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제 유가가 급락세를 보이면서 원유 가격에 수익률이 연동된 투자 상품들의 손실이 커지고 있다. 9일 국내 증시에선 원유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ETN(상장지수증권) 가운데 하루 만에 20~40% 하락한 종목들이 속출했다. 2016년 유가 급락 당시 큰 손실을 안겼던 원유 DLS(파생결합증권) 사태의 재연을 우려하는 투자자들도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제 유가의 방향이 단기간에 바뀌기는 쉽지 않아 유가가 20달러대까지 떨어질 가능성도 열어 둬야 한다"고 경고했다.
◇원유 DLS 손실 구간 진입했나
지난 6일(현지 시각) 서부텍사스산원유(WTI)와 브렌트유 선물은 배럴당 각각 전 거래일 대비 10%, 9.4% 떨어진 41.28달러와 45.27달러에 마감했다. WTI 가격은 2014년 11월 이후 일간 최대 낙폭을 기록하며 2016년 8월 이후 최저치로 떨어진 것이다. WTI와 브렌트유 선물은 9일 오전(한국 시각)에도 27~31%가량 폭락한 30달러와 31달러로 하락했다. 1991년 걸프전쟁 발발 이후 최대 하락폭이었다.
이는 마지막 희망이었던 산유국들의 추가 감산 기대가 깨진 탓이다. 최근 우한 코로나(코로나19) 사태로 원유 수요 위축이 예상되면서 유가가 연일 미끄러지자,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회원 산유국들의 모임인 OPEC+(오펙플러스)가 생산량을 줄여 방어하려 했으나, 러시아 반대로 결렬됐다. 기존 감산 연장에도 실패하면서 공급이 크게 늘 것이란 전망에 유가가 곤두박질쳤다.
이에 따라 원유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DLS는 원금 손실 구간에 근접했다. 원유 DLS는 최근 대규모 손실 사태가 벌어진 독일 금리 연계 DLS처럼 유가가 일정 가격 범위 안에 있으면 약속한 이자와 원금을 지급하지만, 약정된 수준 밑으로 떨어지면 원금 손실이 발생하는 상품이다. 이 약정된 수준을 녹인(손실 발생 구간)이라고 부르는데, 대략 가입 당시 유가의 50% 선이다. 작년 WTI 고점이었던 4월 23일(66.30달러)에 가입했다면, 약 33달러 수준이다. 한국예탁결제원 증권정보포털 세이브로에 따르면 작년 4월에 발행된 원유 DLS인 삼성증권2570, 한국투자증권트루1406, 한화스마트649 등은 WTI가 29~33달러, 브렌트유가 33~37달러 밑으로 내려가면 원금 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9일 거래 중인 유가를 고려하면 일부 상품은 이미 녹인 구간에 들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녹인 구간에 진입했더라도 만기 시점에 다시 70~ 80%의 가격 수준을 회복하면 손실을 피할 수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원유 공급 증가 등으로 유가가 추가 하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유가가 20달러대로 추락했던 2016년에는 상반기에만 확정된 원유 DLS 손실이 약 3100억원에 달했었다.
◇전문가들 "유가 20달러대 찍을 수도"
이날 원유 가격을 추종하는 ETN 수익률도 고꾸라졌다. 원유 가격 변동폭의 2배 이상으로 수익률이 움직이는 미래에셋 레버리지 원유선물혼합 ETN(H)은 -43.61%, 삼성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ETN -37.09%, 신한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ETN(H)도 -33.83%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신한 ETN의 경우 이날 아침 해당 상품의 물량이 동나는 바람에 매도·매수 체결이 이뤄지지 않아 시장 가격이 비교적 덜 빠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신한금융투자 측은 "실제 수익률은 이보다 낮아 지금 매수하면 추후 불이익이 발생할 수 있다"고 알리기도 했다.
삼성증권 심혜진 연구원은 "미국의 증산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OPEC도 증산을 통해 대응했던 2015~2016년 석유 시장 상황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며 "WTI는 2016년 2월 저점인 배럴당 26달러까지 하단을 열어둬야 할 것"이라고 했다. 하나금융투자 윤재성 연구원도 "WTI 기준 배럴당 20달러대까지 하락할 수 있다"고 했다. 대신증권 김소현 연구원은 "코로나 확진자 수가 정점에 도달한 중국의 원유 수요량은 하루 300만~400만 배럴 줄어든 것으로 추정되며, 원유 수입국인 코로나 확산 국가(한국·일본 등)에서도 통화 약세로 유가 부담이 커져 수요 감소가 나타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