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조합장의 세계] ⑤툭하면 생기는 비대위, 그리고 조합장 해임 논란… 신반포 15차도 갈등 점화

입력 2020.02.12 06:00

"대박을 쪽박으로 만든 조합장은 물러나라. 분상제 못 피하게 만든 조합장은 물러나라."

지난 10일 찾은 서울 서초구 신반포15차아파트 단지에는 재건축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가 조합장 해임을 촉구하는 현수막이 줄이어 걸려있다. 신반포15차 비대위는 지난 9일 조합장과 조합 임원을 해임하는 총회를 열기 위해 임시총회 소집공고를 냈다. 해임 총회 날짜는 3월 10일이다. 이 총회에서 조합장이 해임될 경우 재건축 사업에 제동이 걸린다. 조합장이 해임되면 한동안 새로운 시공사 선정을 하기 힘들어진다.

서울 서초구 신반포15차아파트 비상대책위원회가 조합장 해임을 촉구하는 현수막을 걸어뒀다. /김민정 기자
◇재건축 규제에 조합원 반발 "조합장 물러나라"

12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와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등이 시행되는 것과 맞물려 서울 재건축조합의 내부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일부 조합원들은 재건축 규제를 예상하고도 이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 조합장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비대위를 구성하자는 측은 더는 기존 조합장의 방식대로 사업을 추진할 수 없기 때문에 ‘묵은 먼지’를 털어야 하며 사업 속도가 지연되더라도 새로운 ‘판’을 짜야 한다는 입장이다.

사실 재건축 사업에서 조합장과 임원 교체는 웬만해선 하기 어려운 선택이다. 재건축이 늦어질수록 비용이 커지기 때문이다. 재건축 조합에 ‘시간은 곧 돈’이다. 하지만 당장 자금 손실이 커지면서 손해를 감수해서라도 조합장을 교체하려는 움직임이 서울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신반포15차가 대표적인 사례다. 신반포15차 조합장과 조합원의 갈등이 불거진 결정적인 원인은 시공사 교체다. 신반포15차는 2017년 대우건설과 시공계약을 맺었고 사업을 추진하다 지난해 12월 3.3㎡당 공사비 수십만원 때문에 시공계약을 해지했다.

이달 시공사 입찰을 다시 진행하고 있다. 현장설명회에는 삼성물산, 현대건설, 대림산업, 롯데건설, HDC현대산업개발, 호반건설 등 6곳이 참여했다.

하지만 아무리 서둘러 계약을 추진한다 하더라도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적용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가구당 최대 수억원의 피해가 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일부 조합원은 이 모든 과정이 조합장의 탓이라고 주장한다.

신반포15차 비상대책위원회 관계자에 따르면 "조합장이 대우건설을 압박하기 위한 ‘협상용’이라고 서면결의서 제출을 유도해놓고는 아무런 대안이나 대책 없이 이를 이용해 대우건설과의 계약을 해지했다"면서 "사업이 지연되고,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도 피하지 못해 조합원들 반발이 거세다"고 말했다.

신반포15차 조합원들은 이미 이주와 철거가 끝낸 상태여서 언제든지 분양할 수 있는 상황에서 갑자기 시공사를 바꿔 조합원들이 엄청난 금전적인 손실을 봤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종일 신반포15차 조합장은 "대우건설은 작년 가을 착공을 앞두고 600억원에 가까운 공사비 증액을 요구했다"며 "조합은 대우건설이 중요 계약사항을 위반한 것에 대해 여러차례 협상하려 했지만, 대우건설은 원하는 금액을 지불하지 않을 경우 분양가상한제를 피하기 힘들지 않겠냐고 대응하더라"고 했다.

