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속 1년 2개월 만에 통과… 업계 "만시지탄...환영"
가명정보 활용한 사업 성장 기대… EU 시장 진출 물꼬 트여
빅데이터 산업의 숙원인 이른바 ‘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신용정보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9일 국회를 통과했다. 지난 2018년 11월 법안이 발의되고 약 1년 2개월 만이다.
현재 국내 빅데이터 산업의 경쟁력은 주요국 중 꼴찌 수준이다. 각종 규제에 막혀 아무것도 하지 못한 탓이다. 데이터 3법 통과로 그동안 침체됐던 업계에 숨통이 트일 것으로 보인다.
국회는 이날 본회의를 열어 데이터 3법을 처리했다. 앞서 법제사법위원회가 이날 전체회의에서 의결, 본회의에 상정됐다가 자유한국당이 갑자기 본회의 연기를 요구하며 개의가 지연되는 등 진통을 거듭한 끝에 가까스로 통과됐다. 본회의는 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대안신당·정의당·민주평화당 등 ‘4+1 협의체’ 소속 정당들이 범여권 단독 국회를 열면서 시작됐다.
데이터 3법은 개인정보와 관련한 빅데이터를 기업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규제를 해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은 현행법상 명시하고 있지 않은 ‘가명 정보(특정 개인을 못 알아보게 처리한 개인신용정보)’ 개념을 도입해 데이터 활용의 길을 열어주는 법이다. 예컨대 ‘1990년 3월 14일생 홍길동(남성)’이란 정보를 ‘1990년생 홍모씨’로 바꾸는 과정을 거치면 당사자 동의 없이도 기업이 활용할 수 있게 된다.
금융과 통계 작성, 연구 등을 목적으로 정보 주체의 동의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신용정보법 개정안이다. 금융회사들은 가명정보로 소비와 저축 패턴을 파악, 맞춤형 보험 상품을 개발하거나 통신사와 손잡고 통신료 납부 정보 등을 바탕으로 대출 상품을 내놓을 수 있다.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개인정보 관련 곳곳에 산재된 내용을 모두 개인정보보호법으로 이관하는 것이 핵심이다.
데이터 3법 통과는 유럽연합(EU) 시장을 공략하는 우리 기업에게 호재다. EU는 2년 전부터 개인정보를 어떻게 다룰지를 규정한 개인정보보호규정(GDPR)을 시행하고 있다. 5년 전부터 ‘익명 가공 정보’ 개념을 도입한 일본은 이미 GDPR의 적정성 평가를 통과, EU와 세계 최대의 개인정보 벨트를 구축했다. 반면 한국은 원천적으로 개인 정보 활용이 금지돼 있어 EU 시장을 진출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조광원 한국데이터산업협회장은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데이터 3법이 통과돼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동안 마음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감개무량하다"고 말했다. 그는 "인공지능(AI), 자율주행차, 로봇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신사업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며 "법 통과를 계기로 국민들이 데이터의 중요성을 깨닫고, 우리 미래 산업이 발전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인터넷업계 관계자는 "인공지능(AI) 산업에서는 데이터가 생명이다. 그동안 글로벌 경쟁사들이 빅데이터를 활용, 뛰고 있을 때 우리는 가만히 서있다 못해 계속 뒤처지던 상황이었다"며 "미래 산업 경쟁력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뛰어넘을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됐다"고 말했다.
세계 최대 IT·가전전시회 'CES 2020' 참관 차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머물고 있는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데이터 3법 통과 소식이 전해지기 직전 페이스북에 이를 기대하면서 "규제혁신에 반대하는 분들의 목소리는 이곳에서는 설 땅이 없다. 우리만 똘똘하고 우리만 국민보호하고 우리만 우려와 폐해를 영민하게 파악했고, 다른 나라는 무모하고 무지하며 생각이 없어서 다 허용해줬겠는가"라고 썼다.
실제 미래 산업의 원유(原油)로 불리는 빅데이터 산업이 전 세계에서 꽃을 피우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뒤처지고 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빅데이터 활용 역량을 조사한 결과 지난 2018년 기준 한국은 63개국 중 31위, 1인당 국내총생산(GDP) 2만달러 이상인 31개국 중에서는 21위에 그쳤다. 국내 데이터산업 경쟁력은 선진국과 5년 정도 격차가 벌어져 있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만시지탄(晩時之歎)으로 데이터산업 후진국 한국이 최악으로 가는 걸 막았다"면서도 "데이터를 공개하고 결합하는데 공공기관이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유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데이터 3법 통과로 공공기관은 물론 데이터 보유기관간 데이터 결합이 쉬워져 양질의 데이터 확보가 가능해졌다는 설명이다. 그동안은 일례로 인터넷진흥원과 정보산업진흥원이 보유한 데이터를 결합해 양질의 빅데이터를 만드는 길이 사실상 차단됐었다.