리 활동을 부추기는 효과를 낳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ICANN의 결정으로 .org의 민영화 논란은 일단락됐지만 ISOC의 수익 다변화는 숙제로 남은 상태입니다. ISOC는 2002년 .org 관리 권한을 부여받고서 20년 가까이 수익의 대부분(85%)을 이를 운영하는 PIR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2018년 기준 PIR은 약 9300만달러의 순매출을 기록하면서 ISOC에 지불하는 개런티와 각종 교육 사업, 직원 급여, 마케팅비 등의 지출 탓에 320만달러가량 손실을 봤습니다. 이에 지난해 .org 도메인에 매기던 요금의 상한선을 없애기도 했습니다. 이와 관련 베세라 장관은 "ISOC가 반드시 PIR 민영화를 통해야만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