그는 이어 "조합장 마음대로 시공사를 교체했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조합원들이 총회에서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 시공사를 교체한 것"이라며 "비대위는 대우건설로 시공사를 다시 지정하자고 하지만, 다시 돌아가봤자 대우건설이 하자는 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고 조합 주도권을 완전히 잃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예정 공사비가 2400억원인 이 사업은 신반포15차 8개 동을 재건축해 지하 4층∼지상 35층 아파트 6개 동, 641가구를 새로 짓는 사업이다. 조합은 오는 3월 9일 시공자 선정 입찰을 마감한 뒤 4월 전후로 시공사 선정 총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대우건설의 신반포 15차 투시도. /대우건설 제공
◇갈등 깊어지는 재건축

내홍을 겪는 곳은 신반포15차뿐만이 아니다. 사업 추진 과정에서 발생했던 갈등을 극복하지 못해 사업이 지연되는 곳도 수두룩하다. 이런 사업장 역시 조합장에게 책임을 물으며 새 판 짜기에 나섰다.

서울 강남구 개포주공4단지 조합원들은 지난달 8일 임시이사회를 열고 현 조합장의 자격정지 결정을 내렸다. 공사비 증액으로 가구당 수천만원의 추가분담금이 발생한데다, 인근 유치원 소유주와의 법정 공방 등으로 사업이 지연된 게 원인이다.

이 갈등은 2017년 조합이 유치원에 대해 재건축 비용 및 이주비 대출이자 지급 약속을 이행하지 않으면서 시작됐다. 유치원측이 조합에 소송을 걸었고 1심에서 법원은 유치원 부지 관리처분인가를 취소하되 유치원 이주비에 대한 대출 이자는 조합이 부담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2심과 3심에서도 같은 취지의 판단이 나왔다.

일부 조합원은 조합장이 책임지고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직무대행 체제로 전환해 유치원과 조속히 협의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유치원과 조합은 부지 위치에 대해 협의 중이지만 서로의 입장 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

유치원과 조합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조합원 총회와 관리처분인가 변경이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개포주공4단지 조합원들은 조합장 해임 안건을 처리할 임시총회를 개최하기 위해 해임 동의서를 걷는 중이다.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시행이 오는 4월로 다가오면서 서로의 갈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조합과 상가 조합 간 합의가 늦어지면서 분양가상한제를 적용받게 될 가능성이 커진 서울 강남구 개포주공1단지 조합도 조합장 해임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최근 상가와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갈등이 완전히 봉합되지는 않는 모양새다.

개포주공1단지 관계자는 "상가와 조합 간 협의안은 서울시에서 중재한 것이고, 아직 대의원회를 통과한 건 아니라서 앞으로의 과정을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개포주공1단지 일부 조합원들은 여전히 조합장 해임을 위한 임시총회 소집동의서를 걷고 있다. 사업 추진이 원활하지 못한 상황에서 상한제 적용으로 추가분담금까지 대폭 늘어나자 일부 조합원들이 행동에 나선 것이다.

총 6642가구가 들어서는 개포주공1단지는 상한제 유예기간인 내년 4월 28일까지 입주자 모집공고를 내지 못하면 규제의 직격탄을 맞는다. 전문가들은 상한제를 적용받으면 조합원 분담금이 가구당 1억원 늘어날 수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업계에서는 조합장 해임 추진과 비대위 구성 등의 움직임에 정부와 서울시의 책임도 크다고 본다. 부동산 규제를 연달아 내놓으면서 정비사업 추진에 제동을 걸자 갈등이 증폭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한 재건축 전문가는 "조합장의 세계는 세력 대 세력의 싸움이라서 분양가상한제 등 새로운 이슈가 발생하자 권력을 뒤집어엎을 수 있다고 생각해 나서는 것"이라며 "규제로 인해 조합원의 이익이 줄어들 것으로 보이자 새로운 권력을 잡으려는 싸움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입주를 마친 한 강남 재건축아파트 조합장은 "부동산 규제 이슈 등으로 기존 조합의 기득권이 약해지는 상황에서 비대위가 만들어지고 여기에 숟가락을 얹으려는 외부 세력까지 가세하면서 갈등이 쉽게 봉합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다만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이슈가 있는 만큼 조합원들도 일반분양을 서둘러야 하는 상황이라 갈등의 양상이 어떻게 될진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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