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가가 21일(현지 시각) 이틀 연속으로 대폭락했다. 역대 처음으로 ‘마이너스(-) 유가’를 기록한 5월물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뿐만 아니라 6월물 WTI와 ‘글로벌 벤치마크’ 유종인 6월물 브렌트유까지 폭락했다. 매수세 자체가 없어진 전형적인 투매 장세로 흐르는 모양새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6월 인도분 WTI는 전날보다 배럴당 43.4%(8.86달러) 하락한 11.57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배럴당 20달러에서 11달러로 거의 반토막난 것이다. 장 중에는 70% 가까이 밀리면서 6.50달러까지 내려갔다. 마켓워치에 따르면 이런 가격은 거래가 가장 활발한 월물을 기준으로, 1999년 2월 이후로 21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연합뉴스

북해산 브렌트유도 무너졌다. 상대적으로 가격을 떠받치고 있던 브렌트유도 10달러 선으로 주저앉았다. 국제 유가 기준물로 꼽히는 브렌트유가 10달러대로 떨어진 건 미국 원유시장뿐만 아니라 전세계 전반적으로 공급과잉이 심각하다는 의미다.

이날 런던 ICE 선물거래소에서 6월물 브렌트유는 오후 4시 30분 현재 22.49%(5.75달러) 하락한 19.82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17달러 선까지 밀렸다가 다소 낙폭을 되찾았다. 이는 2001년 12월 이후로 18년여만에 최저치다.

선물 만기일(21일)이 다가온 5월물 WTI가 전날 사상 처음 마이너스권을 기록했지만 차월물인 6월물은 대체로 20달러 안팎을 유지하지 않겠느냐는 시장의 기대감이 빗나간 셈이다. 전날 -37달러라는 기록한 5월물 WTI는 이날 47.64달러 뛰어오른 10.01달러로 마지막 날 거래를 마쳤다. 다만 선물시장 트레이더들 거래가 6월물에 집중되고 있어 5월물 유가 의미는 크지 않게 됐다. 이날 6월물 WTI는 200만 건 이상 계약됐지만 5월물 거래는 약 1만 건 뿐이었다.

이에 다급해진 산유국들은 추가적인 조치를 예고했다. OPEC+(OPEC과 10개 주요 산유국의 연대체)가 지난 12일 화상회의를 열어 5∼6월 두 달간 원유를 하루에 970만배럴씩 감산하기로 합의했다. OPEC(석유수출국기구)은 트위터 계정을 통해 "현재의 원유시장 상황을 브레인스토밍하기 위한 비공식 대화"라고 설명했다

이런 노력에도 오히려 유가는 더욱 가파르게 폭락했다. 산유국들이 역대 최대 규모의 감산 합의를 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공급과잉을 해소하기에 미흡하다는 판단이 더 우세한 탓이다. 시장에서는 원유 수요가 하루 3000만배럴 감소할 것으로 보고 있다. 유조선에 실린 채 바다 위에 떠 있는 재고분만 1억6000만배럴로 추정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도 셰일 업계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우리는 위대한 미국의 원유·가스 산업을 결코 실망하게 하지 않을 것이다. 난 에너지부 장관과 재무부 장관에게 중요한 기업과 일자리가 앞으로 오래 보장될 수 있도록 자금 활용 계획을 세우라고 했다"고 적었다.

다만 시장에서는 유가가 더 하락할 수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산유국들이 역대 최대인 970만배럴을 웃도는 추가 감산합의를 끌어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략 비축유를 더 사겠다는 입장이지만 멕시코만 일대에 위치한 비축유 저장시설 여력이 충분하진 않은 실정이다.

이미 선물 투자자는 6월물을 건너뛰고 곧바로 7월물로 갈아타는 움직임을 보인다. 이날 6월물 WTI가 폭락한 것도 이런 기류를 반영한다. 6월물 만기(5월 19일)까지도 원유공급 과잉이 이어질 것이라는 예상이다. 6월물 WTI도 마이너스 영역으로 떨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