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 전력망 사업 입찰에 '中 기업 참여 검토' 논란
한전 "결정된 사항 없다" VS 전선업계 "국가 안보 위협"

한국전력이 중국 기업을 전력 사업 입찰에 참여시킬 수 있는지를 두고 정부에 유권해석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국가 안보가 달린 전력망 사업에 중국 기업을 끌여들여서는 안된다"는 반대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한전은 "입찰 관련해서 결정된 게 하나도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1일 한전과 전선업계에 따르면 한전은 완도~제주 구간 제3 초고압직류(3HVDC) 해저케이블 건설사업 입찰 공고를 준비 중이다. 한전은 "제주지역의 안정적인 전력 공급과 전남 남부지역 계통보강을 위한 사업"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전력 나주 본사 전경.

전선업계에서는 한전이 이 사업을 국제입찰로 진행하고, 비용절감을 위해 중국 업체를 참여시키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런 주장은 한전이 최근 입찰 참가 자격 범위와 관련, 기획재정부에 규정에 대한 유권해석을 요청해 회신을 받으면서 불거졌다.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 정부조달협정(GPA) 가입국이 아니라서 국내 공공조달 입찰 참여를 못하는데, 한전이 중국 기업의 입찰 참여 가능 여부를 기재부에 알아본 것이다.

한전 측은 "기재부로부터 유권해석 관련 회신을 받은 것은 사실이나, 중국 입찰 참여에 대한 허락을 받은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중국이 국내 전력사업 입찰에 참여할 가능성이 있다는 소식에 업계와 일부 시민단체는 반발하고 있다. 이들이 우려하는 부분은 크게 3가지다. 우선 전력망 사업은 에너지 안보에 해당하기 때문에 섣불리 중국 기업을 참여시켜서는 안된다는 주장이 하나다.

전선업계 한 관계자는 "중국은 글로벌 전선 업계에서 기술력을 인정받지 못해 선진국에는 제품을 공급한 사례가 없다"며 "기술 검증도 안된 중국에 국가 전력망의 설치와 유지보수를 맡기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했다. 원자력국민연대를 비롯한 7개 시민단체도 지난 26일 성명서를 내고 "10여년 전에 비해 전력 사용량이 급증한 현 시점에서 중국산 전력 케이블을 도입했다가 대규모 정전 사고라도 나면 지역의 일상이 마비되는 등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파괴하는 안보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주장도 나온다. 중국이 GPA에 가입하지 않아 한국 전선 기업들은 중국에 전력 케이블 수출을 못하기 때문이다. 앞서 2014년 지하철 1~4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메트로는 2호선 전동차 200량을 국제입찰을 통해 구매하면서 중국 업체의 참여는 배제했다. 전동차의 안전성을 보장할 수 없는데다 중국이 GPA 가입국이 아니라 자격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밖에 중국의 저가 공세가 이어지면 국내 전선·전력업계의 경쟁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지난 26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한전 사업에 중국 기업의 참여를 허락하는 것은 말도 안됩니다’라는 청원을 올린 청원자는 "공기업인 한전이 국내 기업에 도움을 주지 않고 중국 기업의 입찰을 허용해 기회를 주는 것은 공기업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 청원에는 28일 오후 기준 6만2000여명이 참여했다.

반면, 이번 사업에 필요한 해저 케이블을 만들 수 있는 국내 업체는 LS전선 한 곳 뿐이라 입찰의 공정경쟁 차원에서 한전이 국제입찰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번 전력망 사업은 규모가 큰 데다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국내 업체가 한 곳 뿐이라 국내 업체를 대상으로만 입찰을 하면 공정경쟁이 저해되는 측면이 있다"며 "그래서 한전도 국제입찰을 통해 비용과 경쟁력을 모두 고려하려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공기업인 한전은 일정 규모 이상 사업은 국제입찰로 발주해야 한다. 다만, 이 사업이 국제입찰 대상인지는 정해지지 않은 상태다. 한전 관계자는 "본 사업의 입찰방법, 입찰 참가 자격 등 계약방법은 현재 내부 검토 단계로 아직 결정된 바 없다"며 "관련 법령에 의거해 계약 목적과 성질 등 제반사정을 종합 고려해 계약 방법을 결정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