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보유액 4000억달러는 부족"… 통화스와프 확대 주문
한은이 금융안정 기능 확대해야…회사채 매입에는 엇갈려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에 따른 글로벌 금융시장 쇼크를 견뎌내기 위해서는 정부와 한국은행 등이 통화 스와프 협정 등을 다각도로 확대해야 한다고 전직 경제부처 장관, 경제연구원장, 학회장들이 조언했다. 우리나라가 외환보유액을 4000억달러(약 491조원) 이상 확보하고 있고 지난 22일 600억달러 규모의 한·미 통화스와프를 체결했지만, 충분한 외환 방파제라고 하기에는 미약하다는 게 이들의 진단이다.

국내에서는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한국은행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는 주문이 쏟아졌다. 무제한 국채, 회사채 매입 등 양적완화를 실시하고 있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처럼 한은도 자산 매입을 통한 유동성 공급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연준처럼 한은이 회사채를 매입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서는 엇갈린 의견이 제시 됐다.

조선비즈는 27일 유일호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한국공인회계사회장),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 손상호 한국금융연구원장. 신성환 한국금융학회장(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이인호 한국경제학회장(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등을 전화 또는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코로나 공포로 인한 금융시장 불안에 대응하기 위한 해법을 듣기 위해서다.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로비에 증시 현황이 표시돼 있다. 이날 코스피는 83.69p(5.34%) 내린 1,482.46에 마감했고,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20원 오른 1266.5원을 기록했다.

◇한일 통화 스와프 재개·무제한 통화 스와프 등 추진해야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외환보유액 4000억달러, 한미 통화스와프 협정 등 현재의 외환방어막으로는 글로벌 시장의 충격을 막아내기에 힘이 부친다는 견해를 나타냈다. 특히 외환정책을 책임진 경험이 있는 경제관료 출신들이 이렇게 주장했다.

재정경제부 2차관 출신인 권태신 한국경제원장은 "외국인이 주식으로 국내 시장에 투자한 자금이 4000억달러, 채권 투자액 1200억달러, 단기 외채 형식으로 유입된 자금이 1400억달러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중 10~20%만 빠져나가도 국내 금융시장이 불안해질 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 했다.

이 때문에 경제 고관들은 선진국 중앙은행과의 통화스와프를 확대하는 게 현실적인 해법이라고 주장했다. 기획재정부 1차관 출신인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은 "600억달러 규모인 한미 통화스와프를 무제한으로 확대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헸다. 그는 "전반적으로 국내에 유입되는 외화자금을 감안하면 외환보유액으로 자금 유출 충격을 견뎌내기에는 부족한 상태"라면서 "우리나라가 미국과 무제한 통화스와프를 체결한 국가에 속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적인 이유로 중단된 한일 통화스와프 협정을 재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한일 통화스와프는 2001년 7월 20억달러 규모로 처음 맺어졌다. 이후 2008년 금융위기 당시 300억달러로 대폭 확대됐고, 2011년에는 700억달러까지 늘었다. 하지만 2012년 8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 사과 요구' 발언으로 한·일 관계가 악화되면서 그해 10월 만기가 된 통화 스와프 계약이 연장되지 않고 종료됐다.

2016년에는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와 미국 금리 인상 등으로 금융시장 불확실성이 커지자 한국이 일본에 통화 스와프를 제안했지만, 일본은 부산에 있는 일본 영사관 앞에 위안부 소녀상이 설치된 것을 문제 삼으며 협상 중단을 선언했다.

이 당시 외환당국 최고위급 당국자였던 유일호 전 경제부총리는 "외환시장 안전판을 좀 더 확대할 필요가 있으며, 그런 관점에서 한일 통화스와프를 다시 논의해야 한다"면서 "부총리 재임시 협상을 재개하기로 했다가 일본측 선언으로 협상이 중단됐는데, 코로나 위기 대응을 계기로 한일 당국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말했다.

손상호 금융연구원장은 "감염병 확산이 장기화 될 경우에 발생할 수 있는 지속적인 외화자금 유출 압력을 모두 해소하기 어려울 수 있어 외국인 투자자들이 우리나라 기업 및 경제 펀더멘털에 불안감을 갖지 않도록 경제활력을 제고하고 금융권 외화자금 수요를 안정화시킬 수 있는 조치를 병행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픽=송윤혜 팀장.

◇한은 회사채 매입 둘러싸고는 찬반 양론

관료 출신들은 국내 금융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한국은행이 최종 대부자 기능을 보다 적극적으로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종대부자 기능이란 금융시장 위기가 발생했을 때 최종적으로 자금을 공급해 시장을 안정시키는 중앙은행의 역할을 의미한다.

권태신 원장은 "전 세계가 위기를 막기 위해 돈을 풀고 있고, 인플레보다는 디플레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경제사정이 달라졌다"면서 "한은법을 고쳐서라도 한은이 CP(기업어음), 회사채를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중경 전 장관도 "국책은행 등 금융권이 기업의 회사채를 인수할 수 있도록 회사채 인수방안을 먼저 시행하고, 부족하면 한은이 나서도록 하면 된다"면서 "금리 안정을 위한 국채 매입은 지금도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한은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한은은 지난 26일 4월부터 6월까지 환매조건부(RP) 채권 매입을 통해 석달간 유동성을 무제한으로 공급하기로 했다. 통화안정채 91일물 금리가 기준금리(0.75%)보다 10bp(1bp=0.01%p) 정도로 좁혀지도록 하는 게 1차 목표다. 현재는 이 격차가 20bp 이상 벌어진 상태다.

신성환 금융학회장은 "시중금리를 안정화시키기 위해 한은이 국채를 매입할 때는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의 합동작전 형태로 들어가야 한다"면서 "정부가 발행한 국채를 한은이 사주고, 그렇게 마련한 돈으로 재정을 집행하는 형태는 전통적 시각에서 매우 부정적이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특수하니까 (그런 방식을) 실행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은의 회사채 매입에 대해서는 견해가 엇갈렸다. 이인호 경제학회장은 "한은의 회사채 매입은 자칫하면 중앙은행의 신인도를 하락시켜 금융 불안을 가중시킬 수 있는 부작용이 있다"면서 "시중은행이 회사채를 사들일 수 있도록 지원하되, 중앙은행의 대차대조표를 훼손시킬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손상호 원장도 "한은이 직접 회사채를 매입하는 것은 중앙은행이 기업의 신용위험을 감당해야 한다는 의미인데 이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면서 "우리나라에도 정책금융기관, 보증기관 등이 있기 때문에 유동성과 신용위험을 분리하고 중앙은행이 유동성 공급에 개입하는 자연스러운 방법을 먼저 고민하는 것이 수순"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